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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조닉 Aug 23. 2024

너는 누구야?

스스로 소개가 가능한가?

이상한 나라 앨리스는 여러 풍자와 철학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라 어른에게도 사랑받고, 어려운 만화 영화라는 인식이 있다. 오늘은 그중 우리가 누구인지 생각하게 해주는 철학 질문을 가져왔다. 여러분은 설명이 가능한지 생각해 보라.




변화를 겪으면 자신을 잊어간다?


애벌레 : 너는 누구니
앨리스 : 저도 모르겠어요. 너무 많이 변했거든요.
애벌레 : 난 본 적 없어, 소개해봐
앨리스 : 소개할 수 없어요. 왜냐하면 저 자신이 아니에요. 아시다시피



앨리스가 애벌레를 만나고 나누는 대화다. 앨리스는 자신이 변해서 누군지 모르고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도 모른다. 키가 작아졌고 이상한 나라에서 말도 안 되는 걸 잔뜩 봐서 혼란스럽고, 더 이상 과거 자신이 아니다. 때문에 자신이 누구인지 설명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런 예시가 아니어도 우리 삶은 변화로 가득하다.


어제와 조금씩 다른 일을 하고, 처음 하는 걸 배우고 듣기도 하고, 심장은 계속 뛰고 혈액에서 새로 생성한 세포가 오래된 세포를 먹고, 매일 새로운 음식을 먹고 몰랐던 지식을 배우며 순환한다. 생각도 달라지거나 기존에 가진 생각을 더욱 강화한다. 모든 존재는 어제와 같지 않고 변한다.



때문에 불교는 불변하지 않는 건 없고 우주 모든 건 계속 변한다고 말한다. 다른 종교는 절대불변 법칙이 존재하고 진리가 존재한다 말하지만 불교는 아니라고 반박한다. 그럼 여기서 묻자. 키가 작아지고 새로운 경험을 하고 생각을 하게 된 게 앨리스라는 본질조차 바꾸었나? 지금부터 다른 종교가 불변하지 않는 개념이 있다고 한 원리를 설명하겠다.


이상한 나라를 꿈꾸며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어린 소녀 앨리스라는 존재는 변하지 않았다. 왕이 바뀌어도 조선은 조선이었고, 영국은 영국이다. 작아진 앨리스, 색다른 경험을 많이 한 앨리스, 혼란스러운 앨리스다. 우리 존재는 과거와 달리 변했지만 고유 개념은 존재한다.


땅 위에 작물을 심고 건물을 지어도 땅은 땅이다. 때문에 수많은 종교는 해당 원리에 의거해 절대불변 개념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앨리스는 앞서 말했듯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소녀다. 그럼 검은색으로 염색하면 앨리스가 아닌가?


변화를 겪어도 고유 개념을 해치진 못 한다. 앨리스는 앨리스다. 새로워진 앨리스가 존재할 뿐이다. 너무 철학적으로 해석하니 해당 장면과 해석을 보고 감흥이 못 느끼는 사람도 있을 텐데, 결국 앨리스가 자신을 소개하지 못한 이유는 자신이 누구인지 대화하고 탐구할 시간이 없어서다. 현대는 앨리스 같은 사람이 많다.



너 자신을 알라


현대인은 바쁘게 살아간다. 계속 일하고, 과제하고, 내일 있을 일과를 준비한다. 바쁘게 사는 건 실력 향상을 부르고 자신이 원하는 이상향으로 가는 과정이니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일, 공부만 하는 건 좋지 않다.


지금 하는 일이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건지, 오늘 일과는 어땠는지,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가져야 하는지,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정리하지 않고 흐르는 데로 살아가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자신이 원하는 게 뭔 지조차 깨닫지 못한다.



시간이 지나 자신이 하는 일로 무엇을 얻을지, 목표가 뭔지 뚜렷하게 말하지 못한다. '열심히 다녀야지, 더 다녀야지, 승진해야지, 성적 잘 받아야지, 졸업해야지, 이직해야지.' 같은 막연한 대답만 하고 생각은 '이게 맞나?'라는 의문만 가지며 복잡해진다.


사회에는 많은 앨리스가 있다. 앨리스도 이상한 나라에 오며 계속 변하고 이상한 체험을 하며 외부에만 신경 쓰느라 내면을 신경 쓰지 못했다. 그러니 자신이 누구라고 대답하지 못한다. 내면을 탐구하지 않고 많은 경험만 한다면 우린 우리가 무엇을 위해 일하고 공부하는지,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 누구인지 모르며 살게 된다.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뭘 잘하는지, 꿈이 무엇인지, 그걸 위해 뭘 하는지 등 설명이 가능한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그러니 바빠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든, 자기 전이든 자신이 하는 일이 맞는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자. 영화에서 앨리스는 여왕에게 도망치다 나비가 된 애벌레를 만나 똑같은 질문을 받지만 도망치느라 바빠 자신이 누군지 대답하지 못한다.


변화가 가득하고 많은 사람과 만나는 현대에서 자신이 누군지 모르고 설명할 수 없다면 자신을 잃어가는 과정이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뭘 좋아하는지 설명하고, 현재 자신이 어떤 고유한 존재인지 알며 살아야 우린 변화 소용돌이에 살아남아 진정한 자아를 지키거나, 만드는 게 가능할 테니까. 정보화 시대라 정보가 넘쳐나지만 먼저 해야 하는 건 자신이 누구인지 파악하는 일이다. 그거보다 우선해야 하는 탐색은 없다.




오늘은 앨리스와 애벌레 대화를 보며 우리는 앨리스와 같을까? 아니면 자신이 누군지 확실히 아는가? 이야기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어떤 사람이고 뭘 좋아하고, 잘하는지 등을 말하는 게 가능한가? 해본 적이 없다면 시도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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