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선생 Aug 03. 2023

[교단일기] 대한민국에서 교사로 살아간다는 것

최근의 단상

이게 얼마만의 교단일기인지 모르겠다. 바쁘게 지내다 보니 어느덧 여름 방학이 되었고, 새로운 학교에서 2년 차의 생활도 벌써 한 학기가 끝이 났다. 올해는 작년보다 마음은 조금 더 편해졌고, 여유도 좀 생긴 것 같다. 오며 가며 복도에서 만나는 작년 아이들에 대한 애틋함도 생겼고, 새로운 아이들에게 또 푹 빠져 정신없이 한 학기를 보냈다.​


# 1. 시험문제 오류

정말 정말 정말 쓰고 싶지 않은 이야기지만 안 쓸 수가 없는 내용이 바로 시험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다. 교사에게는 교과 담임, 학급 담임, 여러 행정 업무 등의 업무가 주워지는데 그것들 중 경중을 굳이 정하자면 그래도 가장 중요한 게 출제 및 성적이 아닌가 싶다. 특히 고등학교는 아이들의 성적이 대학 입시라는 거대한 산을 넘는 중요한 자료가 되므로, 절대 소홀해서도 실수가 있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스트레스가 너무 크다. 매번 시험 기간 때만 다가오면 이 일을 내가 30년을 더 할 수 있긴 한 건지 의문이 든다. 그래도 기간제 교사로 일했던 지난 학교들은 인문계 고등학교이다 보니 최소 3명에서 최대 7명의 국어과 선생님들과 함께 출제를 했었다. 보통 나에게 배당된 문제는 적게는 5문제에서 9문제 정도였고, 내가 맡은 일부 시험 범위에서 문제를 내기 때문에 나름 많이 고민하고 출제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교차 점검을 철저히 3차 이상 하기 때문에 실수를 해도 누군가 찾아줄 수 있을 거라는 왠지 모르는 믿음과 든든함이 있었다. 실제로 그 과정에서 배운 것도 정말 많았다! 그렇게 여러 사람이 함께 검토하고 수정해도 보이지 않는 오타나 실수들은 아이들에게 시험지가 나간 순간까지도 보이지 않을 때가 있는데, 시험이 시작된 이후에 발견되더라도 같이 내 편이 되어서 함께 처리해 줄 선생님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었다.


그런데 정교사로 발령 난 지금의 학교는 특목고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한 학년, 한 계열의 수업을 혼자 다 하고, 출제도 혼자 다 한다. 이게 이렇게 힘든 일인지 몰랐다. 어떤 사람은 간혹 얻어걸리는 빌런 선생님(?)들과 함께 진도 맞추고 같이 출제하느니 그냥 혼자 하는 게 속편하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래도 1년에 네 번 혼자 30문제 정도되는 문제를 출제하는 것은 너무나 가혹하다. 그래 백 번 양보해서 출제까지는 할 수 있다. 하지만 오류 없이 출제할 수 있는 것은 너무나 자신이 없다. 작년엔 그래도 처음 왔다고 국어과 부장 선생님이 봐주셨는데, 올해부터는 정말 각자도생이었다.


하필 올해 내가 맡은 계열 아이들이 작년 아이들보다 성적에 더 예민하고 열심히 하는 아이들이라서 더 긴장이 되고 스트레스가 심했다. 그래서 나름 열심히 한다고 미리부터 출제하고 준비했는데, 오류가 나버렸다. 문법 문제였는데, 공시적으로 보느냐, 통시적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답이 애매해지는 문제였다. 선생님이 가르쳐준 대로 풀어야지하고 우기면 우길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건 너무 어른답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틀을 꼬박 고민하다가 국어과 선생님들과 상의하여 모두 정답 처리를 하게 되었고, 며칠간은 아이들 얼굴 보기가 민망했다. 교사로서 너무 무능력한 것 같아 한동안 우울한 감정에 휩싸였다. 물론 모두 정답 처리가 되어서 대부분의 아이들은 좋아했지만 풀어서 맞힌 애들은 그만큼 다른 아이들이 치고 올라온 것이기 때문에 속상해하는 모습이 역력했고, 왜 이 문제를 맞게 해 준 건지 따지며 아이가 너무 속상해한다고 투정을 부리는 학부모 민원도 받았다.


