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는 1인칭 분노토로
나는 요즘, 유전자를 부정하며 살아간다. 생명과학 분야를 전공한 나에게 이만큼 모순된 고백이 또 있을까.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학문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삶의 상처가 있었고, 그 상처를 ‘유전자’라는 이름으로 합리화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인류의 역사는 혈통과 유전자의 이름으로 수많은 차별과 폭력을 정당화해왔다. 제2차 세계대전은 그 전형이었다. 유대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약소국 국민이라는 이유 하나로, 사람들은 인간 이하의 존재로 낙인찍혔다. 그들을 ‘열등하다’고 규정한 것은 총칼만이 아니었다. 그 뒤에는 과학이라는 가면을 쓴 우생학이 있었다. 연구비를 받고 권력을 등에 업은 생물학자들이 ‘유전자’라는 도장을 찍어 차별을 제도화했다.
그들의 논문과 데이터는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다. 당시의 연구 성과는 독일과 일본의 제약회사가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었고, 그 잔재는 지금도 제약 산업의 밑바닥에서 희미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그 어두운 역사를 알기에, 나는 더더욱 ‘유전자’라는 단어에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내 삶 역시 그 단어로 옥죄여 왔다. 작은아버지와 고모는 알코올 중독으로 삶을 무너뜨렸다. 술로 인해 조현병을 겪고, 수많은 사건사고를 일으켰다. 그 뒤처리는 늘 경제적으로 여유 있던 아버지 몫이었다. 나는 그들을 증오했다. 누구 하나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존재라 여겼다.
외가 쪽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 번도 얼굴을 보지 못한 외삼촌은 서울대를 다니던 청년이었다. 키가 크고 잘생겼고, 집안은 우리나라 부자 300인 안에 들 정도로 넉넉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약물과 우울증에 휘둘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핏줄’은 이곳에서도 파괴적이었다.
어머니는 내가 술을 조금만 마셔도 “네 고모 닮아서 그렇다”, “네 친가를 닮아서 그렇다”라고 말했다. 그 말이 싫었다. 나는 절대 개선될 수 없는 인간으로 낙인찍는 것 같아서 더 삐딱했었다. 그럴수록 술도 더 마셨고, 나를 더 망치는데 집중했다. 오랜 방황 끝에 원인을 찾기에 이르렀다. 나도 문제였지만 돌이켜보면 술보다 더 쓰라린 건 따뜻한 말 한마디를 듣지 못한 기억이다. 사랑한다는 말, 잘했다는 말, 심지어 미안하다는 말조차 우리 집에서는 허락되지 않았다.
나는 늘 눈치를 보며 자라야 했다. 말하기 전에 미리 알아서 움직이고, 분위기를 살펴가며 기분을 맞추어야 했다. 그렇게 나는 ‘K-장녀’라는 이름의 틀에 갇혀 길러졌다.
"누나인 네가 참아야지."
"누나인 네가 양보해야지."
"누나인데 네가 모범을 보여야지."
......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조금 달라졌다. 눈치 보기를 멈추고, 하고 싶은 말을 하기로 했다. 아니면 내가 더 살아 남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러자 아버지의 말이 날카롭게 날아왔다.
“집에서 하는 것도 없는 주제에…”
그 순간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반항을 했다.
“아, 네.”
그리고는 출근길 배웅을 나가지 않았다.
우리 집에서 돈 버는 사람은 신처럼 받들어졌다. 강아지조차 엘리베이터 앞에서 배꼽 인사를 하도록 길들여진 집이었다. 그 질서에 작은 균열을 낸 것, 나에겐 거대한 반항이었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었다. 경상도와 전라도, 서로 다른 지역의 전통이 만난 부모 세대에서 아들에 대한 선호는 절대적이었다. 엄마는 동생이 아들이라 다행이라고 했고, 아버지는 늘 아들은 든든하다고 했다. 그러나 정작 아픈 부모님을 간병하기 위해 생활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은 나였다.
핏줄이라는 이름으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나는 늘 희생을 강요받았다. 착해야 했고, 양보해야 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유전자의 탓으로 돌려졌다. 그러면 마음이 편했다. 그래, 내 숙명이야, 내 운명이야... 나는 당연히 이렇게 해야 만 해.
그러나 과학은 다르게 말하기 시작했다. 뇌과학자 제임스 팰런(James H. Fallon)은 사이코패스의 뇌를 연구하다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신이 바로 그 전형적인 뇌 구조와 유전적 성향을 지닌 사람이었다는 것. 충동성과 공감 능력 부족, 냉혈함—그는 사이코패스가 될 가능성을 가장 크게 타고난 존재였다.
하지만 그는 존경받는 학자로 살아왔다. 비밀은 따뜻한 가정환경이었다. 부모의 사랑, 안정적인 양육, 긍정적인 경험이 그의 유전적 성향을 눌러주고 다른 방향으로 이끌었던 것이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사이코패스의 뇌를 갖고 태어났지만, 부모의 사랑이 나를 다른 사람이 되게 만들었다.”
이 사례는 내게 하나의 확신을 준다. 유전자는 인간의 출발점일 수는 있어도 운명의 종착지는 아니라는 사실. 경험은 언제든 유전자의 가능성을 교정한다는 진실.
나는 이제 안다. 사람을 규정하는 건 유전자가 아니다. 내가 보고, 듣고, 겪으며 살아낸 시간들이 나를 만든다. 부모의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손길이, 작은 실패와 기쁨이, 나를 바꾼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유전자 때문이야”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내가 살아온 세상은 그보다 훨씬 복잡했고, 훨씬 더 인간적이었다. 유전자는 단지 출발선일 뿐이다. 그 이후를 채워 넣는 것은 경험이며, 오롯이 내가 선택하는 삶이다.
그러나 가끔은 두려운 생각이 스민다. 혹시 지금의 나, 이 답답한 무능함이야말로 내 유전자가 허락한 최고치가 아닐까. 더 이상은 나아갈 수 없도록, 원래부터 그렇게 태어난 것은 아닐까. 그렇게 스스로를 의심하다가도 다시 다짐한다. 핏줄이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가해자를 만들지 않으려면, 나는 경험을 지혜로 바꿔 쌓아가야 한다.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위대한 능력은 바로 그것이다. 살아가며 부딪히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면서 배운 것들이 결국 나를 새롭게 쓴다. 유전자는 나를 시작하게 하지만, 나의 끝을 결정하지는 못한다. 나는 오늘도 경험을 쌓는다. 그것이 내 운명을 새로 써 내려가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