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날씨가 좋아서 한껏 들뜬 금요일이었다. 하늘은 맑았고, 창밖으로 쏟아지는 햇빛이 유리창을 투과해 따스하게 느껴졌다. 점심시간을 기다리며, 오늘 하루는 기분 좋게 흘러가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의 전화 한 통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점심시간, 회사 직원들과 차로 십오 분 거리에 있는 찜 닭집에 막 도착한 상황이었다. 이곳은 그와도 자주 찾았던 단골집이어서 익숙한 풍경이 반갑게 느껴졌다. 직원들과 둥글게 둘러앉아 주문한 찜닭을 기다리며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그는 보통 점심을 먹기 전이나 후에 연락하는 일이 많았다. 시계를 흘끗 보니 점심을 먹고 전화를 한 듯했다. 나는 잠시 자리를 벗어나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 지금 어디야?”
“이제 먹으러 나왔어. 오빠는 점심 먹었어?”
“나 지금 병원에 왔어.”
“응? 병원은 왜? 어디 다쳤어?”
“그게 아니고… 지금 대학병원인데, 뇌종양일 가능성 이 있다고 하네.”
순간 귀에서 웅 하고 울리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뭐? 그게 무슨 말이야?”
“오늘 일하다가 이명이 들리더라고. 그래서 팀장님께 말씀드렸더니 병원에 다녀오라고 하셔서 잠깐 갔었어. 그런데 거기서 엑스레이를 찍어보더니 바로 대학병원 가 라고 하더라고.”
“……”
“지금 응급실에서 기다리고 있어. 검사 중이라 아직 확 실한 건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그의 말은 차분했지만, 나의 머릿속은 이미 공포와 혼 란으로 가득 찼다.
“아니… 이게 지금…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여보, 너무 걱정하지 말고. 나중에 검사 결과 나오면 다시 얘기하자. 점심 잘 먹어.”
나는 대답할 말조차 찾지 못한 채 전화가 끊겼다. 손에 쥔 휴대폰이 어쩐지 낯설게 느껴졌다. 마치 손끝에서 미끄러질 것 같은 불안감과 함께, 내가 있는 이곳조차 한순 간에 낯선 공간으로 변해버렸다.
뇌종양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나도 모르는 사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는 내 눈물을 감지하고 얼른 전화를 끊었고, 나는 멍하니 서서 그의 말을 다시 되뇌었다. 이명, 뇌종양…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렸다.
세상이 갑자기 멈춰버린 것 같았다. 내 발밑으로 천천히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그를 알게 된 이후로 한 번도 아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 건강에 자신이 있는 그는 항상 어딘가 부실한 내가 조금이라도 아플까 늘 염려했는데, 나는 한 번도 그가 아프면 어떻게 하나 생각해 보지는 못했다. 그런 그가 병원이라니. 그것도 뇌종양이라니. 도대체 무슨 일인지 한 번에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알아듣고 싶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며 점점 더 선명하게 나를 짓눌렀다.
먼저 식사를 하고 있던 직원들이 하나둘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자리로 돌아가니 다들 무슨 일이냐며 물어 댔다. 짧게 설명하고 오늘 반차를 쓰고 퇴근해 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과장님께서는 그래도 점심은 잘 챙겨 먹고 힘내서 얼른 가보라고 하셨다. 별일 없을 것이라고도 하셨다. 그 말은 위로가 되었던 걸까? 아니면 더 막막하게 느껴졌던 걸까? 내 마음속에는 오히려 큰 파도가 일렁였다.
일렁이는 마음을 부여잡고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낯선 소음과 희미한 소독약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CT를 찍고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여기서 그냥 기 다리기만 하니까 지겨워. 빨리 나가고 싶다.”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밝고 가벼웠지만, 그 안에 담긴 미 세한 떨림이 나를 괴롭게 했다. 왜 이런 일을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는지, 그가 정말 이 상황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잠시 후, 뒤따라 시부모님과 친정 부모님이 응급실로 달려오셨다. 각자의 일상을 멈추고 허겁지겁 달려온 그 들의 모습은 이 비현실적인 상황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을 드러내는 듯했다. 병원 복도에 선 부모님의 얼굴에 놀람과 불안이 뒤섞여 있었다. 모두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의사에게서 나올 결과를 기다릴 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들려온 CT 결과. 뇌종양이 의심된다는 말이 우리의 세계를 무너뜨렸다. 정확한 병명은 수술 후 종양 검사를 통해야 알 수 있다고 했다. 무언가 단단히 붙잡고 있던 손끝에서 힘이 풀리며 머리가 텅 비는 듯했다. 의심이라고 했지만, 확정과도 다름없었다. 긴 시간의 기다림 끝에 응급실을 나선 건 저녁이 훌쩍 지나서였다. 모든 결정을 내린 것 같지만, 정작 결정된 건 아무것도 없었다. 병원 복도를 나서며 챙긴 것은 진료 의뢰서와 CT 복사본, 그리고 무겁게 내려앉은 마음뿐이었다. 이질적인 고요 속에서 우리는 발걸음을 옮겼지만, 누군가의 숨소리 하나라도 무너지면 그 모든 고요가 깨질 것 같았다.
