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이 지났어도 운전은 초보, 네비대로 갈 수 없는 길치, 나는야 김여사 아니고 양여사다.
길치에게 다소 어려운 미션, 직접 운전해서 지정해 준 장소로 찾아올 것.(조수석에 앉아서 수 십 번을 가 본 곳이라도 그 길은 항상 초행길로 인식됨)
길치가 가장 싫어하는 모습은 원래 있던 길을 놔두고 새로운 길을 만드는 광경을 보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도로 폭이 넓어지고, 시내까지 나가는 시간이 훨씬 단축될 거라며 환영하는 분위기지만 나만은 웃질 못한다.
'이러다가는 정말 친정집도 못 찾아간다고요.'
아는 길을 잃는 참담함을 누가 알아주랴.
길치인 것만 문제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겁 많고 소심한 성격은 운전에도 영향을 미쳤으니,
골목길은 마주 오는 차가 두렵고,
3차선이 넘어가는 도로는 차선 변경이 무서워 멀쩡한 차를 놔두고도 웬만하면 택시를 이용하는 사람이 바로 나다.
그런 내가 그날은 사고를 내려고 그랬는지 태우러 오겠다는 일행에게 초행길을 직접 운전해서 찾아가겠다고 선언했다.
복잡한 시장 골목 주차장인 게 마음에 걸렸지만
조수석에 앉아서는 몇 번이나 가 본 곳이기도 했고,
지도 검색 결과 고작 20분 거리인 데다, 대부분 직진만 하면 되는 곳이어서 없던 용기가 난 것이다.
'운전 경력이 6년인데 언제까지 두려워만 할 것이냐. 이제 나도 초보 아닌 초보를 벗어나 보자' 하는 생각이었다.
그곳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부부도 내게 할 수 있다고 용기를 주며 응원해 주었다.
나는 약속 시간보다 40분 이상 여유 있게 출발했다.
직진으로만 가면 도착할 곳인데 웬일인지 유턴이 한 번 있었던 걸 제외하면 기특할 만큼 잘 찾아갔다.
약속 지점 바로 앞까지는!
드디어 네비에서 보이던 시장 주차장이란 글자와 좌측 화살표가 그려진 푯말이 멀리서 눈에 들어왔다.
그걸 발견한 순간부터 나는 다른 곳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벌써부터 해냈다는 기쁨으로 들떠 있었다.
자랑하고 싶은 그 순간에 내 걱정으로 먼저 와 기다리던 부부에게 전화가 왔다.(남편끼리는 친구이고, 그의 아내는 나보다 어려서 정말 편한 언니 동생 사이다.)
"언니, 지금 어디만큼 왔어요. 저희는 도착했거든요."
"아, 그래. 나도 거의 다 온 것 같아. 지금 시장 주차장이라는 간판이 보이거든. 왼쪽으로 들어가라는 화살표가 있는데 거기로 들어가서 주차하면 될까?"
"정말 다 왔나 보네요. 혹시 주차장 입구에 아저씨들 서 있는 게 보여요? 보이면 좌회전해서 쭉 들어오면 돼요. 그럼 저희가 보일 거예요."
"어, 나도 아저씨들 보여! 그런데 저기는 너무 좁아 보이는데! 절대 지나갈 수 없을 것 같아. 좌회전하면 바로 오른쪽에 주차장 차단기가 있는데 거기로 들어가면 안 될까? 주차장 안에 자리도 있는 것 같아."
"언니, 그러지 말고 그냥 직진해서 들어오세요. 그럼 저 보일 거예요! 절대 안 좁아요. 언니 실력이면 충분해요. 겁먹지 말고 얼른 들어와요. 저 안 보여요?"
"그래?ㅇㅇ은 안 보여? 그런데 내가 여길 들어갈 수 있다고? 엄청 좁아 보이는데! 이게 가능하다고?"
"네, 얼른 들어와요. 언니 흰 차 보이네요. 어서 들어와요."
" 그래. 그럼 알겠어. 한 번 해볼게."
나는 좁은 골목길에 양옆으로 세워진 커다란 흰 탑차 사이를 지나가기 위해 차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조금 전 동생이 보이냐고 물었던 그 아저씨들이, 서 있던 자리에서 조금씩 앞으로 나오며 내 차의 움직임을 신경 쓰는 게 느껴졌다.
초보 운전자로 보여서 그런지 유독 관심을 나타내는 것 같았다.
나는 스피커폰으로 통화를 계속하며 조심조심 차와 차 사이를 지나가기 시작했다.
"와, 진짜 이게 가능하다고? 너무 좁아서 무서워."
"괜찮아요 언니! 충분하다니까요."
"어쨌든 알았어. 나 이미 들어가고 있어."
핸들을 잡은 손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좁은 탑 차 사이를 거의 다 지나왔다고 생각하던 순간 조수석 쪽에서 '퍽'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니 주차된 오른쪽 탑차의 백미러가 접혀 있었다.
나를 지켜보고 서 있던 아저씨들이 다 같이 나를 향해 다가왔다. 나는 당장 내리는 것도 무서워져 아직 통화 중이던 차량 스피커폰에 다급히 상황을 알렸다.
