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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선생 Feb 21. 2023

[교단일기] 기간제교사로서의 4년 10개월

그리고 새로운 시작

매일 축하받고 있는 요즘이다. 10년간 가장 바랐던 순간순간들인데 사실 막 실감이 나지 않는다. 매일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고, 아직도 가만히 아무것도 안 하고 있거나 늦잠을 자다 일어나면 순간적으로 내가 이렇게 쉬어도 되는 건지, 뭔가 해야 할걸 안 하고 있지는 않은지하는 생각에 불안해진다. 신규교사 연수를 가서 임용 오래 준비한 선생님들과 이야기해 보니 나만 그런 건 아니었다. 다들 똑같다고...


왜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이 순간도 즐기지 못하게 된 건지... 때로는 나 자신이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이제 더 이상 지겨운 교육학책을 펴지 않아도 된다는 것, 교육청 구인구직 게시판에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 자기소개서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 면접을 기다리며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런 것들이 다행스럽게 느껴지고 더 실질적으로 와닿는다.

​​


#.1 간절히 기다렸던 그 순간

25살에 첫 기간제를 시작했다. 2개월짜리 병가자리였고, 그냥 엄마아빠한테 용돈 받는 게 민망해서 독서실비 정도 벌자는 기특한 마음으로 시작했다. 교생처럼 짧게 기간제 생활을 하니 교사를 하고 싶은 맘이 더 간절해졌다. 고작 2개월 가르친 선생님 떠난다고 일곱 반이 모두 앞다투어 파티를 해줬고, 아이들에게 많은 편지와 선물을 받아 울면서 교문을 나왔었다.


당시 난 기간제교사로서 첫발을 내디딘 순간에 신규교사로 발령받은 선생님들이 네 명 있었다. 나이대가 27살, 28살, 32살, 35살이었던 것 같다. 새로 발령받은 교사들을 환영, 축하하는 회식자리였던 것 같은데 그땐 25살의 젊은 패기로 내가 저 나이 때는 무조건 정교사가 되어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런데 옆에 앉아있던 내 또래 행정실 직원이 갑자기 다짜고짜 나한테 "저 선생님들 부럽죠?"라고 물었다. 그 질문을 받으니 내가 부러워해야 하는 상황인 건가? 기간제교사는 모두 당연히 정교사를 부러워해야 하는 건가? 혼란이 왔던 것 같다. 당시엔 그냥 당황스러웠는데 두고두고 생각할수록 기분이 별로인 그런 순간이었다.


나도 곧 저 자리에 있게 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는데 축하받을 날을 맞이하기까지 이렇게 오래 걸릴지는 솔직히 몰랐다. 27살도 늦은 나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보다 더 오래 걸렸으니 말이다.


어쨌든 결국 나도 축하를 받으며 기간제로 일했던 학교를 떠날 수 있게 되었다. 간절히 기다렸던 순간이고, 매년 그 순간에 어떻게 인사할지를 생각했던 것 같다. 근데 막상 그 순간이 되니 어떤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더라. 나와 동갑인 체육선생님 이렇게 두 명만 정교사가 되어 나가는데 우리 두 명에게만 전체 교직원 앞에서 인사할 기회가 주어졌다. 우리말고도 다른 학교 기간제로 그 학교를 떠나는 선생님이 많다는 걸 알았다. 근데 모두에게 인사할 기회는 정교사가 된 우리에게만 주워진 것이다.


함께 앉아있는 수십 명의 기간제 선생님들이 어떤 마음일지를 너무 잘 알아서 온전한 기쁨을 누리기 어려웠고 인사하고 나와선 왜인지 모르겠지만 누구도 쳐다볼 수가 없었다. 물론 진심으로 축하해 주시는 선생님들도 많았고 기간제교사라고 해서 모두가 기분이 별로일 거라고 단정 짓는 건 절대 아니다. 근데 그냥 내 기분이 그랬다. 기간제교사 40명 중에서 결국 한 해에 2명 정도만 정규직이 되어 나갈 수밖에 없는 이 현실이 그랬다. 두고두고 이 대립적인 두 장면을 잊지 못할 것 같다.​​



#.2 선생님은 사실 기간제교사야

<블랙독>에서 한 선생님이 기간제교사들은 행정실로 모이라는 방송을 듣고 아이들에게 기간제교사라는 사실을 들켜 당황하다가 결국 학교를 떠나는 장면이 나온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하니 혼자 엄청나게 감정이입하며 화가 났다. 다행인 건지 기간제 교사로 일한 5년 가까운 시간 동안 그런 곤란한 질문을 받았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나도 운동장 조회에서 새로 온 선생님을 소개할 때 정교사와 기간제교사를 나눠서 소개했던 학교도 있었고, 기간제 교사 전형을 진행하는 동안 선발 명단을 홈페이지에 공개해 아이들이 얼마든지 검색하면 내 직위를 알 수 있었던 학교도 있었다. 어쩌면 아이들도 모른 척해준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블랙독>에서 가장 공감되는 장면 중 하나가 아이들이 "선생님 내년에도 저희 가르쳐 주세요."라고 할 때 확실하게 대답하지 못하는 기간제 교사들의 모습이다. 실제로 첫 담임을 했던 시절 소위 문제아들만 모아 놓은 반을 맡아서 1년 내내 고생하고 재계약이 안 될 뻔한 적이 있었다. 그 아이들이 지금은 군대에 가서 휴가 나오면 소고기 사주겠다고 연락이 오는데 그 아이들에게는 꼭 말해주고 싶었다. 그때 선생님은 사실 기간제교사였다고. 정말로 너희 때문에 그 학교에서 잘릴 뻔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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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겸손하게 살자

