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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때 다마고치 키우던 사람인데요

by 김분주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요즘 애들이 정말 많이 달라졌다는 걸 온몸으로 느낀다. 세상이 변했으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생각보다 너어어어무 많이 달라져서 가끔은 진짜 현실감각이 뒤틀릴 정도다. 내가 국민학생이었을 땐,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팔던 100원짜리 불량식품이 인생의 전부였고, 한 판에 50원짜리 도박성 종이 뽑기에 목숨 걸던 시절이었다. 다마고치로 공룡 키우고 분신사바로 인생을 점쳤던 시절이었는데… 요즘 초딩들은 틱톡 알고리즘에 빠져 허우적대고, 유튜브 숏츠나 인스타그램에서 유행하는 챌린지를 따라한다. 물론 모든 아이들이 그렇진 않지만, 그 간극이 너무 커서 적응이 안 된다.


며칠 전, 아이들에게 영어 읽기를 독려하고자 영어 한 페이지 읽으면 보상으로 줄 작은 간식을 준비했다. 코스트코에서 파는 외국 느낌 물씬의 금색 동전 초콜릿으로, 직접 먹어봤는데 어른 입맛에도 기가 막히게 맛있다. 내 입맛에도 이렇게 맛있으면 아이들은 더 엄청 좋아해주겠지 싶었다.


아이들을 한두 명씩 불러 세워, 읽기를 시키는데 어찌나 잘 읽던지. 기특한 마음으로 초콜릿을 주머니에 숨겼다가 보상으로 짜잔- 하고 꺼내 줬는데.. 세상에 마상에나. 30퍼센트의 아이들이 초콜렛을 보자마자 하나같이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짜잔-

선생님, 이거 말고 비트코인으로 주세요.

드랍 더 비트.



나 때는 거짓말 조금 보태서, 미제라면 양잿물도 마셨고 엄마아빠 때는 미군만 보면 기브 미 더 쪼꼴렛 하면서 졸졸 따라다녔는데, 요즘 아이들은 코인모양 초콜릿보다 비트코인을 더 선호한다. 세상이 정말 많이 달라졌다. 근데 뭐, 비트코인이 초콜릿보다 달달하긴 하다.



인정!



어제는 수업 시작 직전, 3학년 여자아이들이 모여 쑥덕이는 걸 듣게 됐다. 친구가 같은 반 남자애랑 연애 한 달 기념으로 커플반지를 맞췄다는 이야기였다. 안 듣는 척하며 수업을 준비하는데 내용이 참 흥미로웠다.

그러다 수업종이 울리고 애들이 자리에 앉자 나는 그걸 스몰토크 삼아 수업에 써먹기로 했다. 아이들 관심 있는 주제로 시작하면 집중도 잘하니까! 아까 들은 이야기를 언급하면서 물어보지도 않은 '나 때는 말이야...'로 전설의 고향스러운 이야기를 그것도 영어로 미국 드라마에 나오는 핫걸처럼 나름 쿨하고! 재밌게! 풀어내며 교실 분위기를 장악했다.



...고 생각했지만, 다들 표정은,

뭐라노.

지금 저 선생이 뭐라 씨부리 삿노.



... 아무도 알아듣지 못했다.

청중을 고려하지 않은 라떼 토크 콘서트로,

연애 이야기에 신난 건 나 혼자였다.

곧 마흔살이 아홉 살 아이들 앞에서 연애이야기를 하며 나도 모르게 신이 나버렸네.



괜히 민망해서 바로 수업 모드로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하자, 가만히 듣고만 있던 초등학생 3학년 릴리가 수줍히 손을 들면서 나에게 말했다.



"언니?"



.... 뭔 소리여.

갑자기 왜 나한테 언니라고…?

잘못 말했겠지 싶어서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그냥 릴리를 향해 살짝 미소만 지어주고는 다시 교재로 눈을 돌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릴리가 아까보다는 조금 더 강하게 말했다.



" 티쳐, 우ㄹ 언니?"



교실에서는 영어만 쓰는 게 룰인데 자꾸 나보고 언니언니 거리는 게 조금 이상하기도 했지만, 내가 본인의 언니로 보일 정도로 동안이거나 연애 이야기에 신나하던 나를 어리게 봐준거라 받아들인다면, 릴리에게 앞으로 더 특별히 관심을 줘야겠다 생각하면서 내심 기뻐 예쁜 미소 지으며 살짝 고개 끄덕였다.



" Yes, I am your sister!"



난 선생이고, 넌 학생이야.

....가 아닌 우린 이제 자매야!

너네 엄마 나이지만 언니로 봐주다니 땡큐 베리가 마치입니다요 ♡


릴리 굳 베리 굳

인성 점수 100점드립니다.



그러자, 릴리는 바가지요금을 내고 화가 난 관광객 같은 표정으로 정색하며 한국말로 말했다.

아니ㅣㅣㅣㅣㅣ, 슨생님 외롭냐고요.

이 슨생이 아까부터 와 이라노.




아,

You lonely.




정말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 내가 듣고 싶은 말만 하는 선생이다.




예쓰.

아엠 언니.






수업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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