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약 불가한 대한민국 소아정신과
하교 후 아이는 담담하게 자기가 생각한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주었다.
그 전에 나는 원인을 찾기 위해 아이가 스스로 알아채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질문을 했다.
이런 증상이 나타난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테니까.
아이의 마음 속을 더듬어 볼 수 있는 질문들이었다.
"요즘 생활하면서 괴로운 기분이 들었던 적이 언제야?"
"정말 하기 싫었던 일이 있었어?"
"어떨 때 불안한 것 같아?"
"네 주변에 새롭게 바뀐 게 뭐가 있었을까?"
심리 분야를 좋아해서 책을 읽기도 하고 오래 전이지만 공부도 조금 했었다.
공부한 기억에 의하면 분명히 이유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아이는 하교 후 생각보다 씩씩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엄마, 생각해 봤는데,
첫번째로 3학년이 되면서 과목이 10개로 늘어났거든. 그게 나는 크게 느껴져.
두번째는 이번에 바꾼 영어 학원이 너무 재미없고 숙제가 어렵고 힘들어.
세번째는 수영이 생각보다 레일이 길고 내가 따라가기가 힘든 것 같아.
그리고 수학을 할 때 엄마가 화를 낼까봐 너무 무섭고 불안해."
그 말을 들으며 마음이 무너졌다.
2학년이 몇 과목을 배우고, 3학년이 몇 과목을 배우는지도 몰랐다.
알아보니 2학년은 5과목, 3학년은 10과목이었다.
사회, 과학, 영어 등이 새로 추가되며 아이의 세상은 훌쩍 넓어지고, 동시에 복잡해졌던 것이다.
실제로 아이는 많은 교과서를 준비하고 정리해 꺼내는 등의 작업이 복잡해서 힘들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중에 병원 진단 해석에서 체계적으로 작업을 처리하는 속도가 느린 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학원에 대한 변을 하자면,
아이 말대로 3학년이 되면서 즐겁게 배우는 영어 학원에서 숙제와 테스트가 중심이 되는 학습형 학원으로 바꾸었다. 아이는 학습 강도가 높은 숙제를 할 때마다 울고 짜증내며 거부반응을 일으켰었다.
수영도 선수반이 있는 곳으로 옮겼고 그 만큼 훈련 강도가 달랐다.
그리고 수학.
겨울방학 내내 나는 아이에게 문제집을 들이밀며 소리를 질렀다.
조급했고, 화를 냈고, 세상에서 제일 차가운 계모 같았다.
초등학교 3학년이 뭐라고.
그 나이에 수학 몇 문제 더 맞추는 게 그렇게 중요한 일이었던가.
아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해야할 시절을, 나는 점수와 진도로 눈을 가려 버렸다.
이 모든 일이 2, 3월에 이루어진 것이다.
나중에 찾아보니 새학년이 시작하는 3월에는 학교 생활에 변화가 크니 학원이나 다른 환경은 바꾸지 말라는 조언을 봤다.
아이의 기질을 보려 하지도, 새 학년이 된 아이의 마음을 살피지도 못했다.
그저 눈앞의 결과물에만 욕심 부린 여자였다.
한여름 햇빛에 무력하게 녹아 내리는 아이스크림처럼 내 마음도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 마음은 눈물이 되서 부엌 바닥에 웅덩이를 만들었다.
웅덩이에 몸을 묻고 조용히 사라져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일어나야지.
가장 가까운 병원에 전화를 걸어 진료 예약을 물어봤다.
돌아오는 대답은 6개월 후 진료 예약이 가능하단다.
이게 무슨 말이지. 그 때부터 마음은 또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이곳 저곳 전화를 돌려봤지만 대답은 비슷했다.
어떤 곳은 매달 1일, 아침 8시에 줄을 서야 대기표를 받을 수 있다는 말까지 했다.
소아정신과 진료가 필요한 아이가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나와 아이를 품고 있는 이 세상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걸까.
한참을 울다 겨우 마음을 추슬렀다.
다시 가장 가까운 병원에 전화를 걸어 부탁드렸다.
“동생이 이 병원에서 언어치료를 받고 있는데요, 취소 자리가 나면 꼭 연락 주세요.”
이제 나는 두 아이를 모두 소아정신과에 데리고 가는엄마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