하지만 교사도 인간인데 어떻게 실수를 안 할 수가 있겠나. 30년이나 되는 세월 동안 시험 문제에서 한 번의 오점도 없이 낼 수 있는 교사가 얼마나 되겠나. 그래도 더 큰 민원이나 골치 아픈 일 아니고 모두 정답으로 처리할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등등 자기 암시, 정신 승리로 잘 넘겼고, 아이들에게도 선생님도 사람이다 보니 실수를 한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다음엔 더 철저히 검토해서 문제 내겠다고 약속을 했고, 다행히 기말고사는 무사히 질문 하나 없이 지나갔다. 참 쉬운 일이 없다. 당장 또 2학기 두 번의 시험, 그리고 계속될 시험들이 걱정이 되지만 어쩌겠는가 피할 수는 없는 일인데....​​



# 2. 잘 이별하기

올해도 한 아이가 자퇴했다. 수업도 전공도 열심히 하던 아이였는데, 아버지께서 해외로 발령이 나게 되면서 가족 다 같이 가게 되었다고 한다. 어쨌든 아이에게는 좋은 기회이기에 말릴 이유가 없었고, 자퇴하는 날까지도 열심히 필기하며 수업을 듣는 아이의 모습에 감동했다. 반 친구들과도 잘 지내던 아이라서 앞에 나와서 인사를 시켜야겠다고 생각해 자퇴할 아이에게 아침 조회 시간에 이따 국어 시간에 시간 잠깐 줄 테니까 뭐라고 인사할지 생각해 보라고 했다. 아이는 처음엔 당황한 듯했지만 이내 웃으며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시험 범위 나가기에 급급해 나 혼자 50분을 다 쓰고 종 치고 나오고 나서야 그 아이 인사를 안 시켰다는 게 생각나는 게 아닌가. 종례 때 시간을 주면 집에 빨리 가고 싶어 하는 다른 아이들이 싫어할 수 있고 그 모습이 혹시 그 아이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까 싶어 그냥 어쩔 수 없으니 넘길까 하다가 그래도 마지막이고 인사말을 준비했을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보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종례 시간에 좀 일찍 들어가서 분위기를 잡고 아이들에게도 양해를 구하고, 자퇴할 아이를 앞으로 불렀다.


그러자 아이가 빼곡하게 적어둔 노트를 들고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냥 나의 사소한 귀찮음으로 넘겼으면 한 아이에게 큰 상처를 남겼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정신이 바짝 들었다. 이래서 교사는 약속 하나도 쉽게 해서는 안 되고 작은 일이라도 사소하게 넘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또 한 번 들었다. 어쨌든 아이는 나와서 자신이 쓴 글을 수줍게 다 읽었다. 듣다 보니 괜히 내가 찡해졌고 몇몇 아이들도 울컥해했다. 그러다 마지막에는 항상 감사한 담임 선생님이라며 나에게도 쓴 편지를 읽어줬다. 생각지도 못한 이벤트에 내가 더 큰 선물을 받은 느낌이었다.


이후 부모님과 함께 교무실에서 교감 선생님과 면담 후 자퇴신청서를 작성해 제출했고, 교무실 앞에서 배웅하면서 아이를 한 번 꼬옥 안아주었다. "우리 각자 더 큰 사람이 되어서 만나자!"


이별은 늘 슬프지만 잘 이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또 한 번 배운 날이었다.



# 3. 학부모를 대하는 자세

어떻게 보면 요즘 가장 민감한 주제가 아닌가 싶다. 다행이라고 해도 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6년 조금 넘는 교직생활 동안 지독할 정도로 괴롭히는 극성 학부모를 만난 적은 없다. 하지만 매년 무례한 학부모들은 있었고, 젊은 여교사라고 무시하는 학부모들도 종종 만났었다.


“말썽 부리는 남자애들이라 좀 무서운 남자 선생님이 담임을 해주셨으면 했었는데, 아쉽네요.”


“선생님은 저희 반 담임 선생님이잖아요. 그럼 아이가 잘못했어도 저희 아이 편을 들어주셔야죠. 자꾸만 다른 반 아이 쪽에서 말하니까 저희 애가 속상해하잖아요. “


“(오후 11시 47분) 선생님, 혹시 국어 보고서 제출이 내일까지 맞나요? 저희 반 아이들은 예외 없나요?"


“(주말 이른 아침) 선생님, 국어 시험 범위가 어떻게 되나요?”


“선생님, 오늘 생리결석입니다.”


