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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예찬

산골 일기

by 버폐

연둣빛 들빛 산빛은 어느새 짙은 풀빛으로 바뀌었다. 날마다 출근하듯 바람은 불지만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 때문에 햇빛알레르기로 부풀어 오른 살갗에는 바람이 아니라 방금 불을 끄고 뚜껑을 열면 뿜어져 나오는 찜기의 열기나 다름없다.

이런 날씨 속에서도 풀들은 참으로 억세게도 잘 자란다.

비록 남의 땅이지만 우리 집 뒤뜰로 삼는 풀밭은 물론 우리 집 꽃밭에서 존재감 뿜뿜인 풀들이 서로 밭을 장악하려고 열심이다. 뽑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라는 경고처럼.




뿌리에 힘을 주며 튼실히 뿌리를 내리는 풀들을 보면 보이는 대로 뽑고 싶지만..., 자라는 속도를 미처 따라갈 수 없다. 임야지만 들깨나 콩, 옥수수밭으로도 썼던 땅에 농사를 짓지 않으니 신나게 쑥쑥 자라는, 지금은 망초와 개망초, 바랭이와 왕바랭이의 시간이다.

세력을 넓혀가며 낮게 땅에 바짝 붙여 자라는 풀 바랭이는 줄기마다 마디가 있고 마디가 땅에 닿으면 또 뿌리를 내리는 내게는 아주 고약한, 뽑기에도 성가신 풀이다. 한 손으로 풀포기를 그러잡고 한 손에 쥔 호미로 뽑아내야 하는데 땅에 바짝 붙인 풀포기를 한 손으로 그러잡기가 깔끔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왕바랭이는 키를 위로 키우면서 줄기도 통통하여 그러잡기에는 나쁘지 않으나 너무 커버리면 한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튼실해지고 뿌리에 힘이 들어가 뽑기가 힘들어진다. 특히나 씨를 여무릴 때면 힘을 더 들여야 한다.




망초와 개망초는 멀리서도 눈에 띄게 큰 키를 자랑한다. 큰 키를 자랑하면서 안개꽃만큼이나 예쁜 꽃을 피워내고 있는 개망초, 달걀꽃이라는 별명이 붙은 개망초꽃이 군락을 이루고 있으면 '아, 예쁘다'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일부러 만든 꽃밭에서는 뽑히지만 남의 묵정밭에서는 뽑히지 않을 뿐더러 마음 껏 매력 발산이다.

반면, 개망초와 어깨동무하며 자라는 망초는 꽃이 피기 전 힘만큼 쑥쑥 뽑아내고 있다. 망초꽃은 개망초꽃처럼 예쁘지도 않은 데다 피었다 질 때에도 먼지 뭉쳐놓은 듯 심란해 보이는 꽃이기 때문이다.

심란을 일으키는 또 다른 풀이 있다. 환삼덩굴이다. 가느다란 붉은 자줏빛 줄기에 앙증맞은 떡잎 두 개가 나올 때만 해도 이렇게 거칠고 우악스러운 풀이 될 거라고는 상상을 못 한다. 그러나 봄햇살이 거름이고 영양제라는 듯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환삼덩굴, 가느다랗던 줄기는 각이 져가면서 이리저리 마구 뻗쳐가고 쬐그맣고 귀엽던 잎은 다섯 잎으로 퍼드러진다. 게다가 줄기나 잎이나 까슬까슬하기가 이를 데 없어 맨 살에 살짝만 스쳐도 독풀 가시에 긁힌 듯 따갑고 가려움도 만만치 않다.

마을 어귀에 이렇듯 거칠고 억센 풀 덩굴이 뒤덮여 있으면 마치 그 마을 인심도 그럴 것만 같아 좋은 기분은 들지 않는다.

'남녀노소 누구나에게 좋은, 기력에 좋은 약재라고 하면 눈 씻고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사라지겠지!' 망상 같은 바램을 일으키는 풀, 고혈압에는 좋다는 풀이다.


꽃이든 풀이든 있어도 될만한 곳에 있으면 아름답다.

푸른빛이 우거진 속에 분홍, 하양, 빨강, 노랑, 주황과 같은 빛깔이 사이사이 들어있으면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펼쳐지고, 온갖 빛깔의 어울림은 아름답기만 하다.



산비탈 들녘 풀밭은 늦봄을 지나 여름 들어서면서 하얀, 이팝나무꽃 층층나무꽃 아카시아꽃 찔레꽃이 피었다 진다. 요즘, 지금은 보랏빛 붓꽃, 조롱조롱 보랏빛 꿀풀꽃, 주황빛에 가까운 짙노랑 원추리꽃, 보랏빛 꽃잎에 노란 술이 예쁜 자주달개비꽃, 분홍빛 꼬리조팝, 연보랏빛 또는 청보랏빛 수국, 진분홍 패랭이, 주홍빛의 나리꽃이 피고 지고 피고 지고 있다.

이런 계절을 '자연빛 어울림 계절'이라 부르고 싶다.


봄이, 고운빛이 몽실몽실 부풀어 오르는 계절이라면 여름은 푸른빛에 예쁜 빛을 수놓는 계절이다. 산빛 들빛의 푸른빛이 짙푸르게 바뀌어 갈 때 예쁜 빛깔들은 날마다 질서 있게 바꾸어 간다.




참 조화롭다. 참 어울린다.

7월, 권정생 선생님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가 펼쳐지는 참 아름다운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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