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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erson Feb 04. 2023

우리가 한달살기를 해야 하는 이유 4

강릉에서 네번째 날

걱정에 대해서


언제 가도 실패 없는 나만의 장소를 추천해달라면, 망설이지 않고 강릉의 겨울 바다라고 답하겠다.

한달살기 나흘 차 동안에 매일 같이 와서 보는 강릉의 바다는 여전히 짙고 깊은 파란색으로 보는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킨다.



경계가 모호할 만치 맑은 하늘과 바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의 소리만이 들리는 새하얀 모래 세상을 걸으면서도 오늘 아내의 얼굴에는 문득문득 그늘이 진다.

걱정거리가 생겼기 때문이다.


아내가 걱정을 다루는 방법은 꽃나무 키우는 것과 비슷하다. 걱정이 현실로 발현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남았음에도 활짝 만개하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잊힐만하면 다시 관심을 부어준다.


결국 시간이 흘러 걱정이 실현되던 실현되지 않던 관계없이, 걱정에 모두 쏟아부어버린 아내의 관심은 이미 말라붙어 다른 곳에 스며들지 못한다.




이런 말을 하고 있는 나라고 걱정을 다루는 데 도가 튼 것은 아니다. 매번 예상치 못한 큰 걱정거리들이 생길 때면 여지없이 당황하고 아쉬운 결정을 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걱정으로 나 스스로를 괴롭히는 문제에 대해서는 나름의 해결책을 분명히 찾았다고 말할 수 있다.


먼저 걱정의 근원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다. 만약 내가 큰 실수를 저질렀다면, 혹은 해결해야 할 어려운 문제가 갑자기 나타났다면 잠시 동안 당황하겠지만 곧 문제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것이다.


문제가 정확히 파악이 됐다면, 이제 그 문제로 인해 발생할 최악의 상황을 먼저 가정해 볼 것이다. 어쩌면 그 문제로 인해 나는 조직 내에서 이단아로 소문이 날 수도 있을 것이고, 어쩌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최악의 상황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게 되었고, 적어도 그로 인해 나와 나의 가족 인생이 끝장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내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생각해 볼 것이다. 방법이 있다면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실행에 옮길 것이다. 방법이 없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 상황을 그냥 받아들이고 최대한 그로 인해 고통받지 않기 위해 문제에 대해 생각하기를 중단할 것이며 따라오는 결과에 순응할 것이다. 성공이건 실패 건 나는 걱정으로부터 오래 고통받지 않을 것이고, 그로 인해 내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내 아내는 걱정으로부터 도피하느라 잠자리에 들기 전 조용히 책을 읽으려던 시간을 자극적이고 무의미한 TV 프로를 시청하는 데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지금은 잠이 든 덕분에 도피를 내일로 유보하는데 성공했다.

나는 내 아내가 내일 오전도 걱정과 치열하게 싸우느라 다른 것을 사랑할 겨를이 없다는 것을 안다.

그렇기 때문에 강릉의 탐색하기 위한 새로운 모험을 포기하고 대신에 익숙한 아름다움, 강릉 바다를 가기로 결정한다.


어쨌든 나의 아내를 괴롭히는 회사일이라는 이름의 걱정 나무는 내일 오전 중으로 꽃이 피던 지던 결론이 날 것이고,

실패 없는 나만의 장소 강릉 바다가 그 흔적을 말끔히 지워버리기를 바라며 곁에서 그녀를 응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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