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편파적 사랑과 온전한 사랑
복희가 살며시 눈을 떴다. 병원 입원실이었다. 긴 꿈을 꾸는 동안 회복실에서 입원실로 옮겨져 있었다. 1인 병실이었다. 딸 정희가 자신을 조용히 쳐다보고 있었다.
“엄마, 눈 떴네. 수술은 잘 되었어. 이제 안 아파?”
“응, 우리 딸, 나를 밤새고 간호했구나. 알래스카 여행은 좋았어?”
“엄마, 미안해. 내 편지 받고 놀랐지?”
“아니, 괜찮아. 여행은 즐거웠어? 이제 나에 대한 스트레스도 다 버렸겠네?”
“딱, 하나가 남았어. 말하면 엄마가 놀랄까 봐, 말하기가 조심스러워서.”
“말해 봐. 엄마는 딸 말을 다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어.”
“그럼, 말할게 놀라지 마. 엄마가 할머니와 고모들 때문에 힘들 때가 있었지?”
“다 지난 이야긴데. 왜?”
“그때, 엄마가 집을 나갔어. 고모들하고는 같이 못 살겠다며 외할머니 집으로 갔었어. 생각 나?”
“희미하게 생각이 나네.”
“그때, 엄마가 나는 집에 놓아두고 정도만 데리고 나갔어.”
“그런 일이 있었네. 정말 미안하다.”
“나도 엄마랑 같이 가고 싶었는데. 나만 떼어 놓고 갔어. 왜 그랬어?”
복희는 침대에 있을 수가 없었다. 내려와서 딸을 껴안으며 울었다.
“내가 잘못했어. 나를 용서해 줄 수 있을까?” 복희는 딸의 마음을 헤아리고 있었다.
“엄마, 나는 자식 아니었어요? 용서해 주고 싶어서 묻는 거예요. 왜 그랬냐고요?”
“엄마는 시집살이에 지쳐 있었고 다 너한테 화풀이했어나 봐.”
“그랬어. 엄마가 할머니와 기분이 안 좋아지면 나를 더 혼냈어. 이유 없이.”
“맞아, 정말 미안해. 나를 용서해 줄 수 있을까?”
“용서해 줄 게. 엄마가 눈물로 용서를 비니까. 알래스카 일도 잘 묻어주고.”
정희도 엄마를 꼭 안아주었다.
복희는 정희가 끓여 온 호박죽을 먹었다.
다음날, 복희는 퇴원하였다. 정도가 오자 정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태연하게 일을 하나씩 잘 처리하였다. 무거운 짐들도 나르고 엄마를 편안히 잘 모셨다. 셋은 오랜만에 화기애애하며 지난 이야기를 했다. 복희의 건강은 점차 회복하고 있었다.
정희가 부산 집으로 간다고 하였다.
“이제 우리 사이 별 문제없지?” 하고 복희가 물었다.
“그럼, 껄끄러운 문제는 하나도 없어. 엄마 건강하게 잘 계시고요.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전화하세요.”
“그래, 우리 딸, 사랑한다. 잘 가.”
“네 엄마 도착하면 전화할게요. 건강하세요.”
복희는 딸한테 한 일을 생각하며 자신도 못된 엄마였음을 다시 생각했다. 조용히 텔레비전을 켰다.
뉴스에 프란체스코 교황이 선종했다고 나왔다. 명동 성당에서 위안부 할머니와 미사를 함께 들이면서 했던 말이 나왔다.
“우리 할머니와 한국 국민은 일본의 침략과 만행에도 품위를 잃지 않았어요. 모두 아름다웠고 고상하였어요.”
할머니들은 손수건을 꺼내 울었다. 그들의 아픈 상처가 조금씩 치유되고 있었다.
실제 주름진 할머니들이 얼마나 아름다웠겠는가? 교황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할머니를 바라본 것이었다. 사랑이 가득한 교황의 마음이 보였다.
위안부 할머니와 프란체스코 교황의 사랑이야기에는 하나님이라는 절대자가 중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랑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모든 상처가 치유된다.’
그래, 정희가 어떤 말을 하던 딸의 말을 잘 듣고 품어주자. 복희의 마음에 마지막으로 남은 말은 사랑이었다. 사랑은 모든 허물을 다 덮어주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