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실제로는 그보다 더 많은.
장황한 나의 음주생활과 애환에 대한 얘기를 듣는다거나, 숙취로 얼굴이 허옇게 질려있는 나를 보았다거나,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들이 이쯤에서 드실 생각.
“술을 끊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니.”
거짓말을 좀만 보태 사방에서 수천 번 이상의 이 질문을 받았던 나는 그러면,
“없겠니?“
"응?"
"그 생각을 안해봤겠니?"
"정말 마시기만 했을거라고 생각하니?"
라고, 화내면서 쏘아붙이고 싶다.
술꾼들도 사실은 술이 좋아서만 마시는 건 아니다. 이게 또 무슨 개소리인가, 싶겠지만 그렇게만 보인다면 억울한 게, ‘어쩔 수가 없어서’ 마시게 되는 게 또 술꾼들에게 술인 것이다. 마음이 시키고, 가슴이 부추기니까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머리로는 안다. 안마셔야 한다는 걸, 안마시는 게 좋다는 걸, 이렇게 마시다가는 언젠가는 후회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걸, 그 날이 내일일 수도 있다는걸. 그러나 그런 차가운 머리를 언제나 뜨거운 마음이 이기는 걸 어째.
그러니까 애주가들에게 금주 결심이란 마치, 일곱 살짜리 우리 둘째가 이제 앞으로 엄마랑 놀지 않겠다고 하는 선언이나 내일부터 다이어트를 할 거라며 매일같이 최후의 만찬을 즐기는 아가리 다이어트들의 결심처럼 그 누구에게도 설득력이 전혀 없을 힘없는 방백과 비슷하다. 보통 음주인들은 심각한 과음후 괴롭다는 말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숙취를 경험하면서 금주를 결심한다. 그건 다짐이라기보단 사실 절규에 가깝고 숙취가 사라지면서 함께 사라져버릴 생각이기때문에 이건 제외시키자. 애주가들도 의외로 좀 더 거시적인 한해살이의 관점에서 금주를 계획하지만 좌절에 부딪치는데 그건 그들이 관대하게도 스스로에게 세 번의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새 간을 가진 인간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첫번째 기회는 단연 새해다. 12월에는 내 생일을 비롯해 각종 연말 모임들과 망년회가 즐비하고, 이 시기는 애주가들에게는 행복한 지옥이거나 불행한 천국과도 같아서 아침마다 쓰린속을 부여잡고 "내년에는 진짜 새사람되어야지."를 버릇처럼 되뇌인다. 그러나 막상 새해가 되면, 새해를 맞이한 머리와는 다르게 여전히 작년의 술자리들에 머문 몸과 숙취가 나의 금주 결심에 방해꾼이 된다.
솔직한 말로, 새해부터 술을 끊으려면 이미 12월에 금주 상태여야 한다. 인간의 몸은 정상화시키고 속도를 붙이는 데에 시간을 필요로 한다. 보통 술을 끊겠다는 결심이 학업과 운동같은 생산적인 활동과 연동되는 이유도 건강한 몸이 마련되어 있으면 건강한 정신은 자연스레 후행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학업도 운동도 할 준비가 안된 술에 전 게으른 몸뚱아리가 내 마음과는 다르게 한 번의 기회를 날려버린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음주는 계속된다. 그래도 괜찮다. 왜냐하면 한국은 설을 음력으로 쇠니까, 한국 사람에게 진짜 새해의 시작은 구정이니까.
그렇다면 구정이 된 시점에는 금주에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인가, 하면 술이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물러나줄 리가 없다. 이번에는 연휴가 발목을 잡는다. 직장인과 사회인들에게 올해들어 처음 주어진 귀하디 귀한 첫 연휴아닌가. 연휴라는 건, 마음껏 마시면서도 다음날에 대한 압박이 없고, 그렇게 맞이한 다음날 마음껏 숙취속을 헤매어도 상관없을 몇 안되는 날이다. 물론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는 하지만, 술좋아하는 사람치고 친구없는 사람없고, 나쁜 사람없다는 게 다 타협을 잘해서다. 게다가 주변에는 괜찮다, 괜찮아 하며 면죄부를 쥐어주는 사람들밖에 없다, 이미. 옆에서 옆구리를 조금만 찔러도 바로 넘어가는 약한 마음을 가진 애주가들은 절호의 음주 기회를 놓칠 리 없다. 못이기듯 마지못해 두번째 기회까지 날린 애주가들이 마지막 단계로 향하는 건 당연한 수순인데 그 시기가 이제 도래했다.