부랴부랴 서울대학교 병원으로 온라인 예약을 했다. 화면에 뜬 시간표에서 제일 빠른 월요일 오전 진료를 선택하면서도 손끝이 떨렸다. 예약 확인 창이 뜨는 순간, 안도보다는 더욱 무거운 현실감이 밀려왔다. 지방 대학 병원에서 받은 진료 의뢰서와 CT 복사본을 챙기며, 뇌종양 명의는 누구인지, 어떤 사례들이 있는지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검색창에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길을 잃은 듯한 기분이었다. 어떤 글은 희망의 불씨를 심어주었지만, 이어지는 다른 이야기들은 한순간에 그 불씨를 꺼버렸다. 잠시 숨통이 트이는 듯하다가도 몸서리가 쳐졌다. 시간은 잔인할 정도로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고, 키보드를 치는 손끝에는 어느새 땀이 배어 있었다. 그렇게 밤이 깊었다. 창밖에서는 어둠이 내려앉았지만, 내 마음속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가 가득했다. 끝없는 물음표들이 꼬리를 물고 떠올랐고, 답을 알 수 없는 질문들만이 내 머릿속을 지배했다.
결국 새벽녘이 되어서야 몸을 이불속으로 밀어 넣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차갑고 텅 빈 상태로 밤을 견뎠다. 나는 불안을 숨길 수 없었는데 그는 달랐다. 달라 보였다.
진료 예약을 마쳤다는 이야기를 전하면서도 내 말은 자꾸 흔들렸지만, 그는 여전히 평소처럼 농담을 건네며 물을 마셨다.
“아, 이참에 회사 좀 쉴 수 있겠네. 누워서 영화도 보고 편하게 요양 좀 해보지, 뭐. 나 입원 처음 해보는 거잖아.”
그 말투에는 태연함이 묻어 있었고, 나를 쳐다보는 눈빛에는 괜찮으니 겁먹지 말라고 말하는 듯한 단단함이 담겨 있었다.
그는 늘 그런 사람이었다. 무슨 일이 생겨도 침착하게 상황을 정리했고, 감정에 휘둘려 판단하거나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나보다 먼저 다급해지는 일도 없었고 언제나 내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오히려 나를 붙잡아주던 사람이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본인이 하루아침에 ‘아픈 사람’이 되었음에도 그는 안절부절못하는 나를 안심시키는 데 더 열심이었다. 말없이 손을 잡아주고 검색창을 붙잡고 있는 내 어깨를 다독였다.
“여보, 그만 봐. 아직 아무것도 결정된 거 없어. 이왕 이렇게 된 거 차근차근 치료하면 되는 거야. 걱정하지 마, 나 그냥 많이 안아줘. 알겠지?”
어째서 이렇게 걱정 없이 긍정적일 수 있는 걸까, 이해할 수 없었지만, 또 한편으로 내가 너무 동동거렸나 싶은 마음도 스쳤다. 울고 싶지 않았지만 도리가 없었다.
월요일 새벽,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입원 준비를 마쳤다. 한밤중에도 잠들지 못한 무거운 마음을 품고, 우리는 새벽어둠 속을 달려 서울대학교병원으로 향했다. 이렇게 서울에 오게 될 줄이야. 한 번도 상상해 보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차 안의 공기는 무거웠다. 모두 말없이 각자의 생각에 잠긴 채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둠 속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 나는 갑갑한 마음을 억누르려 창 문에 이마를 댔다. 주차장에 도착해도 여전히 새벽빛은 희미했고, 서울의 낯선 공기가 피부에 와닿았다. 온 가족이 병원 로비 중앙에 모여 앉았다. 그 분위기가 너무나도 생소하고 어색했다. 처음 와 본 서울대학교병원의 규모와 복잡함에 나는 놀랐다. 경직된 몸으로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걱정을 가득 안은 채 수많은 사람을 헤치며 예약한 교수님의 방을 찾아 나섰다. 예약 시간보다 조금 이른 시각, 그의 이름이 불렸다. 이름이 호명되자마자 심장이 두근거렸고, 모두가 따라 줄을 이어 방 안으로 들어섰다. 교수님은 미리 제출한 CT를 들여다보시더니 잠시 고개를 갸웃하며, “이야, 이거 나한테 오면 안 되는 거 같은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 순간, 머릿속에 온갖 걱정이 스쳐 지나갔다. ‘무슨 뜻일까? 무슨 일이 더 복잡해졌다는 걸까?’ 교수님은 이 내 간호사를 불러 다른 교수님과 통화하기 시작했다. 숨 죽인 채 대화를 지켜보는 동안 손에 쥔 가방끈이 축축해질 정도로 땀이 배어 나왔다.
“마침 해당 교수님이 진료 중이라고 하니 방으로 가보 세요. 저보다는 그 교수님이 더 적합하실 것 같습니다.”
