부제 : 11. 과수원 길
강사가 출석부를 들고 웃으며 교실에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지난주에 이어 수필 두 번째 낭독, ‘과수원 길’입니다.”
모두 오늘 발표할 수강생을 쳐다보았다. 발표할 수강생이 말을 조심히 꺼냈다.
“친정아버지는 노래를 잘하시지는 못했지만 좋아했어요. 아버지는 먹을 갈아 붓으로 한지에 상감오륜을 한자로 썼지요. 벽에 붙여놓고 어린 저희들에게 읽어주고 뜻풀이도 해주었어요. 그때 장유유서가 머리에 쏙 들어왔어요.”
“장유유서는 무슨 뜻이었지요? 머리에서 가물가물 하네요.”
“다 아시면서, 어른과 어린이 사이에는 순서와 질서가 있어야 한다는 말인데요.”
“아버지가 자상하셨군요. 가끔 생각나겠지요?”
수강생은 네, 이렇게 늙었어도 가끔 보고 싶어요,라고 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달 밝은 밤이면 편상에 둘러앉아 노래자랑, 장기자랑 같은 것도 했지요. 나는 주로 학교에서 배운 노래를 불렀어요. 어떤 언니는 유행가도 간드러지게 불렀어요. 노래하다가 하늘을 쳐다보면 별이 촘촘히 밝힌 은하수가 장관을 이루었지요. 지금 여기서는 은하수를 찾아볼 수 없지만요.
목소리가 아주 고운 수강생은 글을 낭독하기 시작했다. 노래가 나오는 부분은 예쁜 목소리로 조용히 노래를 하며 그녀는 본인이 써온 수필을 읽어가기 시작했다.
과수원 길
아버지 제사에 만난 우리들은 제사는 약소하게 빨리 지내고 아버지에 대하여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그리고 아버지가 좋아하는 ‘과수원 길’을 불렀어요.
‘동구 밖 과수원길 아카시아 꽃이 활~짝 폈네’
‘활짝’ 할 때는 ‘활’을 짧게 불러주는 듯하다가 살짝 쉬고 ‘짝“을 붙인다.
‘둘이서 말이 없네 얼굴 마주 보며 생긋’
생긋할 때도 ‘생’에서 짧게 불러주며 잠시 쉬었다가 ‘긋’을 붙여준다.
그래야 노래가 맛깔스럽고 재미가 있다.
딸들 모두 아버지 장단을 다 알고 있어 아버지처럼 노래를 불렀다.
돌아가면서 노래를 했는데 큰언니가 처음에는 흘러간 노래를 부르더니 마지막 곡으로 나훈아의 ‘테스 형’을 불렀다. 지그시 눈을 감고 가사를 음미하며 불렀다. 눈을 감은 얼굴 위로 고단한 세월의 흔적과 그리움과 슬픔이 보였다. 어릴 적, 나는 반항하는 기질이 있었다. 그러자 “그게 너의 운명이야” 말했던 언니의 모습이 클로즈업되었다. 나는 나이가 먹고 이제야 운명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체념하고는 다른 운명이라는 것을 말이다. 운명은 나도 어쩔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손을 말하며, 체념은 나의 의지가 들어가 있는 절망을 말한다.
나와 가장 많이 싸웠던 바로 위 언니는 노래를 잘했다. 언니는 지금도 세 군데 합창단에 소프라노로 나가고 있다. 레퍼토리가 끝이 없었고 시간은 새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언니는 ‘돌아오라 소렌토로’를 불렀다. 큰언니 노래 테스형 은 마음속에 아련한 뭔가가 꿈틀거리며 감동이 있었다. 그러나 돌아오라 소렌토로는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거와 같아 별로였다. 그래, 이탈리아 남부의 소렌토를 가보지도 않고 어쨌다는 이야기냐? 마음에 닿지 않는 노래를 왜 부르냐고 언니한테 물었다. 언니는 ‘오 솔레미오’ 등 이탈리아 칸초네가 언니 목소리 톤 하고 잘 맞아 부른다고 하였다.
그중 제일 잘 사는 동생이 이탈리아 나폴리를 갔는데, ‘오 솔레미오’를 부르는 언니의 모습이 생각났다고 하였다. 언니가 하도 불러 가사도 틀리지 않고 노래를 불렀더니 일행이 놀랐다는 거였다. 그래도 다녀와야 더 생생하게 노래를 부를 수 있다고는 하였다.
80이 넘는 세 째 언니가 유치원에서 배운 ‘오뚝이’를 노래와 함께 춤도 추워서 배꼽 쥐고 웃었다. 암기력이 좋은 언니는 유치원 선생 이름부터 초등학교를 거쳐 중·고등학교까지 담임 선생님 이름까지 쭉 꿰고 있었다.
1950년대의 어떤 아버지는 딸만 낳았다고 어머니를 구박하거나 딸들을 하찮게 여기기도 하였다. 하지만 친정아버지는 딸 일곱을 칠 공주라고 부르고, 혼낼 때는 매몰차게 혼내더라도 딸들의 인격을 존중해 주며 키웠다. 나는 아버지를 본받아 집에서 키우는 개를 혼낼 때, 혼내는 이유를 개에게 먼저 말했는데 내 말을 알아듣고 개는 재빠르게 도망쳤다. 조금 지나자 백구는 내 눈치를 보러 와서 꼬리를 잽싸게 흔들며 애교를 부렸다. 나는 더 이상 진돗개 백구를 혼낼 수 없었다.
어떤 언니가 부모자식 간에도 주고받고 해야지 공짜는 없다고 하였다. 글쎄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다 맞는 말도 아닌 거 같다. 똑같은 뱃속에서 태어났어도 생각은 각각 다르다. 아버지가 유언으로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사람이 정직하고 성실하게 산다면 밥은 먹고 산다. 그러나 그 위에 꿈을 꾸고 산다면 아무도 그 행복을 뺏어갈 수 없다.”
나는 글을 쓰고 싶다는 꿈이 있어 행복하다. 여기에 온 이유도 그중 하나이다. 같은 꿈을 꾸는 여러분과 만났으니, 여러분이 곧 나 자신이다.
감사합니다.
모두 웃으며 아낌없는 박수를 쳤다.
수필은 마음 가는 대로 붓 가는 대로 쓰는 것이라 했어요. 다음 시간에는 재국과 성욱 어르신들의 마술이 있겠어요.
“장기자랑 같아요. 기대해도 되나요?”
재국과 성욱은 대답을 못하고 웃기만 하였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입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강사는 퇴장하고 학생들은 남아 수다를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