새학기와 개강의 다른 이름인 3월 2일.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우리에게는 결심에 있어서 최후의 방어선이 바로 3월 2일이라는 걸 다들 안다. 올해는 더군다나 3월 3일까지 연휴로 연결되어 있어 마음의 준비를 이틀이나 더 할 수 있는 셈이다. 이제 진짜 3월부터 술을 끊겠다고 결심을 하는 많은 애주가들에게는 그러나 코끝에 머무는 마지막 겨울이 안간힘을 쓰는 꽃샘추위와, 슬슬 따뜻해지고 노곤해지는 봄볕과, 한결 가벼워진 옷차림과, 서서히 길어지는 해를 외면할 힘이 없을 것이다. 그런 날씨가 해지는 저녁 한 잔의 맥주와 너무 잘어울린다는 걸, 많은 주점들이 겨우내 닫아둔 테라스를 새로이 정비하고 있다는 걸, 이제 본격적인 야외 음주의 시즌이 시작된다는 걸 모른척할 수가 없어질 것이다. 이미 1월에서부터는 한껏 멀어진 날짜를 보니 굳은 결심은 스멀스멀 사라져갈 것이다. 그러면 마음을 다잡는게 아니라 그저 흐린눈을 뜨고 1분기가 끝나가는 걸 애써 모른체 할 것이다. 그렇게 또 한 해가 반복될 것이다. 이건 예언이 아니다. 과거의 관성이다.
결심이라는 건, 타인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나 자신만은 설득이 되었다는 얘기다. 아무도 설득할 수 없는데 나까지 설득할 수 없다는 건, 그럴 힘도 없는 결심이라는 건 이미 결심이 아니라 차라리 하소연이다. 자신조차도 외면할 다짐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이유, 그게 바로 이 세번의 기회의 함정 탓이다.
실제로 내 주변에서 금주에 성공한 사람은 단 하나, 우리 아빠다. 아빠는 1년마다 받는 정기검진에서 어떤 해에 고혈압과 당뇨전단계 판정을 받으시고는 그날로 피도 눈물도 없이, 미련도 후회도 없이 술에게 등을 돌렸다. 나에게 지독한 술꾼 유전자를 계승해준 아빠는 진짜 그날로 언제 술을 마셨던 적도 없었던 사람마냥, 술을 끊었다. 독한 줄은 알았지만 술이랑 담배끊은 놈이랑은 상종도 말라던 그 '놈'이 우리 아빠일 줄이야. 그게 벌써 20여년전의 일이다. 그런데 맞다. 진짜 술을 끊을 수 있는 사람들은 사전예고없이 결심과 동시에 실행에 옮긴다. 뒤도 안돌아보고 매몰차게 패대기친다. 그러니 실은 술꾼들에게는 1년 365일, 매일매일 기회가 주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들은 적어도 세 번에서, 많게는 365번의 기회를 공염불만 왼 채 흘려보내고 있다.
지금 우리집 김치냉장고에는 싱싱한 500ml짜리 맥주 네 캔이 들어있다. 한편, 3월 4일이 아직 오지않은 이상 나의 금주 결심도 유효하다. 현재의 내 목표는 일주일에 한 번, 금요일 또는 토요일에 하루만 두 캔의 맥주를 허용하는 정도의 금주인데, 나는 과연 달성할 수 있을 것인가. 내가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가. 나도 궁금하지만 아직 기한이 남은 이 시점, 깊어가는 연휴의 차분하고 적막한 이 밤, 그러니까 술을 마시기 딱 좋은 지금, 저는 일단은 혼술 일잔을 하러 가보겄습니다.
PS) 지금 저랑 비슷한 생각하시는 분들 계시죠?맞아요. 진짜 시작은 3월 4일부터죠. 금주든 다이어트든, 절약이든 학업이든 파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