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기차를 타보고 싶다던 벗에게 - 12 (마지막)
오늘은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밀렸던 빨래와 신발까지 빨아 너는 날!
수진,
나는 지금 꿈에서도 생각지 않았던 안나푸르나를 다녀온 감동이 아직 생생해.
사진으로만 보던 설산(雪山), 사랑콧이라는 곳에서 바라본 설산도 감동이었는데 그곳 중턱(?)을 직접 다녀오다니...!
더군다나 신통치 않은 이 몸뚱이로 말이야. 도무지 꿈만 같고 순간순간 마음은 그 길 어디쯤에 서 있곤 해.
거듭 생각해도 제주도 스님의 물심양면의 배려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일이라고 여겨.
뿐만이 아니라 서로서로 힘 북돋으며 함께 했던 림이 있어서 가능했다고 생각해. 그래서 그저 고맙고 또 고마운 마음이야.
한가히 보내다 보니 오른쪽 새끼발톱이 너무도 욱신거린다는 걸 알았어.
살펴보니 잔뜩 곪아있는 거야. 곪은 걸 살살 도려내고 나니 발톱이 없어졌어.
그리고 ABC의 새벽에 느꼈던 가슴 통증이 아직 그대로 있다는 것도 알았어.
안나푸르나 ABC를 다녀온 기념이라고 생각해.
사그라지지 않는 감동의 마음으로 다시 한번 올라가는 동안과 머무는 동안, 그리고 내려오는 동안의 시간을 곰곰 더듬어 보았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있어. 그들은 포터, 흔히 짐꾼이라고 하는 사람들이야.
그들을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존경스럽다'라는 말 밖에는 없을 거야.
그리고 놀라웠던 사실은 그들의 월급이었어.
그들이 나르는 짐, 그들이 흘린 땀방울을 생각하면 상상도 못 할 만큼의 대가라는 거지.
그나마 외국 사람들의 짐을 나르는 이들은 낫다는 거야.
현지 사람들, 그러니까 설산 마을의 짐을 나르는 이들의 수입은 우리 돈으로 하면 한 달에 5만 원 정도인데 그보다는 낫다는 거지.
하지만 (외국인 포터) 그들도 50%는 에이 전시에 떼어줘야 한대.
낫다는 건 아마도 외국사람들은 팁을 주니까 그런 걸지도 모르겠어.
자신의 키보다도 크고 자신의 몸무게보다는 무거운, 크고 넓고 긴 짐을 지고도 날듯이 잰걸음으로 저만큼 앞서갔던 그들,
튼튼치 않은 신발을 신고(어떤 이는 낡은 슬리퍼를 신고)도 어쩜 저리 잘 갈까 싶은 그들,
성근 바구니에 담긴 짐을 끈에 매달고 머리에 걸친 뒤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하고 땅만 보며 걷던 이들,
그들 몸집이나 키보다 커다란 서양 사람들의 배낭을 지고 갈 때면 배낭이 걷는 듯 보이는데 그렇게 큰 짐을 지고도 저만큼 앞서가곤 하여 할 말을 잃게 만든 사람들이었거든.
이와 같은 실상을 안 어떤 여행객, 어떤 트래커는 에이 전시를 거치지 않고 가이드나 포터에게 바로 연락하여 하루 들어 품삯이 고스란히 그들의 주머니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걸 보기도 했어. 괜스레 고마운 거 있지.
그다음 생각나는 건 날씨야.
첫날은 그럭저럭 괜찮은 날씨였는데 다음 날은 쨍쨍 내리쬐는 햇살이 부담스러울 정도였어.
그런데 웬걸, 오후가 되면서 구름이 끼고 천둥소리가 요란해지더니 우박과 함께 비가 쏟아졌지.
하루 이틀 빼고는 날마다 오전은 햇볕 쨍쨍에 맑은 날이었지만 오후가 되면서는 구름에 눈보라였어.
오늘(2월 말경)도 마찬가지야. 오전에는 쨍쨍했는데 점심시간 뒤에는 천둥에 비바람이 휘몰아치고 있어.
다행인 건 오전 볕에 빨래가 다 말랐다는 사실이야.
수진, 이곳(포카라)에서 며칠 지내면서 벌써 사흘 째 먹는 아침은 쉴라 베이커리(Sheela Bakery)의 샌드위치야.
값이 비싸지 않으면서 양이 많고 여러 가지 샌드위치를 맛볼 수 있다는 게 큰 매력이거든. 다만 아쉬운 점은 뜨거운 차를 시키면 손잡이 없는 유리컵에 준다는 사실. (너무 뜨거워~~)
오늘도 '쉴라'에서 아침을 먹고 떠날 준비를 슬슬 하고 있어.
그러고는 (또 언제 올러지는 모를) 포카라에서 마지막 저녁을 먹었어.
우리말로 바꾸면 '달콤한 추억' 또는 '향기로운 추억'이라는 이름의 식당에서.
그런데 음식을 나르는 이들이 우리 나이로 보면 겨우 일곱 여덟? 많아 봐야 열두서너 살 밖에는 안 보이는 아이들이 하고 있다는 거야.
밝고 명랑한 것까지는 좋으나 껌을 씹어가며 서로 제가 하겠다고 밀치고 뺏고 하는 모습을 보자니 그리 좋아 보이진 않았어.
이곳 포카라는 엄청 이름난 도시지만 상점이 있는 거리는 그리 크지 않아 두 시간 안에 다 돌 듯해.
그런 곳에 한국 식당이 몇 곳이나 있다는 사실이 또 놀라웠어. 우리가 가본 곳만 해도 네 곳이나 됐거든.
'산마루'는 청국장을 먹었는데 된장찌개 맛이 났어. 그 밖의 음식들은 그런대로 괜찮았어.
특히 김치전이나 감자전은 적당히 얇은 데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서 맛도 좋았어.
'서울 뚝배기', 청국장은 그런대로 먹을만했어. 닭볶음도 그렇다더군. 그런데 김치전은 두꺼웠어.
주인장은 참으로 친절했고 여행이나 트래킹 정보를 아주 친절하게 알려주는 곳처럼 보였어.
'낮술', 앤드류가 저녁을 사주어 가게 된 곳으로 서비스 요금을 따로 받고 있었는데도 서비스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 잘 꾸며놓기는 했지만 음식은 만족할만하지 않았어.
'산촌 다람쥐', 주인장이 털털하고 편하게 대해줘서인지 늘 손님들이 많아 보였어. 음식 맛도 괜찮다고 해. 게다가 음식 양도 많아 배가 든든해지는 곳이었어.
포카라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머물기에 참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날씨도 우리에게 맞고 산책 삼아 상점 거리 뒤쪽으로 조금만 나가면 호수가 있어 공기도 좋고 풍경도 좋으니 말이야.
게다가 음식값이나 싼 숙소도 많은 편이라 더없이 좋아.
그렇지만 우리는 떠날 때가 되었어.
며칠 묵으면서 피로를 풀었기에 다시 먼 길을 떠나기로 한 거지.
우리는 택시로 국경까지 가기로 했고, 짐을 챙겨 나온 뒤 게스트 하우스 주인장들과 기념사진을 찍은 뒤 소나울리로 향했어.
"포카라여,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