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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에 글자가 떠다녀요

소아정신과 이야기 2

by 책피는엄마



“손가락으로 뭐 하는 거야?”


“글씨 쓰는 거야.”




여전히 멈추지 않는 아이의 손가락과 자꾸 눈이 마주친다. 이제 손가락 눈치까지 봐야 한다.

“그만해”, “하지 마”라고 수십 번 외치고 싶은 마음이다.

평소 같으면 이미 잔소리 폭탄을 쏟아냈겠지만,

‘지금은 아니야. 눈치 챙겨.’

마음의 소리에 입술을 포개며 참아 본다.

아이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된다고 하니 괜한 압박은 줄 수 없다.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3학년 새 학기가 한 달쯤 지난 4월이었을까.

아이는 자러 방에 들어가더니 다급하고도 괴로운 목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그렇게 갑자기 크게 소리 내어 우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아이의 작은 몸속에 억눌러져 있던 괴로움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듯한 소리였다.

너무나 놀라 아이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왜 그래? 왜 울어?"

"엄마, 도와줘."

"뭐를 도와달라는 거야? 무슨 일 있어?"



처음엔 학교에서 문제가 생긴 줄 알았다.

추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아이와의 스무고개 같은 문답 끝에야, 아이가 무슨 말을 하는지 간신히 이해할 수 있었다.




"머릿속에 글자가 너무 많이 떠다녀."


"글자? 어떤 글자?


"한글, 숫자, 영어"


"그래서?"


"내가 손가락으로 글씨 쓰는 것 있잖아. 그게 머릿속에 글자들이 막 떠 다녀서 쓰는 거야. 나도 모르게 그렇게 돼."


"그랬구나. 그런데 그게 심해졌어?"


"어. 멈추고 싶은데 멈춰지지가 않아. 잠을 잘 수가 없어."




아...

무슨 상황이지?

난생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머릿속에 떠 다니는 글자들?

내 몸이 떠다니는 것 같은 모호하고도 이해하기 어렵고 충격적인 이야기.

자기표현과 말이 많지 않은 아이의 이 정도 표현이면 엄청나게 괴롭다는 건데..

나는 그 순간 아무 판단도 내릴 수 없는 무지한 엄마였다.


아이를 달랜 후, 얼른 검색창을 열었다.


‘머릿속에 글자가 떠다녀요’


손이 떨려 제대로 글자를 칠 수 없었다.

어떤 단어로 검색해야 할지 몰라서 순간적으로 아무말이나 입력한 덕분에 도움되는 정보는 찾을 수 없었다.


이것저것 검색 한지 수 분이 지나고서 '소아 강박'이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다.

우리 집은 15층이다.

심장이 1층으로 곤두박질치는 느낌이 들었다. 세상의 모든 근심과 걱정을 한데 모아 내 심장주머니에 쑤셔 넣고 15층에서 1층으로 떨어뜨린 것 같았다.



더 이상 화면을 볼 수가 없었다.

아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고칠 수 있는 걸까.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내가 아이를 너무 잡았나?

수학 문제 때문에 아이를 힘들게 한 걸까?

역시 또 나 때문인가.




그렇게 나도 눈물로 밤을 보냈다.









**난생처음 듣는 이야기 속, 아이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꽤 오랫동안 스무고개를 했어요. 바보 같은 엄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스무고개 비슷한 과정 덕분에 아이 앞에서는 침착한 척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울 때는 조심스레 스무고개를 추천해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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