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면서 방에서 뛰쳐나왔다. 거실에서 소파와 한 몸이 되어 TV를 보고 있는 내게 핸드폰 화면을 들이밀었다. 멋진 네일아트 작품들을 소개하는 영상이었다. 그 영상이 끝나고 딸아이를 쳐다보았다. 매우 불쾌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 표정을 보고는 딸아이가 씩 웃는다. 그리고는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기 시작하더니 서울의 동대문 시장에 있는 네일아트 용품점을 보여주며 입을 열었다.
"아빠, 여기 가서 이거, 저거 사야 하는데 가자~!? 응?!"
손가락으로 화면의 페이지를 넘겨가면서 무슨 모래알 같은 조그마한 큐빅 같은 것들과 용품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귀찮은 듯 손으로 핸드폰을 밀어내었다.
"혼자가. 니 용돈 모아서, 그 돈으로 사 와. 또 시작이네 이 자식이."
아주 무게감 있고, 더 이상 네가 아무리 아빠를 조르고 구슬려도 넘어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치며 대꾸했다. 내가 괜히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딸은 시작은 쉽지만, 진득하게 오래 하는 게 없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애교가 많고 활발한 성격의 딸이었기에 나는 딸 바보처럼 행동했다. 원하는 것은 할 수 있는 능력이 되는 한 모두 해주었다. 하고 싶어 하는 것. 가고 싶어 하는 곳. 그래서 우리 딸은 아빠한테 부탁을 하면 무엇이든 다 해결이 되는 줄 알고 있다.
초등학교 2학년때는 태권도가 하고 싶다고 해서 도장을 보냈고, 3학년에 이사했을 때는 발레가 배우고 싶다고 해서 발레학원을, 4학년 때는 킥복싱. 진득하게 수련을 해야 발전이 있을 텐데 1년도 안 하고 싫증을 내버리고 만다. 그래도, 몸으로 하는 활동적인 것이라서 운동은 되었을 테지 하고 이해를 했다. 그러나 중학생이 되어서는 또 다른 것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붓부터, 물감, 캠퍼스 구매. 다른 사람이 보면 물품들만 보아도 미술대회에서 꽤나 입상 성적이 있는 아이인 줄 알 것이다. 그것도 얼마 안 가서 태블릿을 사달라고 졸라댔다. 요즘은 태블릿으로 그림을 그리는 시대라나?
이제는 네일아트를 잘해서 나중에 샵을 차릴 거라고 미래 직업까지 정 와서 나에게 서울 동대문에 가자고 조르고 있다. 구매해야 할 물품이 또 얼마의 돈을 써야 할까? 아무리 딸 바보인 나도 지쳐버렸다.
"또, 또, 시작이다. 얼마 안 가서 싫증 난다고 구석에 박아놓을 거 아니야?"
"아니야, 이건 찐이야. 나 정말 잘할 수 있어."
아주 열정이 뿜어져 나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또 조르기 시작한다.
"아빠~~ 가자~~ 응?"
"저리 가라~! 이번에는 네가 알아서 해결해."
자꾸 조르는 딸아이에게 나 건들지 말아라.라는 제스처를 보이듯 소파의 등받이 쪽으로 돌아서 누워서 손을 가라는 식으로 휙휙 저었다.
딸아이가 이것저것 많은 경험을 해보는 것. 그것도 좋은 성장의 양분이라고 생각은 한다. 나 자신과 잘 맞을 것 같아서 시작한 것이 막상 해보니 생각과 많이 다를 수도 있고, 노력해도 성과가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해서 그만두는 일은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딸아이에게 더 많은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지만, 솔직히 아이 둘을 혼자 키우는 입장에서 금전적인 부분이 걸림돌이 돼버린다. 아내와 맞벌이 생활을 전제로 집과 차를 한 번에 구매하면서 이사를 해왔기 때문이다. 지금은 아내가 하늘의 별이 되어 나 혼자 모두 감당하면서 생활을 하다 보니, 적금을 들었다가 조금 모이면 큰일이 생겨서 깨버리기 일쑤다. 이런 상황이니, 딸아이에게 미안하지만 단호하게 행동할 수밖에 없다.
지금의 우리 생활을 유지하려면 지출이 빠듯하기 때문에 예전처럼 무조건 해줄 수가 없다. 이제는 단순히 호기심 만으로 시작하기보다는 자신의 상황과 성향에 맞도록 신중히 고민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되도록 빨리 자신이 진정하고 싶어 하고 즐기는 것을 찾았으면 한다. 아차! 변덕 없이 진득하게 할 수 있는 것으로!
엄마, 아빠 역할을 다 해가면서 사는 삶에 치이다 보니, 내가 진짜 하고 싶어 하는 것을 하며 살겠다는 목표를 잊어버린 지 오래되었다. 지금의 나는 도전 정신과 열정을 불태워본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다. 이런 면에서 우리 딸이 참 부럽기다. 넘치는 에너지와 도전하고 싶어 하는 열정.
시간이 지나서 우리 아이들이 조금만 더 자라면, 아빠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기 위해 도전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