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톡을 보내면 일주일만에 답장을 하는 지인이 있다. 처음에는 직업상의 이유로 바빠서이겠거니 했다. 그러다가 어느새 의심하게 되었다. 메시지는 읽지 않지만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1) 프로필 화면은 바뀌는 모습을 보게 되어서다. 일주일이 이주일이 되고, 한 달이 되는 것을 보아서다. 짜증과 화, 의기소침한 마음을 동시에 느끼다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어쩌면 이 사람은 너무 예의가 바른게 아닐까, 하고. 나와 대화하는 것이 너무도 싫어서, 나라는 사람이 너무도 귀찮아서 손가락을 눌러 메시지를 확인하는 것조차 귀찮은 상황임에도 대화방에서는 나가지도 못하고 있는 그런 우유부단하고 소심한 예의. 안쓰러웠다. 나로 인해 고통받는 이이가.
꾸준히 메신저를 통해 연락하고 지내야만 지인 간의 예의를 지키는 것이란 생각에서 조금쯤 자유로워지게 되었다. 어쩌면 어떤 사람들의 삶에서 나를 '빼기' 해주어야 비로소 그들에 대한 진정한 예의를 지키는 게 아닐까 싶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속도와 방향을 타고 이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한 순간 우리는 같은 결의 바람 속에서 서로를 의지하고 그 누구보다 친밀해진다. 서로의 존재가 운기를 상승시킨다. 그러다 다음 순간이 오면 우리의 결은 달라지고 나는 강하게, 너는 약하게 몰아치는 바람이 되어 서로 어긋난다. 서로의 존재는 오히려 방해가 된다. 그럴 때 재빨리 눈치를 채고 과감하게 상대의 진로에서 비껴나는 미덕이 필요하다. 나는 그걸 깨닫지 못했다. 그이의 삶에서 사라져주는 것. 마치 민들레 홀씨처럼 홀연하게 그리고 가뿐하게, 흔적조차 알기 힘들만큼 비밀스런 움직임으로 증발해버리는 일.
그러나 나는 대화방에서 나가지 않았다. 그저 그이가 읽지 않은 1 (어쩌면 읽고도 안읽은 척 하는 것일수도 있는), 노란 숫자 '1' 그대로인 채 우리의 대화를 미완결의 완결로 남겨두고 싶었다. 사라지는 것은 '삭제'와 '단절', '차단'을 뜻하는 것이 아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