교수님의 차분한 말투 속에서 상황의 무게가 느껴졌다. 우리는 다른 방으로 안내받았다.
발걸음을 옮기는 동 안 공기가 더욱 차갑게 느껴졌다. 이 긴 복도 끝엔 어떤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을까,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곳은 이름만 들어도 심장이 내려앉을 것 같은, 암 센터의 뇌종양 센터였다. 병원의 새로운 건물을 지나 지하로 향했다. 도착한 곳에서는 우리가 마지막 환자라며 기다리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교수님은 이미 화면에 집중한 채 검사 결과를 들여다보고 계셨다. 나는 혹시라도 놓치는 이야기가 있을까 싶어 메모장을 꺼내 들었다. 목소리가 떨리는 것을 숨기며 가벼운 인사 후 교수님 앞에 앉았고, 교수님은 화면을 가리키며 조심 스레 입을 열었다.
“신경교종인 것 같습니다. 더 자세한 건 수술 후 종양 검사를 해봐야 정확히 알 수 있지만, 모양으로 봐서는 교 모세포종일 확률이 높아 보입니다만… 정확한 건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교모세포종’이란 단어가 가슴을 찌르는 듯했고, 의미조차 이해하지 못한 채 그 말을 되뇌었다. 나는 겨우 입을 열어 물었다.
“그게… 뭔가요? 신경교종이요?” 교수님은 차분히 설명을 이어갔다.
“뇌종양에는 등급이 있어요. 1등급부터 4등급까지로 나뉘고, 1등급과 2등급은 양성, 3등급과 4등급은 악성으로 분류됩니다. 현재로서는 악성일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만, 확실히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수술을 통해 더 정확히 알게 될 겁니다.”
말씀을 듣는 동안 손에 쥔 메모장이 축축하게 젖어갔다. 나는 간신히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을 이어갔다.
“… 수술하면 괜찮아질까요?” 교수님은 잠시 머뭇거리다 조심스레 대답했다.
“아직 많이 젊으시니 좋은 결과를 기대해야죠. 긍정적인 마음으로 준비하시길 바랍니다.”
교수님은 곧이어 몇 가지 질문을 더 던지셨다.
“지방에서 오셨네요? 무슨 일을 하시나요?”
그의 직업과 일상에 대해 물었고, 동행한 사람들의 관계를 확인했다. 그때 시어머니께서 무겁게 입을 떼셨다. “이제 막 결혼한 아이들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짧은 한마디에 담긴 애타는 마음이 방 안을 울리는 것 같았다.
우리는 어떻게든 빨리 수술을 진행하길 원했지만, 수술 절차와 이미 잡혀 있는 일정들 때문에 순서를 기 다려야 했다. 병원 측에서는 일정이 정해지면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병원을 나서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병원 앞의 음식점에서 늦은 점심을 먹기로 했지만, 음식이 입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너무 큰 병원에서 이리저리 헤매고, 긴장 속에 새로운 병명을 접하고, 환자 등록과 서류 발급까지 모든 일을 처리하느라 정신이 온통 탈진한 상태였다. 식탁에 놓인 수저를 바라보는 동안에도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언제 시작될지 모르는 수술, 앞으로의 여정, 그리고 그의 고통까지. 모든 것이 거대한 파도처럼 나를 덮쳤다. 혹시 바로 입원하게 될까 챙겨 온 물건들은 정말 짐이 되었다. 무거운 짐들을 다시 챙겨 별다른 소득 없이 다시 집으로 내려왔다. 그의 표정은 여전히 평정심을 유지하려는 듯 보였지만, 말투와 몸짓에 묻어나는 지친 기색은 감출 수 없었다. 그는 이미 회사에 휴가를 냈고, 수 술 후 정확한 병명을 확인한 뒤 진단서를 첨부해 병가를 처리하겠노라 상사에게 이야기를 해둔 상태였다.
반면, 나는 정신과 몸이 모두 망가진 기분이었다. 고작 나흘 사이 입술은 부르트고 몸 곳곳이 아팠다. 열이 오를 듯 말 듯했지만, 스스로를 다잡으며 버텼다. ‘나는 이제 아프면 안 돼.’ 이 말이 머릿속에 맴돌며 나를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지금 내가 무너지면, 그를 돌볼 사람은 없으니까. 하지만 마음만큼은 이미 철저히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창문 너머로 스치는 풍경이 뿌옇게 보였다. 눈물이 흐르는 것을 느끼며 급히 손등으로 닦아냈다. 내가 울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러나 눈물은 멈추지 않았고, 시야는 다시 흐려졌다.
‘우리가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마음속 물음표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들고 끝없이 이어졌다.
어제의 나는 우리가 어떤 어려움도 함께 이겨낼 수 있을 거라 믿었고, 삶은 언제나 우리 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깨달았다.
삶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고, 행복의 중심을 갑자기 비집고 들어와 예고 없이 모든 것을 앗아가기도 한다는 것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걷는 이 길이 반드시 꽃길일 수는 없다는 사실도, 마주 서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