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고민 삭제로 발생하는 자본
대한민국에서 자녀 한 명을 대학에 입학시킬 때까지 드는 비용은 약 1억 5천만 원입니다.
생활비를 제외한 순수 교육비만 이 정도죠.
이 중 가장 큰 비중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의 사교육비로 약 7천만 원.
대학 등록금은 4천만~5천만 원, 여기에 공교육비·입시비용 등을 더하면
총 1억 5천만 원이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번 멈춰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돈 중에서 진짜 의미 있는 지출은 얼마나 될까요?
그리고 자녀의 진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쓰인 비용은 얼마나 될까요?
1억 5천은 의심 없이 믿고 있는 어떤 논리의 결과물입니다.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좋은 대학을 가야 하고,
좋은 대학에 가려면 어릴 때부터 교육을 잘 받아야 한다는 믿음.
그래서 미래에 돈을 더 벌기 위해, 현재의 돈을 더 쓰는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썼던 만큼 돈을 모이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이제 슬슬 이상한 점이 느껴지시죠?
팔란티어(Palantir)라는 회사가 있습니다.
최근 10년간 주가가 3,300% 올랐고, 시가총액은 5,350억 달러(약 5,350조 원)인 기업입니다.
그러니 그 CEO는 정말 똑똑한 사람이겠죠?
팔란티어의 CEO 알렉스 카프가 지금의 대학을 바라보는 관점을 매우 비관적입니다.
"College is Broken."
명문대 출신이라고 해도 실제 업무에 필요한 사회성·협업 능력은 부족하고,
틀에 박힌 지식만 반복하는 ‘고학력 바보’가 많다고요.
그래서 그는 아예 “그런 대학 자퇴하고 차라리 우리 회사에서 일해라”는 프로그램까지 운영합니다.
최근 뉴욕에서 34세의 민주 사회주의자 조던 맘다니가 당선된 이유도 비슷합니다.
버스 무료화, 공공목욕탕 무상 제공, 임대료 동결 같은 공약에 젊은 세대가 열광하는 이유는 간단하죠.
그들은 지금 ‘마이너스에서 출발하는 삶’에 지쳐 있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가 싫은 게 아니라,
자본이 없는 상태로 자본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이 싫은 것이죠.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1억 5천만 원의 교육비가 ‘투자’가 아니라 ‘빚’으로 전환되는 순간,
인생의 출발선이 뒤로 밀립니다.
그러니, 교육을 위한 교육비라는 이상한 명목의 지출을 없애고
차라리 그 돈을 모아서 주는 게 낫다는 거죠.
물론 이 글의 결론은 “자본을 챙겨라”가 아닙니다.
자본을 챙기든 말든 사실 제가 알빠가 아니죠.
대신 저의 결론은 이거예요.
살면서 마주하는 고민 중에서 ‘진짜 고민’과 ‘가짜 고민’을 구분하라.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고민들,
그에 따라 당연하게 돈을 쓰는 방식들,
사실은 대부분 누군가의 돈벌이를 위해 정교하게 설계된 시스템이거든요
이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가짜 고민을 선별해내야 합니다.
한 가지 힌트를 드리자면요,
“돈을 더 많이 내면 문제가 더 쉽고 빠르게 해결된다”라는 논리가 있다면,
그건 대부분 가짜 고민입니다.
예를 들어 이런 것들입니다.
• 돈을 더 내면 더 좋은 짝을 만날 수 있다.
• 돈을 많이 쓰면 쉽게 살이 빠진다.
• 이만큼 돈을 쓰면 내 이미지가 좋아진다.
• 돈을 더 많이 내면 아이의 인생이 바뀐다.
이런 구조는 문제 해결이 아니라,
문제를 흥행시키기 위한 비즈니스 모델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하게도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건 ‘진짜 고민’인 경우가 많죠.
나의 20대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
나에게 '쉼'이란 무엇인가 등등요.
1억 5천만 원의 교육비가 정말 ‘필요한 고민’에서 나온 지출인가요?
아니면 사회가 쥐어준 ‘가짜 고민’에 대한 자동 반응일 뿐인가요?
이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무작정 돈을 쓰고 달려가는 순간,
누군가에게 소비되기 위해 소비하는 악순환에 빠지고 맙니다.
가짜 고민을 위해 돈을 쓰지 말고,
진짜 고민을 향해 인생의 에너지를 쓰세요.
우리가 사는 시대는
가짜 고민을 비싸게 사고,
진짜 고민을 외면하게 만듭니다.
이런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또한 돈을 잘 벌 수 있는) 능력은
다름 아닌 내가 지금 붙잡고 있는 고민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부터 구분하는 능력입니다.
그 순간부터
돈도, 시간도, 인생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