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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집이 잡히고 잡히려는 발가락 덕분에...,

인도 기차를 타보고 싶다던 벗에게 - 10

by 버폐

어제저녁, 생각지 않은 (주인장의) 친절함에 감동받고 피로를 풀려니 꿀잠이었어.

잘 자고 고양이 세수를 한 뒤 짐을 챙겨놓고는 아침을 먹으러 갔지. 우리는 그동안 제일 싸서 먹곤 했던 볶음밥이 아닌,

우리 식으로 말하면 한정식인 달밧으로 주문했어.

그런데 어제저녁과 마찬가지로 또 김치를 내주는 거야.

전날 잘 먹으니까 또 주고 싶었던가 봐.

곰삭은 김치, 그 김치를 곁들여 한 톨도 남김없이 싹싹 비워냈어.

그곳은 태양광 패널로 전기를 쓰기에 냉장고까지는 쓰지 못하는 듯해.

그런데 낮은 덥고 저녁은 춥기에 김치를 담그면 금방 익을 것 같아.

정작 그곳 사람들은 김치를 담가 먹는 민족이 아니라는 거지.

순전히 한국인 트래커들을 위해 담그었다는 사실이 감동이고,

그렇게 적당히 곰삭은 김치로 우리가 밥을 먹었다는 사실...,

그게 감동이고 그 감동은 아침까지 이어졌던 거야.

우리는 '정말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7시 20분경) 길을 나섰어.

김치로 충전하여 씩씩해진 걸음으로.



롯지에서 나와 걷다 보니 사람들이 일찍부터 길을 닦고 있었어.

안나푸르나를 찾는 사람들이 오르내리는 길은 그리 넓지도 않은 데다 가파르고 험한 곳이 많긴 하더구만.

그 길을 최대한 위험하지 않고 안전하게 다닐 수 있도록, 울퉁불퉁한 돌을 납작납작하게 깨는 사람, 광주리로 나르는 사람, 타일 깔 듯 바닥에 까는 사람들이 고생을 하고 있는 걸 보니,

그 덕분으로 사람들이 안전하게 걸을 걸 생각하니 너무 고마워서 뭐라도 나누어 주고 싶은데...,

아무리 뒤져도 사탕 밖에는 없는 거야.

할 수 없이 그거라도 나누어 주었더니 그들도 고마워하는 거야.



길 닦는 이들을 뒤로하고 부지런히 걷다 보니 9시 30분.

'시누와' 도착. 끓여서 식혀 놓은 물을 사서 미숫가루를 한 잔씩 타서 마시고 다시 출발~

했지만, 어제 보다는 몸도 다리도 많이 가벼웠지만, 물집이 잡힌 발가락에 물집이 잡히려는 발가락이 나도 모르게 애기 걸음을 걷게 하는 거야.

그러지 않아도 거북이걸음인데 더 보태어 애기 걸음이니...,


어쨌든 우리가 올라갔던 산봉우리는 점점 멀어지고 있는 가운데 내리막길.

내리막길은 허리와 다리는 힘들지 않은데 발가락이 더 아프고, 오르막길은 모든 곳이 다 아프더구만.

내리막길 끝에 다다르면 다시 오르막길이 '어서 오라.' 손짓하는데 나도 모르게 '휴우!' 한숨이 나왔어.

얼른 알아차리고는 '에이, ABC도 갔다 왔는데 뭘. 가자, 가자, 가자!' 힘을 내자는 응원의 말을 스스로에게 하곤 했어.

그나마 다행인 건 몸이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응원의 힘일까? ^ ^

나는 훨씬 덜 힘든데 림이는 나와 반대로 더 힘들다 해서 은근슬쩍 같이 느려지기로 했어.

숨을 고르고 '하나 둘 셋..., 스물!' 돌계단을 세어 가며 오르기를 얼마나 했을까!



네팔 말로 '뺘울리'라는 꽃이 돌담을 덮고 있는 마을이 나타났어.

나타난 게 아니라 저절로 환하게 보이는 거였지.

말 그대로 꽃담인데 얼마나 이쁘던지...,


드디어 '촘롱'까지 왔고 좀 쉬었다 걷기로 했어. 사진도 찍고 돌아서서 학교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아이들도 보면서.

엊그제 올라갈 때 묵었던 '액설런트 탑 뷰' 게스트 하우스에 들러 볶음밥을 시켜 먹고 쉬려는데,

주인장의 아내가 마당에 있는 나무 탁자 다리에 갖가지 빛깔의 실을 걸어 놓고 무언가를 짜고 있는 거야.

다가가서 한참 구경을 하는데 제주도 스님께서 우리에게 '안나푸르나 ABC를 다녀온 기념'으로 그 실팔찌를 사주셨어.

(그때는 참 소중하게 여기며 잘 챙겨두었는데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어.)

림이와 나는 실팔찌를 손목에 묶고, 배낭을 챙겨 메고는 주인장 부부와 기념사진을 찍고 그곳과 헤어졌지.



아래로 아래로 내려오면 '산에 깃들어 있다'느낌을 주는 마을의 집들이 있어.

올라갈 때도 보았겠지만 내려오면서 보니 또 새롭게 보이더구만.

담을 덮고 있는 꽃들도 아름답지만, 집과 집을 이어주는 길은 돌계단이거나 돌담 아래 돌바닥이거나인데 또 하나의 건축물 같은 거야.

길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또 어찌나 예쁘던지. 별처럼 초롱한 눈 발그레한 볼의 아이는 말을 걸면 쑥스러워하는데 참 순수하다는 느낌이 절로 들었어.

우리도 어렸을 때 그랬을까?



힘들다는 이유로, 발가락이 아프다는 이유로 느리게 느리게 내려오는 길은,

'콤롱' 쪽이 아닌 '지누' 쪽으로 방향을 잡았어.

지누는 '온천'으로 이름나 있는 지역이래. 그러나 우리나라 식의 온천을 생각하면 안 돼. 뜨거운 물이 땅 속에서 나오긴 하지만 시설도 작고, 허름하고, 옷을 입고 들어가도 되고,

갈아입는 곳이나 몸을 담그는 곳도 그냥 노천에 있어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질 않아.


하여 잠시 쉬면서 발바닥을 식히고는 다시 시늠해 걷기 시작했어.

오늘 밤 우리가 잘 곳, '뉴 브릿지' 마을을 향해서.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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