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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엄마를 이해하기 시작한 날들

by 새봄

명절이 되기 한 달 전부터 친정 엄마의 일상은 평소보다 훨씬 더 바빠진다. 냉장고에 더 이상 들어갈 자리가 없을 정도로 명절에 쓸 음식 재료며 가족들이 먹을 음식을 사서 채우신다. 냉장고 1대, 김치 냉장고 1대로 충분하던 친정에는 내가 결혼을 하고 손주들이 생기면서 1대씩 늘어나다 보니 지금은 4대가 되었다. 10년 전 부산에서 인천으로 이사를 오면서 자주 친정을 가지 못해 명절에 내려가면 친정 냉장고 안 음식들은 우리 집으로 고스란히 옮겨온다. 다음 명절에나 엄마의 음식을 또 먹을 수 있으니 눈에 보이는 대로 모두 챙긴다. 이것저것 챙기다 보면 차 안에 들어갈 자리가 부족하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넣는다. 더 이상 들어갈 자리가 없으면 무릎에 안고 타야 할 정도로 한가득 챙겨 온다.


엄마는 냉장고에서 음식을 꺼내고 나는 그 음식들을 분류하고 아이들을 차까지 나른다. 남편은 그 음식들을 테트리스를 하듯 차 안에 차곡차곡 채운다. 채우는 시간은 1시간 남짓 걸린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 무수한 반찬통과 과일 상자들, 갖가지 나물과 고기 양념 봉투들 속에는 단순한 ‘명절 준비’ 이상의 것이 들어 있었다.


명절은 누가 먼저 오라고 하지 않아도 모두가 모이게 되는 날이기에, 그 귀한 시간을 배고픔 없이, 서운함 없이, 다툼 없이 보내게 하려면 엄마의 손길이 많이 들어가야 한다는 걸.

엄마는 음식을 준비하는 게 아니라 우리를 향한 사랑을 채우고 계셨던 것이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밥을 먹으며 웃는 그 장면 하나를 위해, 엄마는 한 달 전부터 냉장고 문을 수도 없이 열고 닫았을 것이다. 가득 찬 냉장고를 보며 “이걸 언제 다 먹어?” 하고 툴툴거리던 나도 어느새 명절 음식을 정리해 차에 싣는 그 순간에야 깨닫는다. 딸을 향한 무한한 사랑을.


명절을 앞둔 엄마의 분주함 속에서, 나는 이제야 비로소 깨닫게 된다. 엄마의 냉장고는 단순히 음식을 보관하는 곳이 아니다. 그곳에는 엄마가 우리를 생각하며 차곡차곡 담아둔 시간과 정성이 함께 들어 있다. 그리고 그 냉장고를 가득 채우고 나면, 엄마는 비로소 안심한다.

“우리 애들, 명절 내내 잘 먹고 잘 지내겠구나.”

이제는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만큼, 나도 엄마가 되어가는 중이다. 그래서 이제야, 친정엄마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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