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드는 일
반찬 하나 만드는 일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결혼 전까진. 늘 누군가의 손길을 거친 '남'의 반찬을 먹었다. 멸치볶음, 진미채, 메추리알 장조림, 오이무침, 계란말이, 김치전, 땅콩조림, 감자샐러드...... 주는 대로 먹었다. 있는 대로 먹었다. 그러다 결혼을 했다. 소매를 걷고 주방에 들어갔다. 반찬 하나. 쉽겠지. 인터넷에 검색했다. 아, 맞다. 재료가 있어야지. 장을 본다. 가져 온다. 정리 한다. 아, 맞다. 재료 손질해야지. 껍질이 있으면 깐다. 농약이 걱정되면 식초물에 씻는다. 칼로 썬다. 끓는 물에 데친다. 소금에 절인다. 그 다음엔? 아, 그렇구나. 양념장이 따로 있어야 하는구나. 간장에도 종류가, 설탕에도 종류가, 소금에도 종류가, 꿀에도 종류가, 청에도 종류가, 기름에도 종류가, 깨에도 종류가 있다. 그 다음엔? T가 큰술이구나. t가 작은술이구나. 한 컵은 어느 정도를 뜻하는거야? 이 사람은 그람으로 표시했네. 저 사람은 한 손으로 표시했네. 그 다음엔? 볶는다. 섞는다. 굽는다. 튀긴다. 삶는다. 부친다. 무친다. 조린다. 아, 소분해야 하는구나. 그런데 용기가 없네. 시계를 보니 마트는 문을 닫았다. 문득 앞치마를 안했다는 생각에 원피스 앞섶을 보니 아니나 다를까 고추장이 묻어있다. 아, 맞다. 앞치마부터 사야 했는데.
반찬 하나 만드는 일. 우리 시골 사는 할머니께서 철마다 분기마다 보내주시던 갖은 반찬'들'. 시댁 어른께서 갈 때마다 바리바리 싸 들려보내는 온갖 반찬'들'. 친정 엄마표 새콤달콤한 손맛이 살아있는 여름 반찬'들'. n천원 단위로 반찬가게 카운터에 즐비하게 전시된 먹음직스러운 반찬'들'. 반찬 하나 만드는 일.
하나도 어렵다. 그러니까 둘은, 셋은, 다섯은, 열은, 얼마나 어려울까. 그것도 매일. 매주. 매달. 매년. 반찬 만드는 일. 만들기 무섭게 식구들 입으로 사라지는 허무. 그걸 사랑으로, 인내로, 희생으로 매번 타파웨어에 꾹꾹 눌러담던 여자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지금의 내 마음과 같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