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에는 쓰레기 봉지가, 아이들 눈에는 꽃이 보이는 현상
공원에서 놀다가 집에 들어가는 길 아이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엄마를 부른다.
손으로 어딘가를 열심히 가리키며 뭐가 있단다.
내 눈앞에 보이는 건 오래돼서 기울어진 벤치와 바람에 흔들리는 초록색 커다란 비닐봉지뿐이다.
비닐봉지 뒤 나무 사이에 여백을 들여다보라고 한다.
대단한 것이 있는 줄 알고 카메라부터 켰다.
아무리 봐도 아파트 시멘트 벽만 보일 뿐 아무것도 없다.
답답하다는 듯 아이들은 소리를 높여 저기를 보라고 아우성이다.
아이들의 높아진 목소리 톤에 조금이라도 성의를 보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허리를 숙였다.
그제서야 혼자 덩그러니 피어있는 보라색 수국이 보인다.
차가운 시멘트 벽을 화사하게 만드느라 애쓰는 중이다.
내 시야에는 쓰레기 봉지가 들어오는데,
아이들은 아무도 관심 없는 곳에 숨어있는 수국을 어떻게 발견했을까.
나처럼 앞만 보고 걸어가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삶 자체가 그런 것 같다. 앞만 보고 걸어가면 못 보고 지나치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예전에 '깨어있는 부모'에서 아이와의 대화 속에서 일상의 기쁨을 느끼게 하는 순간들을 읽은 적이 있다.
• 식탁에 온 가족이 둘러앉았을 때의 단란함
•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의 맛
• 자연의 모든 것이 주는 놀라움
• 친구가 자고 갈 때의 신나는 기분
• 그 해 여름 처음 먹는 아이스크림의 감동
• 가을 낙엽의 부스럭거림
• 겨울 추위의 얼얼함
• 피자가게 앞을 지나갈 때 나는 고소한 냄새
-깨어있는 부모 中-
대단하고 특별한 일상보다 심심한 일상에서 사소한 기쁨을 찾을 수 있는 어른으로 자라나기를 바라며 지낸다. (키운다는 이야기는 도저히 못하겠다. 누가 누구를 키워..ㅎ)
사소한 순간들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눈앞에 그 순간이 다가왔을 때 놓치지 않고 포착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가졌었다. 그 의지는 20~30% 정도 실현됐을까. 하지만 꼭 놓치지 않는 특정한 순간들이 있기는 했다.
자연이 빚어내는 같은 듯 다른, 한 번뿐인 순간들이다.
연약한 나뭇잎들 사이에 비치는 찬란한 햇살, 분홍과 주황빛이 뒤섞여 마음이 뜨거워질 만큼 아름다운 노을. 그런 노을을 거실에서 유리창을 통해 마주칠 때면 우리는 주저 없이 밖으로 뛰어나갔다.
탄천 길가에 귀여움을 흠뻑 묻힌 꽃을 보면 한참을 서서 예뻐해 주었다.
차가운 시멘트 벽에 기대어 누구도 찾아오지 않았지만 꽃이 지기 전에 우리가 봐주어서 다행이다.
너의 예쁜 모습을 실컷 봐줄게. 우리만의 정원에 피어있는 수국.
쓸쓸한 곳에서 활짝 피어난 수국을 발견한 아이들이 대견하다.
"엄마 예쁘지?"라고 들뜬 목소리를 들려주는 아이들은 이토록 다정하다.
별 거 없는 일상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것도 능력이다.
우리는 대부분 그것을 하지 못하고 살지 않는가.
내 눈에는 초록색의 비닐 봉지만 보였던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보지 못할 뿐, 어디에든 꽃은 있다.
어디서든 꽃을 발견하는 날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