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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erson Feb 03. 2023

Modern Life

Pierson 단편소설

                                           



아침 일찍 오순경은 침실에서 눈을 떴다. 오늘은 토요일이다. 그의 아내와 이제 태어난 지 100일이 채 안 된 어린 딸은 각자의 침대 위 포근한 이불 속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9월임에도 후텁지근한 아침 공기와 비번 날임에도 그를 일찍 일어나게 만든 대체근무조차도 소중한 가족을 바라보는 그의 행복을 덜어내진 못했다.

늦잠이나 자고 일어나 커피 한잔 마시고, 가족들과 동네 길을 산책하면 더할 나위 없을 비번 날이지만, 유감스럽게도 지구대에 근무인원이 부족하여 대체근무를 하게 된 오순경은 서둘러 씻고 집을 나섰다.


지구대에 도착한 오순경을 순찰팀 팀장이 반겼다.

"오순경! 비번인데 불러내 미안해. 이주임이 급하게 휴가를 내는 바람에 인원이 부족하지 뭐야"

"아 괜찮습니다. 돈 벌고 좋죠 뭐" 


오순경의 대답에 팀장은 웃으며 대답했다.

"오순경이 나와줘서 오늘 왠지 수월한 하루가 될 것 같은걸? 점심도 맛있는 걸로 사줄게!"


여느 직장과 마찬가지로 지구대에도 일종의 징크스가 있다. 한가하다는 둥의 말을 하면 그 즉시 신고가 빗발친다거나 골치 아픈 신고가 들어온다는 등의 것이다.


"별 소릴 다하시는 구만.."

오순경은 그렇게 생각하며 다른 직원들과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잔 들고 가벼운 잡담을 나누며 대체근무를 시작했다.



                                                      



오순경은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는 보통의 남성으로서 30살 비교적 늦은 나이에 경찰생활을 시작했다. 대부분 사람들은 경찰관이나 소방관을 생각하면 특별한 사명감과 소명의식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겠으나 오순경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은행원이 되고 싶었다. 비교적 연봉이 높은 직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것이 아니었기에 그가 '돈을 잘 버는 직업'에 관심이 많았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을 수 있다. 사춘기 시절 부모가 이혼한 이후로 어머니와 동생과 함께 셋이서 살았고, 덕분에 가족에 대한 유대감은 각별했으나 사회와 타인에 대해서는 종종 무관심한 듯 냉정하게 행동했다.


물질 만능주의와 냉정함이 똘똘 뭉쳐 만들어낸 그를 취업시장은 은행원이 아니라 경찰관으로 만들었고, 대다수의 직장인들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사명감이 아니라 자신의 생계와 가족의 안위만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평범한 현대인이 되었다.


"오늘 근무도 그냥 무탈하게 지나가면 좋겠네요."

오순경의 말에 순찰차에 함께 타고 있던 김주임이 대답했다.

"그러게 말이야. 어제 야간 근무팀은 신고가 많아서 좀 바빴던 것 같은데, 오늘은 조용하겠지? 지긋지긋한 인간들. 맨날 술 처먹고 싸우고 마누라나 패고. 얼른 정년퇴직을 해야 그 꼴도 그만 보지."


"그러게요. 저는 출근만 하면 사람이 싫어지네요."


무익한 대화가 몇 번 오갔을 뿐 오순경과 김주임은 순찰차에 앉아서 창밖을 내다보거나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1시간이 넘도록 말없이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그때 신고가 들어왔음을 알리는 소리와 함께, 순찰차 대시보드에 달린 태블릿PC에 신고내용이 나타났다. 


'코드 0, 자살 관련, 여자가 화단에 누워있다. 떨어진 것 같다.'


"아, 자살인가 보다. 바로 갈게요?" 오순경은 급하게 신고지 방향으로 순찰차를 몰았고 김주임은 한탄하듯 대답했다.


"그래 빨리 가자. 아이씨, 하필 우리 팀 근무할 때 난리야."






