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여전히 ‘유선’에 의존하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아 실감하기 어렵지만) 대륙 간 데이터 송수신의 약 95%가 해저케이블을 통해 이뤄진다. 각종 무선 기술과 위성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데이터를 처리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당시, 러시아가 해저 케이블을 공격해 서구 세계의 통신망을 절단할지 모른다고 걱정하는 사람이 많았다. 만일 그런 시도가 정말로 이뤄졌다면 그 여파는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정보가 승패를 가르는 시대, 만에 하나 전쟁이 벌어지면 해저케이블이 공격 대상이 될 것이란 것은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해저 케이블은 데이터 안보의 핵심 인프라이자 미래 해양전의 잠재적 격전지이다.
현재 우위에 있는 건 미국과 그 우방들이다. 미국, 유럽, 일본의 회사들이 운영하는 케이블이 전 세계 통신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80%에 달한다.
하지만 중국이라는 새로운 도전자가 부상하면서 바닷속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2008년, 중국의 화웨이는 해양사업 계열사를 세우고 본격적으로 케이블 사업에 진입한다. 미국, 유럽 회사에 부품을 납품하는 것을 넘어 네트워크 사업자로 거듭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파키스탄, 동아프리카, 일부 유럽국들을 중국산 케이블로 연결하는 PEACE (평화) 프로젝트가 그것. (가장 부족한 것, 가장 어울리지 않는 것을 이름으로 짓는 것은 흔한 일이다)
미국도 대응에 나섰다. 우선 화웨이에 제재를 가했고, 이후 중국기업들이 미국의 인터넷 인프라에 참여하는 것을 막는 포괄적 규제에 들어갔다. 중국 케이블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우방들을 회유하는 대중 고립책이 뒤따른 것은 물론이다. 2022년에는 중국의 진출을 사전 차단하기 위해 중동, 남인도, 동남아를 연결하는 케이블 증설 사업을 발표한다.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 중국을 완전히 따돌렸다고 보긴 어렵다. 해저 케이블을 구축하고 유지 보수하기 위해선 선박이 필수다. 비록 미국이 기술은 우위지만 생산력, 특히 조선산업은 중국이 압도적이다. 정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이때, 무작정 중국을 시장에서 배제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 세상은 수요-공급의 원칙에 따라 돌아가게 되어 있다. (나폴레옹의 대륙봉쇄령이 좋은 예)
미중 경쟁의 승부는 누가 더 많은 자원과 정보에 대한 접근 우위를 확보하는 가에 달렸다. 그리고 그 경쟁은 지상의 국경뿐 아니라 바다, 하늘, 사이버, 그리고 심해까지 전 영역에 치열하게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