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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erson Feb 11. 2023

우리가 한달살기를 해야 하는 이유 11

강릉에서 열한 번째 날

사진에 남는 것



강릉 한달살기를 하며 아침 먹는 습관이 생겼다.

바삭한 토스트에 달콤한 딸기잼과 땅콩버터를 바르고, 향긋한 커피와 고소한 우유를 곁들인다. 온 가족이 테이블에 마주 보고 앉아 함께 아침을 시작하는 이 새로운 의식이 우리 가족만의 특권인 것만 같아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느긋하게 아침 식사를 끝내고 오전 10시쯤 우리는 자동차 창문을 열고 상쾌한 아침 공기를 가르며 달린다. 출발한 지 채 20분도 되지 않아 새파랗게 우리를 반겨주는  바다를 바라보며 해안 도로를 달린다. 우리는 오늘 '하슬라아트월드'로 가는 중이다.

하슬라아트월드는 미술관, 박물관, 공원이 함께 있는 전시시설이다.

이 시설은 보통의 전시시설과는 구별되는 점이 있다. 벽으로 막힌 공간 속에 고립된 작품만이 보는 이의 시선과 집중을 독점하는 일반적인 전시시설과는 달리, 이곳은 완성도만 놓고 봤을 때는 평범하고 조악하기까지 할 수 있는 작품들을 바다, 하늘, 숲 등 자연과 조화시켜 장관을 이루게 만든다는 것이다.

자연과 예술작품의 콜라보가 주는 이국적인 감성에 매료된 여행자들의 흥분이 사진을 찍기 위해 길게 늘어선 그들의 얼굴에 묻어난다.



사진은 우리의 멋진 여행을 증명해 주는 증거이다. 하지만 사진에는 이미지 말고도 많은 것들이 남는다.


사진 속에는 우리의 젊음이 남는다. 10대 시절 중2병에 걸린 것이 분명해 보이는 무표정한 얼굴, 20대 초반 아직도 철이 없지만 뭐든 자신만만해 보이는 얼굴, 이젠 부모가 되어있는 34살 지금의 얼굴.

작년에 찍은 사진만 보더라도 그 속에 있는 우리 얼굴은 더 어리고 아름답다.


사진 속에는 그날 우리의 감정이 남는다. 졸업식 사진 속 시원 섭섭하게 웃고 있는 아내의 얼굴, 데이트하며 함께 찍은 스티커 사진 속 밝게 웃고 있는 우리 얼굴, 아들들과 함께 간 여행 사진 속에서 어색하게 웃고 있는 알 수 없는 표정의 엄마 얼굴.

사진 속의 그날 그 장소에 가득 차 있는 얼굴들의 감정은 사진을 들여다보는 지금도 생생하게 전해진다.


사진 속에는 우리의 이야기도 남는다.

어두워 잘 보이지 않는 미래를 향해 함께 걸으며 20 대 10년을 손잡고 걸어온 나와 아내의 연애 이야기, 간이식 수술을 앞두고 잃을 것이 없어 무서울 것도 없었던 나와 엄마의 이야기, 어느 날 갑자기 세상에 태어나 우리의 전부가 되어버린 딸아이의 성장 이야기.

우리가 지나온 희로애락과 서사가 흑백영화처럼 눈앞에 펼쳐지는 경험을 선사해 주는 우리의 사진들.



그래서 사람들은 그렇게도 열심히 사진을 찍는다.

사진을 남긴다는 것은

언젠가 분명히 꺼내보고 싶어질 우리의 모습이 그려진 책을 써 내려가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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