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 기차를 타보고 싶다던 벗에게 - 11
내리막길이라 힘이 발가락으로 쏠려서 그런지 몇 개의 발톱에서는 불이 나는 듯했어.
그러다 계곡물을 만났어. 신발을 벗고 양말을 벗고 물에 담그니 온천이 부럽지 않더구만.
뜨거운 발을 식힌 뒤, 처음 본 꽃들과 눈인사를 하고 사진도 찍으면서 달팽이 걸음이었지.
덕분에 건너편에서 오는 소떼도 시원한 물이 그리웠던지 소걸음으로 오더니 물속으로 들어가 몸을 담근 채 물을 마시고. 등 뒤쪽에서는 염소 떼가 목동의 휘파람에 맞추어 물 마시러 물가로 가는 그림 같은 풍경도 만났지.
한가로이 물끄러미 바라보는 이 순간 무엇이 부러울까!
그러다 문득, 하늘을 보니 심상치 않은 거야.
한바탕 쏟아질 것 같아 서둘러 배낭을 멨고, 서둘러 걸었어. 다행히도 비는 오지 않았어.
4시 45분, '뉴 브릿지' 도착.
우리는 Hinudhuli Lodge에서 묶기로 했어.
아침을 먹는 동안 온몸으로 느껴지는 건 저 위쪽의 날씨와 기온이 많이 다르다는 것이었어. 위쪽, 그러니까 촘롱 마을 그 위쪽은 오리털 점퍼를 입고도 덜덜덜 떨렸고 무척 춥다 느꼈는데, 이곳에서는 오리털 점퍼를 입지 않았는데도 그리 춥다고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또 한 가지, 안나푸르나 트래킹을 하면서, 또는 우리가 묵었던 곳들에서 보았던 풍경 가운데 두드러져 보인 건 안주인들의 행위였어.
아침저녁으로 향로(香爐)에 향불을 피워 들고 집안 곳곳을 한 바퀴 돈다는.
그러니까 집 안팎의 모든 곳에 연기를 쏘이는 건데 향공양을 올리는 것인지 집안을 맑히려는 정화의식(淨化儀識)인지는 알 수 없었어.
이곳 뉴 브릿지 숙소에서는 좀 더 자세히 볼 수 있었어. 물론 주인의 허락을 받았지.
안주인은 먼저 부엌에 있는 단에 물과 꽃 그리고 향을 올리고는 향불을 피워 곳곳을 돌아다니는 거야.
단은 방에도 있었어. 그 앞에서도 향을 피우고 무슨 주문인지 예경문인지를 한참 읊조리고는 바깥으로 나가서 집 둘레를 한 바퀴 돌고 나서야 끝났어.
방 안의 단은 벽 중앙 중간쯤에 설치되어 있었고 그리 크지 않았어.
단을 둘러싸고 있는 것들 가운데에는 무슨 사진이 놓여있었어. 그러나 너무 오래된 사진이라 아무리 들여다 보아도 형체를 알아볼 수가 없었어. 그런데다 너무나 많은 것들이 쌓여있어서 뭐가 뭔지를 알 수가 없었어.
켜켜이 쌓아놓은 것들에는 먼지와 때가 절어있는 것도 많았거든.
룽따와 '옴마니반메훔'이라는 글씨가 박힌 깃발이 꽂혀있는 것으로 보아 티벳불교 영향을 받았구나 싶을 뿐이었지.
어젯밤 9시까지 이야기를 나눈 서른세 살의 사내는 ABC에서 만났던 앤드류.
옛날 같으면 노총각 소리를 들었을 나이지만 스무 살 때부터 여행의 삶을 살면서 죽을 때까지 자유롭고 걸림 없는 삶을 꿈꾸었다고 해.
연애도 해봤지만 조건과 현실을 먼저 따지는 한국 여성들의 심리를 알고 나서는 결혼을 포기했대.
그리고는 몇 달 벌면 훌쩍 다른 나라로 가서 몇 달 또는 1년 남짓 살면서 가슴을 트여 주고, 다시 몇 달 벌고 다시 떠나곤 했다는 거야.
그렇게 살면서 스스로 행복하고 편안하다 여기며 살았대. 그런데 이곳 네팔에 두 번째로 오면서 문제가 생겼다는 거야.
그는, 네팔의 순수함에 끌려 다시 찾아왔는데 '고래 빠니' 쪽에 갔다가 가슴 설레고 두근거리는 인연을 만났다는 거야.
세상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사랑을 모르는 것도 연애를 모르는 것도 아닌데 첫눈에 가슴이 뛰면서 평생 반려자로 느껴지는 사람을 만났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레고 두근거리며 앞날의 계획까지 생각하게 된다며 "이런 느낌은 처음"이라는 거야.
며칠 더 만나 보고 느낌과 생각에 변함이 없으면 현실 속 실제 계획을 세워야겠다는.
"잘 되길" 바란다고 말해 줬어.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문득 그를 떠올렸어. 그는 고래 빠니에서 살고 있을까?)
아침을 먹고 길을 나섰어.
논과 밭 사이의 오솔길을 걸으며 잠시 걸음을 멈추고 하늘도 바라보고 건너편 마을도 건너다보면서 그렇게 스적스적.
그러고 보니 이쪽 길에는 말똥이 별로 보이질 않았어.
아마도 이 마을 사람들은 필요한 게 있으면 어깨와 머리로 짐을 나르는 포터(짐꾼)의 힘에 의존해 쓰는 가봐.
내려가는 길에 침대에 깔 매트리스와 생활용품을 지고 가는 사람들과 만났는데, 아직은 학교에 갈 나이로 보이는 사내아이도 있었어.
사람을 만나면 "나마스테!"라는 인사를 하곤 했는데 차마 못하겠는 거야.
나의 인사를 받는 게 버겁게 느껴질 정도로 제 몸 보다 몇 배나 큰 짐을 지고 있었거든.
뒤로 멀어지는 그들을 보며 뭔지 모르게 내 가슴이 일렁였어.
12시 10분, 시울리 바잘(Syauli Bazar)에서 점심을 하고 다시 걷기 시작.
평평한 길이 조금은 지루하게 느껴질 즈음 우리가 트래킹을 시작하며 올라간 길을 만났어. 그런데 참으로 낯설게 느껴지대.
말없이 걷기만 했어. 발톱과 발바닥이 욱씬거리고 뜨겁게 느껴졌어.
머리 위의 볕은 티 없이 맑은 하늘에 걸맞게 걸림 없이 내리쬐고 있기에 구름이 그리운 순간들이었지.
드디어, 비레탄띠(Birethati) 도착. 다리를 건너자마자 바로 택시를 잡고 흥정을 했어.
1200루피에 포카라까지 가기로 했는데, 젊은 혈기가 넘쳐 보이는 택시기사는 운전하는 동안에고 머리를 매만지고 모자를 썼다 벗었다, 마주 오는 차들과도 비켜주고 내달리기를 마치 서커스를 되풀이하듯 하는 거야.
젊은 아가씨들이 지나가면 가까이 가서 경적을 울리기도 하고 어떤 상황을 만나면 차를 세우고 참견하기도 마다하지 않으면서 말이야. 그렇게 그렇게 마침내 포카라에 왔고, 짐을 맡겨 두었던 '포카라 호텔' 앞까지 와서 내렸지. 휴우~!
호텔 네팔 안주인이 우리를 보더니 너무도 반갑게 맞아주는 거야.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어. 먼 길 다녀오는 식구를 맞아주는 것 같아서.
(마지막 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