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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 Aug 31. 2024

새벽 4시의 자전거

꿈속을 달리는 다람쥐

어릴 적 두 발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진 적이 많았다.


방향을 틀 때 중심을 못 잡아서 그냥 혼자서 넘어진 적도 많았고,

무엇보다 아기를 업고 계신 동네 할머니와 부딪혔던 일이 마치 트라우마처럼 남아 버린 탓에

어느 순간부터인지 내 마음속에는 자전거에 대한 두려움이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대학교에 들어와 첫 알바 월급으로 산 것이 웃기게도 자전거였지만,

결국 얼마 가지 않아 그 자전거는 뒷마당에서 홀로 녹이 슬고 말았다.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어린 시절의 두려움이 무의식 중에 여전히 잔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한국에서도 거의 타지 않았던 것이 자전거였기에, 캐나다에서 자전거를 탄다? 이런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었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익숙하지도 않은 자전거를 탄다고 설치다가 사고라도 나면 큰일일 텐데, 굳이 그런 위험까지 감수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출근 시간에 맞춰 새벽 4시마다 항상 타고 다니던 버스가 어느 이유에선지 제시간에 못 온단다.

(캐나다에선 우회라던가 파업이라던가 이런 일이 잦아서 항상 체크를 해야 한다ㅠㅠ)


차선책 1. 걷기

카페까지 걸어가기엔 40~50분이 걸리는 거리인데, 일터에 도착도 하기 전에 이미 진이 다 빠져 버린 바람에 두 번 정도 출근길에 걸어갔다가 일찌감치 포기했다.


걷기 이외에는 달리 차선책이 없었다.


자전거를 타는 수밖에...


그래서 그날 처음으로 자전거를 타고 가기로 ” 결심 “ 했다.


초반에는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서, 길을 잘못 드는 일도 잦았다.


키도 외국인들에 비해 작은 편이라, 안장을 가장 낮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전거에 올라타기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런 까닭에 자전거를 타는 내내 긴장을 해서인지 자전거에서 내리면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기도 했다.


자전거를 타는 게 나에게는 불안하고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걷거나 버스를 탔을 땐 느끼지 못했던 “ 자유로움 ” 이란 것을 맘껏 느낄 수 있었다.


바람을 쐬고 달릴 때 느껴지는 이 자유라는 감정이 너무나 매혹적이었기에

나는 불안과 두려움을 무릅쓰고 두 번, 세 번 자전거에 올라타기를 계속해서 반복했다.


그러다 보니 언제 자전거를 무서워했나 싶을 정도로 자전거의 매력을 즐기고 있는 내가 있었다.


그동안 가장 힘들어했던 방향 틀기에도 이젠 많이 익숙해져서 속도를 줄이지 않고서도 슝-하고 시원하게 방향을 틀 수 있게 되었다.


여러 차례의 시도와 노력 그리고 반복을 통해서 자전거를 향한 두려움을 계속해서 이겨나가고 있는 것이다.


반복이 가진 힘이 이렇게나 대단하다는 삶의 지혜를 생각도 하지 못했던 자전거를 통해 배우게 된 셈이다.




아무튼 이런 까닭에 자전거 타기에 맛이 들린 요즘에는 매일 자전거로 출퇴근을 한다.

(비가 오는 날에는 자전거를 타지 못해 아쉬움이 팍팍 묻어 나올 지경까지 이르렀다.)


새벽 4시 출근길에

오후 12시 퇴근길에

오후 8시 헬스장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이렇게 하루에 최소 두세 번은 자전거를 타는데

그중에서도 오늘 내가 다룰 빛나는 순간은 오전 4시의 출근길이다.




새벽 4시에는 내가 달리는 거의 모든 길이 깊은 잠에 빠져 있다.


나의 자전거 페달 소리만이 조용한 거리를 채우고,

간혹 지나치는 신호등의 깜빡임만이 세상이 멈춰있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끔 해준다.




밝은 달빛이 길을 비추고

별이 쏟아질 듯 반짝이는 하늘 아래에서

마치 한 마리의 자유로운 새가 된 것처럼

시원한 새벽바람을 쐬며

아무런 막힘도 없이

그저 마음이 이끄는 대로 페달을 밟는다.


스탠드의 불빛으로 은은하게 빛을 머금은 창문들

정원에서 밝게 빛나고 있는 전구들과

그로 인해 밤중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꽃들까지


나를 둘러싼 모든 세상이

조금은 외로울 수 있을 나의 출근길을 따뜻하게 밝혀준다.




현실이란 세상을 떠나

꿈속에서 헤엄치듯

자유로운 영혼이 되는

새벽 4시의 출근길.


같은 날, 같은 길이더라도

고요하고 몽환적인 새벽 4시에

자전거와 함께하는 이 순간을

나는 너무나도 사랑한다.



언젠가 이 일을 그만두게 되면

굳이 새벽 3시에 일어나지 않아도 되어 기쁘기도 하겠지만


하지만..

벌써부터 알 것만 같다.


내가 이 순간을 영원히 사랑하고 그리워할 거란 사실을.


달과 별이 반짝이는 새벽하늘을 바라보며

따뜻한 빛을 품은 집들 사이를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천천히 페달을 밟아가던

2024년 여름날

새벽 4시의 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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