신고 현장으로 순찰차를 운전해 가는 동안 화단으로 뛰어내린 여자의 사연에 대해서는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대충 우울증이 겪었을 것 같다거나 기구한 사정을 이겨내지 못한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조차도 하지 않았다. 단지 하필 왜 자신이 대체근무를 하는 날 자살 사건이 발생했는가라는 생각과 현장에 도착해서 해야 할 매뉴얼을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을 뿐이었다. 


신고 현장에 가까워지자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이 보였다. 그 너머로 화단에 누워있는 50대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가 보였다. 119구조대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고, 한눈에 봐도 중상으로 보일 만큼 팔다리를 부자연스럽게 늘어뜨린 부상자에게 경찰관이 해줄 수 있는 일은 구조대를 기다리며 인파가 모이지 않게 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오순경은 이전에 들었던 이야기를 잠시 떠올렸다. 부상자를 도왔으나 결국 부상자가 사망하자 유가족들이 경찰관을 민형사상 고소했고, 경찰청은 철저하게 직원 개인의 문제로 여기며 보호하지 않았으며, 결국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해당 직원은 수년간 마음고생을 한 뒤 다른 지방으로 전근 갔다는.


"선생님들 어서 댁에 들어가세요! 이렇게 모여 계시면 구조대가 왔을 때 방해가 돼요!"

오순경이 소리쳤지만 사람들은 경찰관의 해산 요청에 응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저 이 안면 없는 타인의 죽음이 지루한 그들의 일상 속 신선한 볼거리라도 되는 양 구경할 뿐이었다. 

인파들 사이를 언제 도착했는지 119구조대가 비집고 들어왔고, 죽어가는 부상자의 호흡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기 시작했다.


"혹시 이 여성분 가족이나 지인분 계십니까?" 오순경이 소리쳤다.


경찰관은 사건이 발생하면 그것이 사고인지, 범죄와 연관이 있는지 조사해야 하며, 그 모든 것의 기초는 관련자들의 신원을 파악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스꽝스럽게 보일지 몰라도 여자가 죽어가는 상황에서 오순경이 해야하는 가장 중요한 매뉴얼 상 업무는 그녀의 신원을 묻는 것이었다. 그때 저 멀리서 20대 초반 정도 돼 보이는 젊은 여자가 주저앉으며 소리쳤다.


"으악! 어떡해!"

오순경과 김주임은 젊은 여자가 화단에 누워있는 여자의 가족임을 알아챘다.


"선생님, 저기 계신 분 가족분 되시나요?" 오순경의 물음에 젊은 여자는 끅끅대고 오열하며 대답하지 못했다.


"선생님, 너무 놀라시고 경황이 없겠지만 대답해 주셔야 합니다. 저기 계신 분 가족이신가요?"

".네..네, 저..저희 어..엄마에요." 여자는 겨우 대답했다. 


젊은 여자는 쇼크 상태였다. 너무 놀라서 몸을 사시나무 떨듯 덜덜 떨고 있었고, 초점 없이 황망하게 허공을 보는 눈에서는 미친 듯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오순경은 질문을 계속했다.


"어머니와 함께 집에 계시던 겁니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자..잘 모르겠어요. 저..전 그냥 방에 있었는데.."

계속되는 오순경의 질문에 젊은 여자는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로 겨우겨우 대답을 했다.


"어머니 성함과 생년월일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오순경이 다시 물을 때, 멀리서 구급 대원이 외치는 것이 들렸다.

"병원으로 옮기겠습니다! 보호자분 한 분 함께 가주셔야 합니다. 따님이 같이 가주시죠"

구조대가 부상자를 병원을 옮길 준비를 끝낸 것이다. 

현장에 있던 유일한 가족인 딸이 보호자로서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동행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오순경과 김주임은 아직 부상자와 젊은 여자의 이름을 알아내지 못했고, 아무런 정보도 없이 지구대로 복귀하면 순찰팀장 나아가 경찰서 상황팀장까지 업무 처리 방식에 대해 문제 삼을 것이 분명했다.


"오순경! 빨리 물어봐 인적사항!"김주임이 말했다.


