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하고 싶은 마음에 이유를 찾고 싶은 심리
뉴스를 보다가 깜짝 놀랄 만한 사건이 터지면,
댓글 창에 꼭 등장하는 말이 있습니다.
"관상은 과학이다."
누군가 큰 잘못을 저질렀을 때마다
우리는 그 사람의 얼굴을 보며 말합니다.
"눈매가 어쩐지 쎄하더라니, 그럴 줄 알았다!"라고요.
그런데 정말 관상은 과학일까요?
심리 연구 결과에서 우리는 불과 100밀리초(0.1초) 만에 상대방 얼굴을 보고
"신뢰할 만하다" 또는 "위험하다"는 판단을 내린다고 합니다.
이러한 동물적인 본능이 남아있는 이유가 다 있겠지만,
생김새랑 실제 성격이나 범죄 경력과는 관련이 없다고 해요.
과거에는 뇌나 두개골의 모양으로 성격을 연구하는 '골상학'이라는 유사 학문도 있었지만,
과학적 근거가 없어 지금은 사라졌죠.
물론 관상이 과학이 아니란 사실은 누구나 압니다.
그럼에도 2020년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20~30%의 응답자가 "관상이 운명과 성격을 결정한다"는 주장에 동의했습니다.
관상은 우리들 마음 속에 '과학'과 '미신', 그 사이 어딘가에 위치해 있는 것이죠.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우리는 누군가를 싫어하는 이유를 자각하기 전에 본능적으로 '감정'이 먼저 작동합니다.
이 과정을 관상으로 대입해서 단계별로 보면 이렇습니다:
1단계: 어떤 사람이 나쁜 일을 저질렀다는 뉴스를 봅니다
2단계: 그 사람에 대한 분노와 혐오가 즉각적으로 일어납니다
3단계: "왜 그 사람이 싫은지" 합리화할 이유를 찾기 시작합니다
4단계: 인터넷 뉴스로는 평소 인품을 알 수 없으니, 가장 쉬운 근거인 '얼굴'을 찾습니다
결국 관상은 이미 생긴 미움의 감정을 정당화하기 위한 도구인 것이죠!
실제로 그 사람을 미워해야겠다는 마음에 확신이 서면,
그 사람의 관상이 나빠 보입니다.
그 사람의 눈코입은 그대로인데 말이죠.
같은 원리가 정반대 상황에서도 작동합니다.
사랑에 빠지면 상대방의 얼굴이 더 예뻐 보입니다.
당연히 그 사람의 눈코입 비율이 달라졌을 리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을 좋아한다는 마음에 확신이 섰기 때문에(사랑에 빠졌기 때문에),
실제로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콩깍지가 씌었다'는 표현의 진짜 의미입니다.
우리의 감정이 상대방의 외모를 다르게 보이게 만드는 것입니다.
당연히 콩깍지도 과학이 아니지만요.
글쎄요 완전히 허구라고만 할 수도 없을 것 같아요.
늘 미소를 짓는 사람과 늘 불만이 가득한 사람의 얼굴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실제로 차이를 보입니다.
자주 짓는 표정에 따라서 얼굴 근육과 주름, 표정선이 달라지는 것이죠.
그래서 '인상'이라는 것은
우리가 살아오면서 습관적으로 사용한 감정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이기도 한거죠.
그리고 자주 짓는 표정은
평소에 어떤 마음가짐으로 삶을 살고 있느냐와 연결이 되겠죠?
즉, 우리의 마음이 시간을 두고 얼굴에 새겨지는 셈입니다.
관상은 누군가를 비난하고 싶을 때 사용할 수 있는 손쉬운 도구입니다.
역사와 문화가 함께 한 일종의 전통 놀이이기도 하면서요.
상대방의 외모로 속마음을 알 순 없지만,
"관상이 쎄했다"라는 마음까지 거짓은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에 혐오감이 차오르면 누군가의 관상이 정말로 나빠보이기 때문이죠.
왜냐하면 관상은 상대방의 얼굴이 아니라, 내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니까요.
결국 우리가 "관상은 과학이다"라고 말할 때,
사실은 "내가 이 사람을 미워해도 괜찮다"는 허락을
스스로에게 구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어때요? 관상은 과학이 아니라 심리학이 맞는 것 같죠?
저의 책 <착하고, 섬세하고, 독특하고, 완벽주의자인 ‘당신을 위한 문장들’> 2쇄도 잘 팔리고 있습니다.
올해 안에 3쇄를 시작할지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최근엔 강연 섭외도 부쩍 늘었어요.
그런 곳에서 "인상이 참 좋으시다"라는 칭찬을 받으면 감사하면서도 한 켠 두려운 마음도 들어요.
이 책에서는 좋은 의도가 가득하지만, 그렇다고 이 책을 쓴 사람이 반드시 좋은 사람이란 뜻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요즘은 '관상 관리'에 신경 쓰고 있습니다.
물론 피부 관리나 시술이 아니라, 마음 가짐으로요.
마음 관리를 잘 못해서 나쁜 일에 휘말리면 저의 얼굴도 ‘나쁜 관상’이 되어버릴 테니까요.
그러니 제 관상이 나빠지지 않도록, 마음부터 잘 다듬어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