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언젠가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죽음은 분명하지만 그 시기가 모호하다는 것.
어쩌면 그 불확실함이 우리가 오늘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일지도 모른다.
만약 내일이 마지막이라는 걸 안다면
과연 오늘을 최선을 다해 살 수 있을까?
그래서 우리는 마치 끝없이 살 것처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살아간다.
나 또한 그랬다.
매 순간 최선을 다했고 다가올 내일을 위해 애쓰며 살아왔다.
'앞으로 더 잘 살 거야'라는 믿음을 당연하게 품었고,
결혼 후에는 '이제 정말 잘 살 수 있겠구나'라는 확신이 생겼다.
행복이란 건 이렇게 쌓여가는 줄 알았다.
그렇게 자신만만했던 내가
단 한순간에 무너졌다.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던 일이 내 일로 다가왔다.
그 일은 언제나 아주 먼 곳에서나 일어나는 일 같아서
단 한 번도, 정말 단 한 번도 내 일이 될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아는 '죽음'은 오래 살다 떠나는 일이었다.
그래서 슬픔보다는 고요함으로 기억되는 일.
그게 내가 알고 있던 죽음의 전부였다.
그래서 몰랐다.
진짜 상실이 얼마나 낯설고 잔인한지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게 삶의 모양을 얼마나 송두리째 뒤흔드는 일인지
그때의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죽음'을 마주하고 나서야
그 일이 내 일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죽음은 멀리 있지 않다는 걸.
늘 우리 곁에 있었고
언제나 우리의 삶 한가운데에 있다는 걸
그리고 그 죽음이
결국은 우리 자신이기도 한다는 걸
우리는 매일 아주 작은 죽음을 겪으며 살아간다.
하루의 끝마다 어떤 것을 잃고
또 다음날 새로운 것을 맞이한다.
죽음은 삶의 반대가 아니라 삶의 일부이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알게 되었다.
'죽음을 잊지 않고 사는 일'
그게 곧
'더 잘 살아내는 일'이라는 것을.
한 번도 배워본 적 없던 애도와 상실의 태도를
직접 마주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상실을 견디는 법이 아니라
상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그래서 말하고 싶었다.
태도.
나의 태도.
그리고 주변인의 태도
그 모든 것이 전부라는 것을.
누군가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세네카(고대 로마 철학자)
바다가 갑자기 요동치다가 맑아지다가 비 오다가 이러한 모든 것을
팔짱 탁 끼고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관조하는 느낌이 아니라
방파제처럼 끊임없이 파도와 맞서서 자기 임무를 묵묵히 수행하는 것, 지켜내는 것이다.
-이동진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