"선생님, 힘드시겠지만 빨리 대답해 주셔야 해요. 어머니 성함과 생년월일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젊은 여자는 이미 실성한 것이 마찬가지였다. 

힘없는 눈빛으로 허공의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조차 제대로 모르는 것처럼 보였으나 겨우겨우 오순경이 요구하는 정보들을 대답했다.

대답과 동시에 구조대는 젊은 여자를 낚아채듯 서둘러 구급차에 싣고 병원을 향해 사이렌을 울리며 멀어져 갔다. 그렇게 현장에서 경찰의 업무가 끝이 났다. 이제 지구대로 돌아가 보고서를 작성할 것이고, 이후에 처리는 경찰서 관련 부서가 알아서 할 것이며 부상자와 딸은 병원과 구조대에서 맡아서 처리할 것이다. 

긴박한 순간이 지나가자 오순경은 짜증 나는 피로감을 느꼈고, 자주 발생하지 않는 자살 사건이 하필 자신의 대체근무일에 발생한 것이 불만스러웠다. 동시에 아주 잠시 동안 어쩔 줄 몰라 하던 여자가 걱정돼서 말했다.


"그 딸, 엄청 충격받은 것 같던데 괜찮으려나? 정신 상담 필요할 것 같은데 구조대가 신경 좀 써주겠죠?"


김주임이 대답했다.

"그렇겠지 뭐. 우린 할 일 다 했으니 어서 가자고."




                                                  



 자살 사건 현장에서 지구대로 돌아온 오순경과 김주임은 팀장에게 상황을 보고했고, 현장에서 알아낸 인적 사항과 알아낸 사실을 바탕으로 '상황보고서' 작성을 마친 후에야 말끔하게 손을 털었다. 시간은 오후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퇴근까지는 5시간이 남았네, 조용하더니 갑자기 자살 신고네요."오순경이 말했다.


"그러게, 이거 오순경이 신고를 몰고 다니는 거 아니야?" 순찰팀장이 농담조로 대답했다.


"아 그런가요? 제가 다들 고생시키는 것 같으니 다음부터는 대체근무 나오지 않겠습니다 팀장님."

"어? 농담이야 오순경. 오순경 나와준 덕분에 이주임이 휴가 낼 수 있었잖아. 고생했으니까 오후 간식은 내가 쏠게. 저기, 만두나 사다가 먹자고!"


오순경을 비롯한 10명의 경찰관들은 지구대에서 출출한 배를 채우며 찜찜한 자살 사건은 잊고 퇴근시간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계가 7시를 가리키는 그때, 신고를 알리는 소리가 지구대에 울리며 한 직원이 소리쳤다.


"또 자살 신고에요! 여자가 아파트에서 투신했나 봐요. 김주임님이랑 오순경님 순찰차 관할입니다."


"김주임이랑 오순경이 먼저 나가봐! 나도 다른 순찰차 타고 바로 쫓아갈게" 순찰팀장이 이어서 소리쳤다.


"오늘 무슨 날이야? 자살이 줄줄이 터지네 젠장!" 김주임은 투덜대며 걸어나갔고, 오순경은 찜찜한 기분으로 순찰차를 신고 장소로 몰았다. 순찰차를 타고 가며 태블릿PC로 지도를 보던 오순경은 뭔가 이상한 것을 눈치채고 말했다.


"김주임님, 어? 이거 이상한데요?"

"뭐가?" 김주임이 대답했다.

"어? 아씨, 이거 아까 그 아줌마 화단으로 뛰어내린 데랑 같은 장소인데요?"

"뭐!?" 

도착한 사건 현장은 그들이 몇 시간 전 자살 사건을 처리한 그 장소였고, 순찰차에서 내린 오순경은 탄식하듯 말했다.


"아 씨발. 씨발! 아 이거.. 김주임님, 이거 아까 그 자살한 아줌마 딸이에요!"


현장에는 불과 몇 시간 전 자살한 중년의 여자가 누워있던 자리에 오순경이 다그치고 타이르며 인적 사항을 물어보던, 구급차에 태우는 순간 아주 잠시 '괜찮겠지?'라고 싸구려 걱정을 던져 주었던, 눈물을 쏟아내며 가쁜 숨을 몰아쉬던 그 젊은 여자가 자신의 어머니와 같은 모습으로 고요하게 누워있었다. 힘없는 눈을 허공의 어딘가를 보면서.