그냥 몇 가지 생각나는 것만 적어보면 이정도이다. 아이들을 학교에 맡겨 놓고 불안해 할 수도 있기에 나름 학부모 밴드도 만들어서 수시로 정보도 공유하고, 주요 이벤트가 있는 날에는 아이들 사진도 올려드린다. 틈틈이 중요한 안내가 있을 때는 장문의 문자도 보내고, 학기말에는 학부모 편지도 써서 한 학기 동안 협조해 주신 데에 감사의 말씀도 전한다. 그러면 대부분의 학부모님들은 감동적인 문자로 감사를 표하시고, 선생님이 담임이라 우리 아이들이 참 복이 많다고, 늘 잘 알려주셔서 안심이 된다고 표현해 주셔서, 학부모님들의 답장을 받을 때면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한다.


학교에서 업무폰을 따로 지원해 주지만 굳이 그렇게 쓰는 게 더 귀찮을 것 같아 그렇게는 안 하고 개인번호를 아직까지는 공개하고 있다. 간혹 가다 무례하게 밤늦게나 주말에 연락을 해오는 학부모님들도 있지만 웬만하면 그날 안에 답장을 드리는 편이다.


그런데 최근 사건을 겪고, 이런 나의 행동이 오히려 다른 선생님들에게 비난의 화살이 되지는 않을까 마음이 무거워졌다. 나의 행동들이 결코 당연한 것들이 아닌데, 당연한 것인 줄 알며 비뚤어진 주장을 하실까 봐 말이다. 예를 들면 1학년 때 내가 담임을 했던 학부모가 2학년 때 다른 담임 선생님에게 똑같이 행동하며 작년 담임 선생님은 다 해주셨는데 선생님은 왜 안 해주시냐고 핑계를 대며 비난할 수 있는 그런 상황들.... 그래서 조금은 단호해지기로 했다. 최근 서이초 사건 이후 밤 12시가 다 되어 국어 과제 관련해서 질문이 있다며 문자를 보낸 학부모가 있었다. 막 잠을 청하려고 누운 상태에서 그 문자를 보니 너무 화가 났다. 아마 아이가 놓쳐서 안 하고 있다가 내일까지가 마감인 걸 알고 화들짝 놀라서 연락을 하신 것 같았다. 죄송하다는 말은 덧붙였지만 이게 지금 밤 12시가 다 되는 시간에 학부모가 직접 교사에게 할 질문인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음날 아침 출근해서 답장을 보냈다. 아이에게 무슨 큰 문제가 생긴 게 아니라면 너무 늦은 시간에 문자 하는 일은 좀 자제해 달라고. 감정은 덜어내고 최대한 차분하게 말씀드렸고 다행히 어머니도 이해해 주셔서 잘 마무리되기는 했다. 하지만 다음날 제출한 과제는 아마 어머니가 직접 쓰신 듯해 보였고 시험 범위, 보고서 제출 등 이제 어엿한 고등학생이 된 아이들이 직접 해야 할 일들까지 모두 관리하는 학부모님들의 모습을 볼 때면 씁쓸하다. 물론 아직 나도 부모가 되지 않아서 섣불리 말하는 것도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적어도 이렇게 되지는 말아야지 하는 모습들은 반면교사로 삼고 있다.


교사들도 바쁜 일상 속에서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똑같은 사람이고 똑같은 감정을 느낀다. 젊었든 나이가 있든, 아이를 낳았든 낳지 않았든, 경력이 적든 많든 교사로서의 전문성을 기르기 위해 대학교 4년을 보내며 공부한 전문가이고, 사소한 말에도 쉽게 상처받을 수 있는 사람이다. 조금은 신뢰하고 또 존중해주셨으면 한다. 그리고 이게 당연한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뭔가 교사로서 권위를 바라거나 대접을 바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아이들을 체벌할 생각도 절대 없다. 그냥 교사로서 내가 하고 싶은 가르치는 일,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일을 방어적이 아닌, 조금은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새삼 벌써 교직 생활을 한 지 7년 차라는 사실이 가끔 좀 놀랍고 신기하다. 매번 뭔가 의욕적으로 할 때면 내가 이걸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내 이 열정이 사그라들면 그땐 어떻게 할까 고민이 들었는데 최근 동기 선생님과 이야기하며 그런 쓸데없는 고민은 하지 말자고. 그냥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걸 하면 되지 않겠냐고. 그걸 내가 꼭 매년 계속 이어서 해야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나야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결론을 지었다! 그래, 지금 할 수 있는 것들, 하고 싶은 것들을 하자. 차근차근히!








작가의 이전글 [교단일기] 초임처럼 허둥대는 3월의 교단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