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장님 리스펙!" 아마 봉준호 감독의 작품 <기생충>에 나왔던 대사였을까. 한동안 유행하기도 했던 이 말이 유독 생각나는 요즘이다. 박사장님, 부분 말고 '리스펙' 말이다. 나는 출산과정에서 여성이 '리스펙'까지는 아니더라도 무시는 당해선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무시를 직접 경험한 후였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 병원에서 출산을 했다. 기대와 두려움, 설렘과 공포 그 어디쯤의 복합적인 마음을 안고 도착한 '가족분만실'에서 나는 좀 놀랐다. 사방이 추웠다. 실내온도가 24도로 맞추어져 있었고, 얇은 환자복 한 장만 입어야 했다. 자연분만을 위한 제모와 관장이 있었고 이내 유도를 위한 촉진제 투여가 시작되었다. 동시에 나의 '자유롭게 움직일 권리'도 사라져버렸다. 아무리 아파도 나는 침상에서 내려올 수 없었다. 그것이 병원의 '절대 안정' 방침이었기 때문이다. 온몸을 비틀고 속으로 수천번 비명을 질러도 누구도 도와주지 못했다(않았다). 바로 옆에 있는 남편은 절절 매기만 했고, 그 역시 편안하게 눕거나 쉴 수 있는 공간이 없어서 극도로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 와중에도 그는 누워있는 나를 대신해 계속해서 내 소변을 받아내고 오줌통을 수십번 씻어야만 했다(오줌 냄새가 유달리 역했고 심지어 핏덩이까지 둥둥 떠다녔다). 춥고, 수치스럽고(참고로 우리 부부는 아직 신혼이다), 긴장되고, 매우매우매우 아픈 그 공간에서 내 자궁문이 쉽게 길을 터줄 리가 없었다. 그런 내게 의료진은 왜 이렇게 분만 진행이 더딘건지 꾸짖음 아닌 꾸짖음을 했다. 넌 자연분만 실패자라며 짖궃게 놀리는 것도 같았다.
40주도 안된 나에게 유도분만을 권한 건 의료진이었다. 아이를 꺼낼 때가 되었다는 그 말을 아무런 의심없이 믿었다. 뱃속 아이에게 '너 나올 때 되었니' 물어볼 방법은 없고, 나 역시 내 몸을 잘 모른다고, 내 몸을 더 잘 아는 건 의료진일 거라고 순진하게 믿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유도는 실패했고, 의료진은 내게 태연한 얼굴로 건조하게 말했다. "그냥 수술하시죠? 오늘 넘어가면 내일은 주말이니 무통주사도 어려워요. 의료진도 부족해서요." 나와 남편은 황당한 얼굴로 서로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수술 후 눈을 떴을 때 남편으로부터 의사의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배를 열어보니 분만진행이 전혀 안되어 있더라고. 아, 결국 수술할 수밖에 없었던 거구나, 하고 수긍하려던 차에 퍼뜩 든 생각. 아니 잠깐. 그냥 내 몸이 준비가 안되어 있었던 거잖아. 아가도 아직은 밖으로 나올 채비가 안되었던 거고. 그러니까 나는, 무시를 당한 거였다. 한 번은 의료진에게, 다른 한 번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에게. 분만 당사자를 충분히 고려하고 존중(리스펙!)하는 의료진이었다면, 적어도 꼼짝도 할 수 없게 침상에 묶어놓지는(물론 비유적인 표현이다) 않았을 것이다. 내 마음과 달리 '수월히' 진행되지 않는 분만에 대해 불필요한 수치심을 느끼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더욱 근본적으로는 나 스스로가 분만 당사자인 나 자신을 애초부터 리스펙하지 않았던 것이 크다. 나는 나와 내 아기를 전적으로 현대의학의 손에 일임한 채, 이만하면 최선을 다한 것이라고 자기 위로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내 몸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내 몸의 신호를 보다 면밀히 읽어내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건 전적으로 내 잘못이다. 현대 주류 의학에서는 나를 '사람'이 아니라 '개체'로 인지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바랐던 '리스펙' 같은 것은 기대할 수 없었던 현실을 애당초 알았어야만 했다.
결과적으로 나와 아기는 모두 무사하다. 그러면 된 거라고, 하루에도 몇 번이나 감사한 마음이 든다. 그러나 아쉬운 건 사실이다. 그리고 여전히 의문이다. 어째서 나는 왜 나 자신을 리스펙하지 않고 무시했을까. 어째서 의료진은 출산 당사자를 출산 과정의 주체가 아닌 객체로 취급한 걸까. 이 모든 것들은 사회가 여성의 몸을 대하는 방식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