                                                        



 이미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한 오후 7시 15분, 화단에 누워있는 젊은 여자를 9월의 퍽 아름다운 노을이 붉게 물들였다. 아까와는 다른 새로운 사람들이 몰려들었지만, 아까와 마찬가지로 경찰관의 해산 요청을 거부하며 타인의 비극을 구경했다. 

오순경은 또다시 이 젊은 여자의 가족을 찾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몇 시간 전 그랬던 것처럼 20대 초반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가 멀리서 미친 듯이 소리 지르기 시작했고, 몇 시간 전과는 다르게 보호자라는 말이 어울릴 만한 나이의 중년 남자가 등산복을 입고 현장으로 달려왔다.


"제가 얘 아빠입니다. 어떻게 된 건가요? 이게 무슨 일이야!" 어른 남자가 말했다.


"내가 잠깐 미용실 간 사이에 누나가 뛰어내렸나 봐!" 20대 초반의 남자가 울면서 말했다. 


오순경은 분주하게 매뉴얼대로 응급처치를 하는 구급 대원들과 여자의 가족들을 번갈아 보았다.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이 급박한 상황이 마치 모두가 다르면서도 비슷한 각자의 역할을 맡아 선보이는 연극처럼 보였다. 


구급 대원은 여자를 병원으로 옮기기 위해 구급차에 옮기고 있었다. 가족들은 눈물을 흘리며 하루 동안 반복된 똑같은 두 번의 비극 앞에 슬퍼하고 있었다. 

오순경과 김주임은 여자의 아버지와 남동생을 뒷자리에 태우고, 병원으로 향하는 구급차가 교통신호와 차량 정체에 의해 호송이 지연되지 않도록 앞서서 교통정리를 하며 대학병원을 향해 빠른 속도로 순찰차를 몰았다.

뒷자리에서는 젊은 여자의 남동생이 김주임이 앉아있는 앞 좌석 시트 뒤편에 머리를 박으며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나 때문이야! 이 미친 새끼, 이 와중에 미용실을 왜 가, 이 미친 새끼야."


젊은 여자의 아버지가 오순경에게 물었다.

"경찰관님, 저희 딸 괜찮겠죠? 죽는 거 아니겠죠? 이게 무슨 일이야. 지 엄마 죽은 지 몇 시간이나 됐다고"

"저희가 최대한 빠르게 호송될 수 있도록 해보겠습니다" 오순경은 대답했다. 


사실 오순경은 그 순간에도 아주 적절한 답변을 한 것이었다. 물론 오순경은 젊은 여자가 죽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니,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오순경의 매뉴얼대로 적절하게 대답한 것이다. 여자의 생사와 관련 없이 그저 자신의 업무에 충실하겠다는. 위로는 위험할 수 있다. 말은 오해를 낳으니까.


오순경은 운전하며 이 가족들에게 필요한 질문을 몇 가지 했고, 도대체 이 가족을 이해할 수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보호자이자 아버지라는 이 중년 남자는 아내가 자살한 시간에 등산을 하러 갔었다고 했다. 이후 아내의 자살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병원에 갔을 때는 응급실 대기공간에 넋이 나간 딸만 혼자 앉아있었을 것이다. 

딸과 함께 집에 돌아온 후 이 중년 남자가 보호자로서, 아버지로서 자신의 딸을 돌봤는지 알 수 없다. 

중년 남자는 화장실에 가있었다고 대답했고, 그 사이에 딸은 엄마가 죽은 방법 그대로 세상을 등졌다. 


김주임의 의자에 머리를 박으며 자책하고 있는 이 젊은 남자는 여자의 남동생이다. 어머니의 자살로 충격을 받았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를 풀러 미용실에 갔다고 이야기했다. 당최 이해가 되지 않는 전개이다. 어쨌든 그의 누나는 죽기로 결심했다.