돌아오는 3월부터는 정교사로서 새로운 학교에 출근하게 되지만 솔직히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난 여전히 매일 쉬는 시간마다 교실에 가서 아이들 이름을 외울 것이고, 입학 100일이 되면 100일 잔치를 할 것이며 순간순간 애들을 귀찮게 하며 사진을 찍어 학기말에는 학급앨범을 제작할 것이다.


일도 더 열심히 할 것이다. 경력이 있는 사람이라 더 믿고 맡기는 일도 많을 테고 잘 못하면 전에 일했던 학교를 욕보이는 것 같단 생각이 들어 덜렁거리는 성격이지만 완벽하게 해낼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예전에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 우리 학교는 기간제교사, 정교사 차별 전혀 없다고 확신해서 말하는 친구의 말에 내 마음이 불편해졌던 적이 있다. 기간제교사로서 드는 위축감, 차별받는다는 생각은 그것을 겪어보지 않는 사람은 절대 느낄 수 없는 것이므로 함부로 단언해서 말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감정은 대놓고 너 기간제교사니까 이런 거 해라고 하는 불합리한 상황에서만 느껴지는 건 아니니까.


물론 기간제 교사로서의 경험이 있어 더 잘 챙겨주시는 정교사 선생님들도 많고 대부분이 차별 없이 똑같이 잘 대해주신다. 따라서 대부분의 시간은 나 자신이 기간제교사라는 자각 없이 잘 보낸다. 그러나 기간제교사로서 힘든 것은 그냥 내년에도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지 확신할 수 없는 비정규직이라는 사실 그 자체에서 오는 것이고 굉장히 미묘해서 말로는 표현할 수 없지만 느껴지는 다양한 별것 아닌 상황들에 따른 것이다. 따라서 우리 학교는 차별 같은 거 없어라고 절대 단정 지어 이야기하는 정교사는 되지 않을 것이다. 그냥 최대한 그 둘을 구분하는 일 없도록 내가 정교사라고 이렇게 할 거라는 것도 없이 그냥 막내니까 더 열심히 하겠다는 마음으로 겸손하게 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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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교사에게 힘이 되는 아이들

교사라고 아이들에게 주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로부터 생각지 못한 큰 힘을 받는 경험도 많다. 그냥 작은 말 하나, 진심의 표정, 문자나 편지를 통해 전해주는 진심이 교사로서 일할 힘을 준다. 그런 순간들을 말해보라고 하면 셀 수 없이 많지만 특히 올해는 종업식날 내 앞에 멈춰 고개 숙여 인사하고 가는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나와 일대일로 마주하는 그 순간 자체를 어색해하며 잔뜩 쑥스러워하는 표정으로 한 명 한 명 내 앞에 와 깊이 고개 숙이고 그동안 감사했다고 말하고 나가는 아이들의 모습에 정말 눈물이 핑 돌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천방지축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마음을 표현할 줄 아는 따뜻한 아이였다니.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장면도 있었다. 작년 말부터 굉장히 다양한 학교에 면접을 보러 다녔는데 그중 한 학교에서 수업실연을 위해 복도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그 학교 학생인 것 같은 아이가 지나갔다. 내 모습은 누가 봐도 면접을 앞두고 긴장하고 있는 수험생의 모습이었을 텐데 그 아이는 날 보더니 머리를 숙이며 안녕하세요하고 인사하고 갔다. 학교에서 만나는 어른에게는 인사를 해야 한다고 배운 그대로 실천하는 착한 아이였을 것이다. 그 아이의 모습에 감동받아 그래 지금 나는 저런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이 자리에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 힘이 났다.

대기실에 쓰여있던 교실 벽 한 켠에 쓰여있던 낙서다. 아마 내가 저 반의 담임이었다면 왜 벽에 낙서를 하냐며 저 아이를 혼냈을 것이다. 그런데 그냥 한 명의 대기자로서 저 낙서를 보며 힘을 냈다. 그래 난 할 수 있어. 끝까지 힘내자고.


생각지도 못한 말과 순간에 아이들에게 큰 힘을 얻는 일이 많다. 교사라는 직업이 너무 힘들다고 느껴지다가도 아이들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에도 교사가 되어야 할 이유를 찾는다.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날들이 기대가 된다. 40명이나 되는 반아이들 이름은 언제 외울 것이며 그 많은 아이들 생기부는 다 어떻게 써야 할지 현실적인 걱정이 앞서는 것이 사실이지만 또 다른 환경에서 또 다른 교단일기를 써 내려갈 내일이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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