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는 공상과학
나의 정식 명칭은 KJH이다. 본체 김주화의 복제인간이다. 본체보다 2살 어리다. 원래는 복제 인간이 일반화되지 않았지만 정부의 규제가 완화되면서 나는 체세포 복제를 통해 만들어졌다. 유전적으로 본체와 완전히 동일하지만, 먼저 나보다 2년을 산 본체는 나와 전혀 다른 경험을 가지고 있다. 내가 태어난 것은 본체의 의도보다는 본체의 부모, 즉 복제된 유전자 개체 소유자의 의도와 결정이 컸다.
본체, 다른 말로 나의 언니는 유전적으로는 일란성 쌍둥이와 같지만, 우리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성장했다. 부모님은 복제신청서 상으로는 '복제된 유전자 개체의 소유자'였으나, 실제로는 첫째와 둘째를 구분하지 않고 충분히 부모의 역할을 다하려 노력했다. 또한 부모님은 첫째에게 겪었던 시행착오를 둘째인 나를 통해 만회하고자 하는 기대감도 갖게 되었다.
유전적으로 동일하다는 이유로 두 자녀 모두에게 더 철저한 보호와 관리가 이루어졌다. 암은 같은 돌연변이 유전자를 지니고 있더라도 환경에 따라 발현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부모님의 맞벌이로 인해 어렸을 때부터 가공식품을 주로 섭취한 언니는 결국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항암 치료를 받던 언니는 내가 성인이 되자마자 나의 골수를 이식 받게 되었다.
그렇다고 부모님이 우리 둘을 차별하여 키우진 않았다. 언니 이름은 김주화, 내 이름은 김이화라고 지어주며 직접 양육할 정도로 애정을 기울였다. 대부분 체세포 복제로 태어난 두 번째 아이들은 대리부모에게 맡겨져 장기이식을 위한 잉여로 취급받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 부모님은 우리 둘 모두를 깊은 사랑으로 키웠다. 언니는 언니대로, 나는 나대러 각자의 2년 차이를 가진 삶 속에서 최선을 다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차이는 언니가 했던 선택을 내가 그대로 따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언니의 순종적인 성격과 나의 성격이 같은 유전자에서 나온 것임을 의심할 여지가 없을 만큼, 우리는 비슷했다.
그러나 어쩌면 본체인 언니보다 내가 얻은 것이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언니는 영어 유치원을 다녔지만 부모님은 큰 효과가 없다고 판단해 나를 공립 어린이집에 보냈다. 덕분에 나는 어려 서부터 부유한 가정 아이들과의 경쟁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겪지 않아도 되었다. 언니는 비싼 사립 학교를 졸업했으나 부모님은 학교보다는 사교육의 효과가 크다고 판단하여 나를 국공립 학교에 보내고 학원을 다니게 했다. 결국 언니는 해외 대학에 진학하여 글로벌한 미래를 준비했고, 나는 국내 명문 대학에 진학해 국내에서 유망한 미래를 펼치게 되었다. 부모님은 두 자녀를 통해 서로 다른 교육적 시도를 하게 된 것이다.
한참 사춘기 무렵이었다. 나는 부모님께 물었다.
“엄마, 아빠는 경제력도 충분한데, 왜 제3의 복제인간을 만들지 않았어?”
두 분은 놀란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다 아빠가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처음에 체세포 복제를 결정했을 때 단순히 규제가 완화돼서 만은 아니었단다. 건강하게 태어난 네 언니의 유전자에 대한 확신도 있었고, 너를 키우면서 주화는 주화대로, 이화는 이화대로 우리에게 큰 기쁨이 되었단다. 물론 자식에게 최선의 선택을 하고 실패를 만회할 수 있다는 심리적 보상도 있었어. 너희 둘은 태어난 방식이 달랐지만, 우리가 너희를 바라보는 눈은 똑같았어. 모든 아이가 그렇듯, 각자의 삶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이 부모로서의 진정한 행복이란다.”
그제야 나는 이해했다. 나의 부모는 누군가를 대체하기 위해 복제 인간 자식을 만든 것이 아니었다. 대답 대신 방긋 웃으며 언니에게 말했다.
“언니, 우리는 정말 일란성 쌍둥이인데 태어난 시간만 다를 뿐이네?”
언니가 웃으며 하는 대답에 나는 또 울컥했다.
“그럼. 너는 내 동생이고, 네가 있어서 항상 즐거웠어. 네가 자라는 걸 보면서 ‘2년 전 나도 저랬는데’, ‘2년 전 나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도 많이 했어.”
이런 이야기 덕분에 나는 언니가 아플 때 선뜻 골수 기증을 결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 내가 복제인간인 줄 모르고 양부모 밑에서 키워지다가 본체가 병에 걸려 장기를 대체할 사람으로 나를 찾아왔다면, 나는 그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겠지만 내 경우는 달랐다.
하나의 생명이 온전히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부모님과 본체인 언니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면, 나는 스스로를 잉여 인간으로 여기며 막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가족 속에서 사랑과 존중을 받으며 '소중한 생명'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 덕분에 복제 인간이라는 선택 역시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는 철학을 가지게 되었다.
얼마 전 나는 출산을 했다. 기숙학교를 거쳐 해외 생활로 독립심이 강해진 언니는 비혼 주의자이다. 언니는 나의 출산을 마치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며 물었다.
“너도 둘째는 체세포 복제를 할 거야? 이렇게 예쁜 아이가 하나 더 있으면 얼마나 좋아.”
나는 잠시 고민하다 언니에게 대답했다.
“아니. 나는 나 같은 복제 인간을 만들지 않을 거야. 자연 임신으로 건강한 아이를 얻든, 체세포 복제로 동일한 아이를 얻든, 심지어 장애를 가진 아이가 태어나든, 어떤 경우라도 소중하지 않은 생명은 없다고 생각해. 그리고 본체를 위해 복제 인간을 만든다는 건 결국 생명의 가치를 등급으로 나누는 일 같아서 싫어. 생명을 목적이나 수단으로 생각하는 게 싫어. 자연 임신이든 복제 든 중요한 건 태어난 방식이 아니라 생명 그 자체야. 우리 부모님이 했던 고민을 나는 하지 않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