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친구 녀석이 술 한잔을 하자고 자신의 동네로 오라고 아침부터 전화를 걸어왔다. 술을 마셔야 하니 택시를 타고 이동을 했다. 택시를 타고 친구 녀석 아파트 입구쯤에 도착했을 때 저 멀리서 핸드폰 속으로 들어갈 듯 쳐다보고 있는 친구모습이 보였다. 택시에서 내려 친구와 함께 아파트 단지 앞에 있는 음식점과 술집들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자신이 자주 가는 곳이 있다며 나를 잡아끌었다.
"이모! 오랜만이에요!"
"어머! 결혼했다면서? 신혼여행 어디로 다녀왔어~?"
친구 놈이 들어서자마자 60대쯤으로 보이는 아주머니에게 서글서글한 얼굴로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주인아주머니로 보이는 그분은 손으로 박수를 치면서 오랜만에 조카 얼굴을 보는 듯 달려와서 기쁜 얼굴로 이야기를 하셨다. 그 모습을 보니 이곳에 한두 번 다닌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최근에 결혼을 했다는 것도 아는 것을 보니 말이다.
"야 인마. 이곳이 내 구역이야. 속이 허~ 하고 칼칼한 게 먹고 싶을 때는 여기 동태찌개가 최고지."
나를 쳐다보며 너스레 떨며 말을 했다. 그리고는 나에게 무엇을 먹을지 메뉴도 물어보지 않고 음식을 시킨다. 이런 개자식을 보소.
우리도 자주 이런 말을 쓴다. "여기 내구역이야. 나 믿어봐." 이 말은 자기 자신이 정서적으로 안정감과 편안함을 느끼고 더불어 즐거움을 느끼는 곳이니, 너도 함께 했으면 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이런 곳은 나이가 어린 아이든, 지팡이가 필요한 나이 든. 자신에게 필요한 장소이며, 자신이 택한 장소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런 장소는 점점 넓어져 가고 그곳에서의 추억도 쌓여간다.
어제 아들이 혼자 머리 자르고 온다는 미용실을 우연히 따라서 가게 되었다. 아이스크림 사러 나왔다가 아들 녀석 머리가 길어 보여서 바로 미용실을 향한 것이다. 그때, 자신이 머리 자르는 미용실이 있다면서 아이스크림 가게 앞이 아니라 조금 거리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우리 아들도 자신만의 구역이 점점 넓어져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며 풍등의 맑고 경쾌한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서자마자 다른 손님의 머리를 자르고 있는 내 나이와 비슷해 보이는 여성분이 보였다. 형식적인 인사와 함께 눈은 자신의 정면에 있는 큰 거울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힐끗 우리 아들을 쳐다보고는 아주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했다.
"꼬마 선비님~ 오셨네~? 오늘 은 아빠랑 왔어요?"
"네. 아빠! 여기가 내가 머리 자르는 곳이야. 이모 이쁘지?"
여성분에게 큰 목소리로 대답을 하고는 나에게 이곳이 내 구역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리고는 여성분의 미모를 칭찬하는 립 서비스를 잊지 않았다. 역시 내 아들. 최고.
미용실 여성분은 아들의 머리를 손질하면서 물어보지도 않은 아들이 여기 와서 말동무가 잘 되어준다고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아이가 생각이 조숙하다는 등, 나이에 맞지 않게 씩씩하다는 등. 그리고 아빠 이야기를 많이 한다는 등. 나는 적당히 그런 수다에 살짝 재밌다는 듯한 리액션과 함께 대답을 해주었다. 그렇게 이발을 마치고 한 손에는 아이스크림 봉지를 한 손에는 아들의 손을 잡고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며칠 전 친구 녀석이 "내 구역이야." 하는 모습과 아들이 말하는 "내가 머리 자르는 곳이야." 하는 말이 겹쳐 보였다. 아들도 점점 자신만의 구역을 넓혀 가며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