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달콤함으로 무장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라고 생각했다. 그 안에는 설렘이 있었고, 기쁨이 있었고, 누군가를 안아줄 수 있는 용기가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사랑이라는 단어 뒤에 숨어 있는 진짜 마음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세상에 나와 처음 갖게 된 역할은 딸이었다. 딸이라는 이름으로 부모의 기대에 스스로를 맞춰가며 사랑받기 위해 애썼다. 부모님에게 자랑스러운 엄친딸이고 싶었지만 공부로는 기쁘게 해드리지 못해 말 잘 듣고 인사를 잘하는 착한 딸의 모습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아내가 되어서는 현모양처를 꿈꾸며 집안 일도 척척, 요리도 잘하고, 말하지 않아도 알아채는 것이 남편에 대한 배려이고 내조를 잘하는 완벽한 아내의 모습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도 집안일과 요리에 서툴어 남편의 말을 잘 들어주는 아내가 되기로 했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되자, 사랑은 선택이 아니라 본능이 되었다.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고, 가장 마지막에 잠드는 삶이 시작되었고, 아이들의 하루를 책임지며 나의 하루를 조금씩 지워갔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아이들을 위해 썼지만 ‘자식 농사가 가장 힘들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딱 맞다.
이렇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딸의 자리에서, 아내의 자리에서, 엄마의 자리에서 끊임없이 누군가를 채우며 살아왔다. 그러나 정작 나 자신은 그 사랑 안에서 얼마나 오래 비워져 있었는지… 사랑의 무게만큼 내 가방의 크기는 커져갔지만 그 가방 속에 나를 위한 건 점점 없어져 가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나에 대한 사랑도.
누구보다 잘 참고, 말없이 기다리고, 무언가를 포기할 줄 아는 사람. 그게 내가 배운 사랑의 모양이었다. 억울함, 외로움, 고단함, 그리고 말하지 못한 슬픔. 그 모든 감정들은 사랑이라는 말로 덮여 있었다.
그래서 지금, 그 사랑의 무게를 조금씩 내려놓고 비워졌던 나의 자리, 내 가방을 나의 것으로 다시 채우고 있는 중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면서도 나를 미루지 않기로 말이다.
하지만 그 역할 속에서 배운 사랑은 분명 긍정적으로 나를 성장시키고 변하게 했고 단단하게 만들었다.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엄마의 삶을 이해하는 딸이 되었고, 다르게 살아온 남편을 인정하고 이해하며 서로에게 든든한 힘이 되었고, 아이들이 선택하는 삶을 지지하고 응원해 주는 부모가 되려고 노력 중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의 형태와 방식은 참으로 다양하다.
누군가는 주는 것으로, 누군가는 기다리는 것으로, 또 누군가는 말없이 버티는 것으로 사랑을 표현한다.
그렇다면 당신의 사랑은 지금 누구에게, 어떤 모습으로 전해지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