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 7시야!”
알람이 울리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아이들을 깨우는 일이다. 이 한마디로 나의 하루, 그리고 엄마의 역할이 시작된다. 따뜻한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등교 전 가방을 한 번 더 확인하며 아이들이 하루를 무사히 보내기를 바란다. 모든 소소한 행동 속에는 보이지 않는 걱정과 사랑이 함께 들어 있다. 엄마로서의 나는 항상 아이들의 얼굴을 살핀다. 불편하지 않을까, 배고프지 않을까, 먼저 알아봐 주고 챙겨주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이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하루는 이렇게 아이의 리듬에 맞춰 흐른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나면 그때부터는 필요한 학습 교재를 고르고 교육 정보를 찾고 아이들에게 맞는 학습 코칭을 하기 위해 공부한다. 그렇게 또 다른 역할인 선생님이 된다. 선생님인 나는 엄마와는 조금 다르다. 감정보다 설명이 앞서고, 걱정보다 방법을 제시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아이가 답을 찾는 눈빛을 볼 때마다 ‘아, 이래서 내가 이 역할을 계속하고 있구나’ 하는 보람이 찾아온다.
어느 순간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가방을 툭 내려놓으며 묵직한 한숨을 내쉰다. 그때 나는 또 다른 역할로 조용히 바뀐다. 이번에는 ‘인생 선배’이다. 아이의 고민은 단순할 때도 있고, 한 번에 해결할 수 없는 깊은 문제일 때도 있다. 하지만 어떤 고민이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같다. 먼저 귀를 열고, 아이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것이다. 내가 모든 답을 알고 있는 건 아니지만, 나 또한 학교라는 곳을 지나왔고, 그 시절의 허둥댐과 막막함을 알고 있다. 그래서 조언을 줄 때는 늘 조심스러운 마음이 든다. 아이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되되, 아이의 삶을 대신 결정하지는 않는 선에서 말해야 한다.
“엄마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먼저 살아본 사람으로서 말하는 건데…”
이런 말이 입 밖으로 나올 때마다 나 스스로도 자라나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우리는 점점 더 많이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어간다. 예전에는 내가 일방적으로 돌보고 챙기던 관계였다면, 이제는 서로의 하루를 공유하고, 서로의 삶을 응원하는 동반자 같은 순간들이 늘어난다.
아이들이 크면서 나도 변했다. 아이의 성장이 단순히 키가 크는 일만이 아니라는 걸, 내 역할도 함께 바뀌어야 한다는 걸 요즘 더 많이 느낀다. 아이들이 새로운 도전 앞에서 망설일 때, 나는 다시 용기를 내는 법을 배운다. 아이들이 실패하고 울 때, 나는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힘을 다시 연습한다.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로서 우리는 서로에게 거울 같은 존재가 된다. 아이의 질문에 답하다가 오히려 내가 배운 것들이 많고,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다가 나 역시 더 단단해진다.
결국 엄마는 단일한 정체성이 아니다. 하루에도 여러 번 다른 모습으로 아이 앞에 서야 한다. 아침에 깨우는 엄마, 공부를 돕는 선생님, 마음을 읽어주는 보호자, 조언을 건네는 인생 선배, 그리고 서로의 성장을 응원하는 동반자.
이 모든 모습은 마치 하나의 몸에 여러 개의 심장이 뛰는 것처럼, 각각의 리듬과 온도를 가지고 있다. 때로는 번갈아 뛰고, 때로는 동시에 뛰며, 나를 엄마라는 이름의 세계에서 살게 한다. 멀티페르소나를 살아가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엄마인 나는 이 역할들을 기꺼이 선택해 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아이가 나를 필요로 하는 순간마다 조용히 변신할 것이다. 그 모든 역할의 중심에는 결국 하나의 단단한 마음이 있다. 아이와 함께 더 나은 삶을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 오늘도 나는 그 마음으로 다시 하루를 시작한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모습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