오순경은 여자가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자살한 엄마를 따라갈 수밖에 없도록 가족으로부터, 사회로부터 방치된 것처럼 여겨졌다. 또 밑도 끝도 없이 자신에게도 생기는 죄책감 비슷한 불쾌한 감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여자는 죽었다.


7시 반쯤 대학병원 응급실에 도착한 오순경은 뒤따라온 구급차에서 여자가 들것에 실려 내리고, 응급실로 실려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함께 온 가족들이 병원 직원들이 내미는 서류를 작성하는 동안 오순경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유가족들의 정신상담을 의뢰하기 위해 직접 자살예방 상담 센터 상담사에게 전화를 했다.


대학병원에 상주 중인 상담사가 오순경의 대략적인 설명은 듣고 난 이후로 유가족들 앞에 나타나기까지는 40분가량이 소요되었다. 상담 접수를 위해 매뉴얼 상 작성해야만 하는 서류의 있어서 좀 늦었다며 머쓱하게 말했다.

"오래기다리셨죠? 서류가 많아서.."

"가족들이 하루아침에 두 명이나 그렇게 돼서.. 잘 좀 부탁드릴게요." 오순경이 말했다.


"그러게요, 어쩌다가.." 상담사가 말끝을 흐렸다.


"혹시 오늘 저 젊은 여자분 상담 관련해서 전화 주신 분 없었나요? 구조대라던가"

"아니요. 없었네요.."


"아..."


오순경은 순찰차에 앉아서 이제는 캄캄해진 창밖을 통해 퇴근길 바쁘게 어딘가를 향해 걷고 있는 타인들을 바라봤다. 모두가 최선을 다해 하루를 살아낸 것이 분명해 보였고, 모두가 현대인답게 서로를 무관심하게 지나치고 있었다. 


모녀의 죽음은 그들의 나약함 때문만은 아니다. 

중년의 여자는 오랜 시간 우울증을 앓았다고 했다. 오늘 갑자기 죽은 것이 아니다.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죽어갔고, 그 사실에 지쳐 이제는 무관심해진 남편이 등산을 간 사이에 긴 시간 미뤄 온 죽음에 마침표를 찍었다. 

젊은 여자도 무관심 속에 죽었다. 어머니의 자살이라는 엄청난 충격을 겪고도 달래준 가족이 없었고, 보호자를 동행시킨다는 명목하에 데려간 구급 대원은 그녀에게 상담사를 연결해 줄 생각을 하지 못했으며, 오순경 자신 또한 하찮은 걱정 한번 던져 준 것으로 그녀에 대해 자신의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죄책감이 들었고 후회가 되었다. 울고 있던 여자에게 매뉴얼대로 인적 사항을 물어보는 그때, 덜덜 떨고 있는 손을 한번 잡아주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구급차에 태울 때 자살예방센터 상담사에게 여자를 연결시켜 달라고 구조 대원에게 부탁하지 않은 것이 후회스러웠다.

이렇게 죽어버릴 줄 알았으면, 그렇게 보내진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의미하지만 어쩌면 젊은 여자가 극단적인 생각을 참을 수 있지도 않았을까.

그렇게 해서 단 한순간 참은 그 결정이 다시 그녀에게 삶이 되고, 언젠가 그 기억을 극복해 내서 자신의 가족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

자신은 어린 시절 큰 역경을 겪었기에 분명 자신의 아이들과 가족들을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하며 살아가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김주임의 한탄하는 듯한 말에 오순경은 정신을 차렸다.


"30년 경찰생활하면서 이런 일은 또 처음이네, 그 아줌마가 지 딸 데려갔구먼"

"그러게요. 진짜 별일이 다 있네요. 평생 못 잊을 것 같은데요?"

"그러지 말아. 그냥 일이야 일. 그렇게 생각해야지 오래 해"


순찰차의 전자시계는 창백한 하얀 색감의 숫자로 오후 8시 30분을 표시하고 있었다. 

오순경과 김주임은 순찰차를 타고 서둘러 병원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퇴근시간이 벌써 30분이나 지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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