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K의 이야기이다.
내 친구 K는 최근 들어 엉덩이가 평소와 달리 상당히 불편하고 불쾌하고 짜증이 났다고 했다. 정확히 말하면 엉덩이 사이, 그 갈라진 틈에서 알 수 없는 새싹 같은 게 응꼬를 뚫고 나온 기분이라고 했다. 처음엔 K의 긴 머리카락이 우연찮게 바지 속에 들어가 봄바람처럼 엉덩이를 살랑살랑 간지럽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간지러움은 점점 극에 달했고, 하필 출근길 한복판에서 그 절정을 맞이했다. K는 도로 한복판에서 갑자기 바지 안에 손을 집어넣고 머리카락을 꺼낼 수는 없었기에, 바지 뒷쪽에 먼지가 묻은 척 연기를 하며, 오른손으로 엉덩이의 중심을 냅다 연속으로 주먹으로 내리쳤다고 한다. 강속구 주먹 탓인지 가려움은 사라졌지만, 대신 엉덩이가 얼얼해져버렸다. 그때는 몰랐다. 이것이 시작에 불과했다는 것을.
그렇게 몇일 후, K는 엉덩이 사이에 큰 여드름이 하나 보올록 하게 생긴걸 발견했다. 얼굴에 난 여드름보다 훨씬 더 난감한, 그야말로 ‘엉덩이 대형 뾰루지’가 생긴 것 같았다. 처음 겪는 신체의 변화를 마주한 K는 곧바로 전문가인 의사선생님을 찾아가기보다는, 무분별한 정보가 넘쳐나는 네이버 지식인들을 믿었다.
검색 결과, 나오는 건 온통 ‘치핵’이라는 두 글자.
솔직히 치핵이 뭔지 K도 잘 몰랐다. 병원에 가면 한 방에 ‘아, 이거네!’ 하고 딱 맞는 약을 줄 테지만, 곧 마흔인데도 아직 부끄러움이 많은 K는 처음 만나는 의사 선생님께 머리 대신 엉덩이를 들이미는 건 상상만 해도 얼굴이 빨개졌다. 그래서 일단 인터넷에 떠도는 최악, 최최최악의 증상 사진들과 비교해 보며 ‘아직은 내가 견딜 수 있는 수준이구나!’ 싶어 자연치유를 믿으며 민간요법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가장 효과가 좋다는 온찜질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쿠팡에서 좌욕기를 급히 주문하고, 전기포트에 물을 팔팔 끓인 뒤, 물을 좌욕기에 붓고 그 위에 바로 앉아버렸다.
핫
뜨거
엉덩이를 샤브샤브 처럼 여러번 담궜다가 빼기를 반복하다가 깨달았다.
아, 엉덩이를 담구는게 아니구나 뜨거운 김을 쐬는거구나.
증상만 악화되었다.
힝
엉덩이 관련 질환이라 아무에게나 쉽게 말할 수 없어 혼자 속앓이하던 친구 K는 결국 또 다른 친구 H에게 조심스레 고민을 털어놓았다. 요즘 걸음걸이나 앉는 자세에 따라 엉덩이가 미세하게 간질거리는거 보니… 치핵인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치핵 커밍아웃’을 하자, H는 놀란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했다.
"야 너두?"
찌찌뽕.
목젖이 보일정도로 환하게 처웃는 H를 보며, K는 치핵이 나만 가진 질병이 아니라 너도, 나도 함께 안고 사는 우리 모두의 질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혹부리영감님의 혹처럼 치핵이 덜렁덜렁 거리냐는 H의 말에 H도 어쩌면 며칠을 혼자서 끙끙 앓았겠구나 싶은 측은지심을 느꼈다. 동지애를 느낀 K와 H는 인터넷으로 (....절대 병원은 가지 않고) 약국에서 살 수 있는 효과 좋은 약부터, 치핵에 좋다는 음식까지, 할 수 있는 건 뭐든지 다 시도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대한민국에 치핵을 앓고 있는 사람이 생각보다 엄청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치핵은 한 번 나타났다가 자연스레 사라지고, 어느 순간 슬쩍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가 또 쏙 들어가기도 한다고 했다. 어떤 사람들은 아예 ‘반려치핵’이라는 애칭까지 붙여주며 묵묵히 공존 중이기도 했다. 물론 심하면 수술까지 해야하는 무서운 존재지만. 어차피 평생 같이 살아야 한다면, 이름이라도 불러줘야 하지 않겠나 싶어 K와 H는 서로의 별명을 지어주었다. 치핵이 덜렁거리는 수준이 되어버린 H의 별명은 치덜이, 치핵이 귀엽게 빼꼼 나온 수준인 K은 치꼼이 되었다.
그렇게 치덜이와 치꼼이는 ‘치핵 공동체’라는 든든한 연대 속에서 남다른 끈끈함을 쌓아갔다. 때로는 누군가와 치핵까지 공유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짜 친구가 된다.
끗
치꼼이와 치덜이는 참 친해요.
앗 제 이야기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