"어떡해, 나 사고 냈나 봐. 탑차 백미러를 받아버렸어!"
"뭐라고요! 언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지금 어딘데요? 언니가 안 보여요!"
"나도 네가 안 보여, 어디 있는 거야? 근데 일단 차부터 세울게. 남의 차를 받아버려서."
무서워서 어찌할 바를 몰랐지만 이미 일은 벌어졌고 차주분께 사과하는 게 먼저였다.
그래도 당장 내리지는 못하고 떨리는 손으로 창문을 내렸다.
피해 차량 운전자로 보이는 아저씨가 내게 소리를 질렀다.
"아니, 왜 남의 차를 치고 그래요? 그런데 차가 여기로 들어오면 안 되니까 일단 차를 다시 빼요!"
"죄송해요. 아저씨."
"아니, 죄송이 아니라 먼저 차부터 가지고 나가요!"
"네? 차를 다시 빼라고요? 안 돼요, 저는 절대 못해요.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죄송해요. 지금 제 일행들이 오고 있거든요. 정말 죄송해요."
"아니, 남의 차를 쳤으면 보상을 해 줘야지! 죄송이고 뭐고 여기는 대체 왜 들어온 거예요? 빨리 차부터 빼요."
"보상이요? 네, 보상은 당연히 해드려야죠!"
"아, 보상은 됐고, 차나 빼요!"
차주로 보이는 아저씨는 자신의 백미러는 슬쩍 쳐다보는 게 전부였고, 관심은 오로지 내 차를 빨리 내보내고 싶은 마음밖에 없어 보였다.
그리고 나를 놀리듯 보상 이야기도 했다가 딴소리를 했다가를 반복했다.
나는 그 골목이 무섭기도 해서 일행이 빨리 나타나주기만을 기다렸다.
이리저리 찾아 뛰어다니다 나를 발견한 동생은 나보다 더 놀란 모양이었다.
"언니, 언니가 지금 이 차들 사이를 지나온 거예요!"
동생도 사고보다는 좁은 차 사이를 지나간 내 행동에 더 놀라고 있었다.
"네가 들어오라고 했었잖아. 저기 봐, 저기 보이냐고 물었던 아저씨들도 서 계시는 것 맞잖아."
"세상에, 제가 말한 건 이 골목이 아니었어요! 여기보다 몇 미터 전에 또 주차장이 하나 있거든요. 거기로 오라고 한 건데. 게다가 거기도 아저씨들이 서 계시거든요!"
"나도 몰라, 아저씨들 보이냐 고해서 그런다고 한 건데."
말을 맞춰보니 우리는 서로 다른 주차장에서
서로 다른 아저씨들을 보면서
보이냐?, 보인다!
그럼 거기로 와라, 너무 좁아 보인다, 절대 좁은 게 아니다.라고 외치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정말 웃기는 건 누가 봐도 그 좁은 골목에 탑차까지 양옆으로 세워진 상황에선 그 누구도 지나가려고 도전! 하는 차는 결단코 없을 거란 사실이다.
뒤늦게 달려온 남편 친구도 상황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니, 여기를 어떻게 지나온 거예요?"
"몰라요 나도. 된다고 하니까 그런 줄 알고 들어온 거라고요."
"와, 가만 보니까 제수씨 운전 실력이 엄청나네요. 여기를 통과하다니. 일단 놀란 것 같으니 진정부터 해봐요! 이제 우리 왔으니까 문제없어요."
우리의 대화를 지켜보던 차주 아저씨는 남편 친구에게도 차부터 빼달라는 말만을 반복하셨다.
"저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한 번 해볼게요.
이야, 이거 정말 좁네요!"
남편 친구는 내 차를 후진시키면서도 좁다는 말을 계속했다. 그리고 드디어 백미러를 접은 채 내 차가 탑차 사이를 벗어났다.
그 모습을 확인한 나는, 꾹 누르고 있었던 눈물샘이 터져버렸다.
내 편인 사람들이 와준 데다 문제가 해결됐다는 안도감에 긴장이 풀린 거였다.
게다가 짓궂게 보였던 아저씨는 자동차 수리 비용도 받지 않겠다고 하며 나를 용서해 주었다.
긴장이 풀린 데다 감사한 마음이 더해져 눈물은 그치질 않았다.
돌아가는 길엔 펑펑 우느라 운전도 하지 못했고, 그날로 나의 새 차는 헌 차가 되고 말았다. (내 차에 난 스크래치는 손으로 닦았더니 사라졌다. 부디 아저씨의 차도 그랬으면 좋겠다.)
사실 아저씨는 이런 일을 한두 번 겪은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니 가만히 있는 내 차는 다들 왜 자꾸 받아버리는 거야!"
"아이고, 저 여자는 운다 울어."
시장 골목을 빠져나가는 동안에도 아저씨들은 한참 동안 내 차를 바라보았다.
글을 올리지 못하는 동안 제 손이 근질거려서 혼났답니다. 크고 작은 일들이 많았거든요.
제 이야기보따리는 이렇게 하나씩 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