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여름이 되었고 봄은 지난봄이 되었다.
화사한 봄에 어울리는 고전 '작은 아씨들'을 읽었다.
각기 다른 4 자매를 읽는 것도 즐거웠지만, 읽는 내내 마음에 자꾸만 들어앉는 사람이 있었다.
4 자매의 엄마인 마치부인이 하는 말과 행동에 감정이입 하며 감동을 받았다.
엄마가 되어 읽은 작은 아씨들이어서 그런 것일까.
어릴 때 읽었던 작은 아씨들에서는 단연코 조가 나의 첫 번째였는데 말이다.
인내롭고 긍정적인 마치부인에게 완전히 빠져 그녀의 말과 이야기를 쪼금 모아봤다.
"아침에 일어나 맨 처음 듣게 되는 소리도
집 안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종달새처럼
노래하는 어머니의 목소리였고,
잠자리에서 마지막으로 듣게 되는 소리도 어머니의 밝은 목소리였다"
이른 새벽 남편이 출근하는 우리 집 평일 아침은 나와 아이들 셋이서 맞는다.
아침을 가장 먼저 깨우는 나의 목소리.
나는 어떤 목소리로 아이들의 아침을 열어주고 있는지 생각했다.
확실한 것은 노래하는 종달새는 아니다.
아침을 여는 종달새처럼 노래하는, 잠자리에서 하루의 마지막을 닫는 소리가
엄마의 다정한 목소리라니..
이 문장을 읽으면서 그런 엄마가 되어주고 싶은 좋은 욕심이 마음에 저절로 가득 채워진다.
(현실은 '일어나!! 늦었어!!' 일지라도.. 마음만은...)
이런 좋은 욕심의 마음을 한 번이라도 느끼는 것.
이런 엄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이라도 하는 것.
한 번이 여러 번이 되어 행동도 그러한 엄마가 될 수도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책은 그런 것 같다.
남지 않는 것 같지만 아주 작은 먼지 같은 글자들이 마음에 들어앉아 쌓이면서 우리 자신을 만들어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고 하겠지.
"기분이 좋건 나쁘건, 먼발치에서 보는 어머니의 얼굴은 언제나 햇살 같은 느낌을 주었다."
기분과 상황이 어떻든 한결 같이 아이들에게 햇살 같은 느낌을 주는 엄마라니..
햇살의 느낌이라면 따스하고 눈은 부시지만 기분 좋은 밝음을 자아낸다.
그런 느낌의 엄마 얼굴. 상상만 해도 마음의 안정이 꽉 채워진다.
나는 햇살 같은 느낌을 주는 얼굴을 한 적이 있는가.
아이들 뒤치다꺼리하는 일상에 찌든 모습은 신경질적인 대고모 느낌에 더 가깝다.
도저히 다가갈 수 없는 햇살 같은 느낌의 얼굴. 하지만 또다시 그렇게 되고 싶은 욕망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글자로 쓰인 묘사를 눈으로 읽으니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더 나은 엄마가 되고 싶다. 책은 이런 방법으로 나를 깨운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엄마상, 유니콘 같은 마치 부인을 읽으며 더 나아지고 싶은 욕망을 느낌과 동시에 좌절감에 흠뻑 젖기도 한다. 무거운 좌절감에 마음이 천근만근인 순간에 내 눈앞에 나타난 글이 있다.
"지난 40년 동안 그런 내 성격을 고치려고 노력해 왔지만, 완전히 극복했다기보다는 겨우 잠재우는 데 성공했을 뿐이야. 엄마도 살면서 거의 매일 화를 낸단다. 하지만 그걸 드러내지 않는 방법을 터득했지.
이다음에는 아예 화를 못 느끼는 법을 배우고 싶구나. 그러려면 앞으로 40년이 또 걸릴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무거운 마음이 한순간에 날개를 피고 날아가 버렸다.
그래, 그럼 그렇지. 40년이 걸렸다잖아. 휴.. 다행이다. 나는 아직 40년 안된 것 맞지.
어쩜 좋아. 마치 부인이 더 좋아져 버린다. 아예 화를 못 느끼는 법을 배우고 싶다는 마치 부인의 말에서 4 자매를 키우며 숱한 고민과 어려움을 겪었을 그녀의 체념이 느껴진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이제 조금 가깝게 느껴지는 사랑스러운 그녀이다.
이어지는 마치부인의 인간적인 고백.
"나를 위해서라기보다 너희들을 위해서라고 생각하니 훨씬 수월해지더구나.
내 퉁명스러운 말 한마디 한마디에 깜짝깜짝 놀라는 너희들 표정을 볼 때마다 이 엄만 자신을 꾸짖고 또 꾸짖었단다. 그렇지만 너희가 보여준 사랑과 존경, 신뢰는 너희가 본보기가 되기 위해 내가 기울인 노력을 보상해 주고도 남았단다."
많이 공감됐던 문장이다.
'변해야지' 결심한 가장 큰 계기는 아이들이 나의 부정적이고 짜증 섞인 거친 말투를 그대로 닮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을 때였다.
내가 싫어하는 나의 모습을 내 전부인 아이들이 그대로 하고 있을 때.
견디기 어려운 공포였다. 도망갈 곳이 없는 막다른 골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한 번에 변하기를 원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미세한 단계를 거쳐 변하고 있다.
알아채기 힘든 정도의 미세한 오르막길을 올라가는 중이다. 미세한 오르막길인데 왜 이렇게 가파르게 느껴지는지 기어가는 개미의 들리지 않는 고함소리에도 수없이 넘어진다.
그러나 이제 조금 안다. 넘어지는 거 자체에 좌절하지 않아야 한다.
넘어져서 일어날 힘이 없으면 그냥 넘어져있으면 된다.
그리고 일어날 힘을 충전한다. 어디서 충전되는지 찾아야 한다. 그리고 다시 천천히 일어나 앉아본다.
넘어지면 넘어진다. 쉰다. 충전한다.
다시 일어난다.
또 넘어진다. 쉰다. 충전한다.
다시 일어난다.
유독 나만 왜 이렇게 엄마라는 역할을 힘겨워할까라는 생각을 많이 하고 그 힘겨움에 잠식당하기도 너무 쉬운 약한 엄마다. 그래서 읽기 쓰기로 오늘도 한 발짝 띄어본다.
마치부인도 40년 걸렸다고 하는 위로에 기대어 햇살은 아니지만 반양지 느낌의 엄마로 오늘을 지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