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돈 좀 빌려 줄 수 있을까요?
살면서 처음 해본 말이었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빌려달라고 부탁하는 일은
늘 '나는 안 하게 될 일'이라고 생각해 왔다.
빌려준 적은 많았지만, 정작 내가 빌리게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올 한 해, 너무 많은 일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면서
마지막처럼 붙잡을 수 있는 말 하나가
바로, 그 문장이었다.
올해는 삼재의 첫해였다.
지난 삼재도 꽤 아프게 지나온 터라,
이번엔 시작부터 마음이 조심스러웠다.
특히 든다고 해서 더 무겁게 느껴졌던 들삼재.
그런데 12월을 앞둔 지금에서야 돌아보니
괜한 걱정이 아니었다.
야심 차게 시작했던 카페는
기대와 현실이 너무나도 달랐고,
그래도 멈추면 안 될 것 같아 붙잡은 음식점 프로젝트는
오픈이 1년 넘게 밀려버렸다.
그 사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붙잡은 일에서도
예상치 못한 일들이 계속 발목을 잡았다.
돈은 여기저기 묶여 있는 상황이고
정작 내 손에 쥐고 있는 건 하나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작하고 싶었다.
아니, 꼭 시작해야만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몇 번이나 혼자서 연습했던 말을
결국 입 밖으로 꺼냈다.
“혹시… 돈 좀 빌려줄 수 있을까요?”
한 번 부탁하고 나니,
그다음부터는 마음이 조금씩 무너졌다.
여기저기 용기 내어 말했지만
돌아온 건 대답 없는 거절,
희망만 줬다가 결국 또 거절,
그리고… 반복되는 거절들.
그 모든 거절이 상처인 것도 맞고
어쩌면 당연한 거절인 것도 맞다.
처음부터 남의 돈을 빌려 시작해 보겠다는 내 욕심이었다.
그럼에도 ‘내 방식대로 하면 될 거야’라고 믿었다.
올해는 그런 식으로 스스로를 설득하며 버텼던 해였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렇게 나도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구나.
남에게 기대기보다
혼자 우뚝 서서 책임지는 모습이
나를 더 떳떳하게 만든다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
나는 왜 그렇게 서둘렀을까.
한 해 동안 큰돈을 잃었지만 그만큼 큰 배움을 얻었다.
욕심이 왜 무서운지
조바심이 얼마나 위험한지,
내가 어디까지 버티고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를
몸으로 배운 시간이었다.
올해의 나는 참 많이 흔들렸지만
그 흔들림 덕분에
조금은 단단해진 것 같다.
(그렇게 믿고 싶다.)
아마 이렇게 어른이 되는 건가 보다.
덧, 나는 뭘 해도 안 되나 보다...
그렇게 나를 단정하고 싶지 않아서
굳이 삼재의 핑계도 되어보고
이렇게라도 기록해 본다.
넘어졌던 날들을 숨기지 않고 적어두면
언젠가 지나간 자리에서 내가 얼마나 멀리 왔는지 보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