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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 Aug 19. 2024

졸업 후 다시 만난 너

 널 떠나고서 적어도 3년은 더 지났을 때였어. 오랜만에 만난 너는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어 있었지. 항상 표정이 없거나 우울해 보였던 예전의 너와는 다르게 너는 편안한 웃음을 활짝 지어 보이는 일이 많아졌더라.


 나를 본 너는 전에 없는 가장 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어. 왜 이제야 왔냐고, 네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어서 오라며 기뻐하는 네 행동과는 다르게 네 마음이 흔들리는 게 느껴졌어.


 나 없이 살아가는 것을 몸에 익혔기에 내가 없어도 넌 살아갈 수 있었지만, 너는 내가 오기만을 계속해서 기다렸거든. 하지만 이전처럼 내가 널 다시 떠나 버리는 일이 찾아올까 하는 두려움이 반가움과 부딪혀 크게 네 마음을 동요시키고 있었지. 긴장한 모습이 역력한 모습으로 넌 떨리는 손에 힘을 주고선 나를 향해 건넸어.


 그 순간 난 느낄 수 있었어. 지금의 넌 더 이상 이전의 네가 아니라는 걸. 너라는 사람은 바뀌었다는 걸. 어두웠던 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지금까지,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노력하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는 걸.


 나는 너의 손을 꼭 잡고는 대답했어.

늦게 와서 미안해.


그런 나의 말에 넌 대답 대신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나를 보고 웃어주었어.


 지금의 넌 마음을 여는 방법을 조금씩 다시 배워가는 중이라고 했어. 졸업과 함께 진정으로 자유로워진 너의 앞에는 네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넓고도 새로운 세상이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어. 그런 세상을 하나씩 하나씩 경험해 가며 그동안 잊고 있었던 너의 본래 모습들을 찾아가고 있고, 그 속에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고 했어.


 하지만 이렇게 많이 달라진 지금까지도, 그때의 악몽이 자신을 잊지 말라는 듯 널 찾아온다고 했어.


 그 악몽의 배경은 교실로, 친한 친구와 조를 만들어야 하는 항상 같은 시나리오가 너에게 주어진대.


 그런 선생님의 말씀에 다들 자기 친구와 한 조를 맺으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느라 분주해진 교실 안에서 넌 혼자서 앉아 있을 뿐, 지긋지긋한 그 상황이 얼른 지나가기를 바라야 하는 그런 악몽을 아직까지도 꾼다더라.


 그러다 악몽으로부터 벗어나 가까스로 눈을 뜨면, 그 당시의 기억이 온몸에 되살아난 탓에 진정이 되지 않는 마음을 달래느라 한동안은 스스로에게 되새겨야 한대.


이미 지나간 과거야.
난 그 시간을 모두 이겨냈어.
다 지나갔어.
지금의 난 그때의 내가 아니야.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다시 잠을 청할 수 있다더라.


 졸업을 한 지도 꽤 지났는데 아직까지 그 시간의 넌 지금의 너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고 있었어.


 자유로워졌다 생각하는 너지만, 사실 너의 무의식은 아직도 그 시간 속에 갇혀 있었던 거야. 몸이 해방되었다고 해서 마음까지 해방된 건 아니었던 거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넌 너의 발목을 잡고 늘어지려는 지난 기억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어. 더 많이 웃고,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며, 더 좋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진심을 다해 관계를 대하는 법을 배워갔어. 네 자신만의 고유한 빛을 되찾기 위해 끊임없이 앞을 향해 나아갔어.


 가끔 넘어지는 순간이 찾아와도, 넌 일어서는 법을 지난 긴 시간을 통해 배워 왔기에 이내 벌떡 일어나 빛나는 세상을 향해 너의 발걸음을 옮겨 갔어.


 그 후로 시간이 조금 더 흘렀을 때였어. 넌 갑자기 기쁨에 흥분해선 나에게 재잘재잘 얘기했어.


 오늘 그 악몽을 또 꿨대. 그런데 왜 이렇게나 기쁜 모습인 걸까 의문으로 가득 찬 나의 표정은 곧 뒤를 이은 네 말에 미소로 가득하게 되었어.


 매번 똑같이 정해져 있던 그 시나리오에 던져졌지만, 난생처음으로 넌 그 속에서 지금껏 해왔던 것과는 다른 생각과 행동을 했다고 했어.


 항상 홀로 앉아만 있던 그 의자에서 일어나 현재의 네 친구를 찾으러 걸어가는 꿈을 꿨다고 했어.


 그렇게 말하는 넌 마치 답답하고 딱딱한 알을 자신의 힘으로 깨고 나온 병아리마냥 해방감으로 가득 찬 환희의 표정을 짓고 있었어.


 현실도 아니고 고작 하룻밤 꿈에 지나지 않았지만, 드디어 너의 마음 깊은 곳에서도 그 어둠이 차츰차츰 걷히고 있다는 것을 드디어 너도 느낀 거야.


 그 순간이 오기까지 수도 없이 넘어지고 일어서길 반복했어야 했을 거야. 쉽지 않은 길이었을 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지금의 너에게까지 꿋꿋이 걸어온 지난날의 자신에 대한 고마움으로 너의 두 눈은 밝게 빛나고 있었어.


 피할 수 없었고 깨어날 수 없었던, 외로웠던 지난 기억에 대해 넌 말했어. 이전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하기 위해 네가 이겨내야 했던 시련이었다고, 시련의 파도가 높고 거칠수록 그를 이겨내었을 때 얻게 되는 성장 또한 크다고 했어. 그 시련 “덕분에” 넌 수많은 인생의 가르침을 몸소 배울 수 있었고, 그렇게 이전의 너보다 훨씬 더 강해지고,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었다고 했어.


 그리고 넌 말했어. 언젠가 너와 비슷한 시련을 이겨내고 있는 아이를 만나게 된다면, 너는 그 아이의 빛이 꺼지지 않고 계속해서 환하게 빛나도록 도움의 손을 내밀 수 있는 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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