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겁이 나. 너가 나랑 결혼 안 한다고 할까 봐..."
정말 멋없는 말이었지.
불도 켜지 않아 어둑해진 방안, 창문 너머 달빛에 의지해 어렴풋이 보이는 너의 얼굴은 열이 오른 듯 약간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어.
수많은 드라마와 수많은 영화를 보며 수많은 프러포즈를 상상해 본 나였지만, 그 많은 시나리오를 빗나가는 너의 말에 잠시 어떻게 반응하는 게 좋을지 고민해야만 했어.
생각해 보면 너는 늘 그런 애였어. 멋은 좀 없었지만 가식도 없었지. 너의 감정은 늘 투명했고 나는 그런 네가 늘 좋았어. 그래서 생각했어. 어쩌면 이 고백이 가장 너다운 문장일 수도 있겠구나. 그리하여 이 고백은 어떠한 가식도 없는 너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있던 단 한 줄의 진실이겠구나.
비껴갈 수 없는 너의 진심을 온전히 받아 들자 일순간 온몸이 일렁였어. 마음속에 무엇인가가 차오르더니 이내 코끝을 간지럽히고 눈앞에 아른거리기 시작했지. 나와 결혼하지 못할까 겁이 난다는 그 마음이 너무 커 내 속에 오롯이 담기지 못한 채 자꾸만 비집고 나오는 건가 싶었어.
"할 거야. 너랑. 결혼."
"진짜? 진짜 나랑 할 거야?"
"응, 진짜 할 거야. 너랑."
너는 알까.
애써 무덤덤히 끊어 내뱉은 문장들로 나는, 한 방울도 놓칠 수 없던 너의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야만 했다는 걸.
너는 모르겠지.
불쑥 그날 생각이 떠오르는 날이면 나는, 자꾸만 마음속에서 뻗쳐 나오는 뜨거운 무엇인가를 잠재우기 위해 잠시 눈을 감아야만 한다는 걸.
그래, 분명 이게 우리에게 가장 어울리는 오프닝일 거야.
가식 없는 너와 무덤덤한 내가 이끌어 갈 이야기니까.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너와 나, 우리 둘 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