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본능적으로 비교하는 걸 좋아한다.
현존하는 기업가 중 가장 영향력 있는 (그리고 가장 논란이 많은) 인물은 단연 일론 머스크이다. 21세기에 활약한 기업가들 가운데 머스크에 비견될만한 인물을 꼽는다면 아마 스티브 잡스가 유일할 것이다.
‘호랑이와 사자가 싸우면 누가 이기냐’는 질문처럼 무의미하고 정해진 답도 없는 질문이지만… 과연 이 둘 가운데 누가 진정한 21세기의 간판스타인지를 따져보자.
(같은 작가가 자서전을 썼다는 것 외에도) 둘은 공통점이 많다.
첫째, 둘 다 조숙한 천재였다. 잡스는 고작 25살에 애플 2를 출시해 PC 업계를 영원히 바꿔 놨다. 머스크는 28살에 자기가 세운 첫 회사인 ZIP2를 팔아 3억 불을 손에 넣었다.
둘째, 이른 성공에도 불구하고 둘은 만족을 몰랐다. 돈은 ‘힘과 위대함’을 향한 끝없는 여정 중 주어진 보너스일 뿐이었다. 보통 큰 성공을 거두면 은퇴를 준비하거나 가진 걸 지키는데 집중하는 게 일반적. 하지만 잡스는 52세로 숨을 거둘 때나 20대 시절이나 변함없이 반항아였고, 머스크는 나이를 먹을수록 더 힘이 넘치고 예측이 어렵다.
셋째, 둘 다 ‘어떤 문이든 열 수 있는 만능열쇠’를 찾은 듯하다. 잡스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넘나들며 전설을 썼다. 심지어는 픽사를 일으켜 자신의 천재성이 테크놀로지에 국한된 것이 아님을 증명해 보였다. 머스크도 마찬가지. 전기차, 로봇, 인공지능, 우주개발, 소셜미디어, 그리고 이젠 정치까지. 그 특유의 경이로운 행동력을 무기로 온갖 분야를 넘나들며 활약 중이다.
넷째, 평범한 사람들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엄청난 Ego의 소유자들이다. 두 사람이 ‘악당’으로 출연하는 에피소드는 너무 많아서 하나하나 소개하기도 어려울 정도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주변의 모두에게 자신과 같은 수준의 헌신을 요구했다.
다섯째, 셀프 브랜딩의 천재였다. 그들이 만든 최고의 제품은 아이폰이나 스타쉽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들을 성공한 기업가를 넘어 영웅으로 본다. 명백한 성격적 결함 및 실수들도 카리스마적 면모로 미화된다. 유명해지면 x을 싸도 세상이 박수를 쳐줄 것이란 누군가의 말이 떠오를 정도.
그리고 또 하나, 세상의 인식과 달리 둘 다 좋은 사람들을 모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재주가 탁월했다. 독불장군 같은 이미지와 달리 둘 다 ‘세상은 혼자서 바꿀 수 없다’는 걸 잘 알았고, 유능하고 의욕이 넘치는 팀을 만드는 데 혼신을 다했다.
물론 다른 점도 많다.
완벽한 제품이 나오기 전까진 모든 걸 철저히 비밀로 했던 잡스와 직원들도 사장의 SNS 계정을 통해 다음 계획을 알게 되는 머스크는 완전히 상반된 스타일의 소유자다.
잡스는 모든 것을 집요하게 계획하고 준비했다. 단어 하나, 손짓 한 번도 철저히 계산된 것이었다. 그는 스스로를 실리콘벨리의 현자처럼 연출하려고 했고, 사생활은 대체로 비밀에 감춰졌다. 반면 머스크는 계획된 연출과 실수의 경계가 어디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만큼 변칙적이다. 이러한 예측 불가능함 덕분에 광적인 팬덤과 독특한 카리스마를 가지게 됐지만 지나치게 많은 적을 만드는 부작용도 생겼다.
그렇다면 결론, 누가 더 뛰어난 CEO일까? 후대의 역사 교과서에 더 많은 분량을 차지하게 될 사람은 누구일까?
애초에 맞고 틀린 답이 없는 질문이지만, 개인적인 Pick은 잡스다.
잡스는 세상이 뭘 원하는지, 뭘 좋아할지를 읽어내는 데 천재였다. 지금은 믿기 어렵지만 맥부터 아이튠즈, 아이팟, 아이폰 그리고 아이패드에 이르기까지 애플의 성공작들은 모두 성능 과잉, 시기상조와 같은 시니컬한 반응 속에 세상에 나왔다. 하지만 잡스는 새로운 니즈를 창출하고, 없었던 고객 베이스를 만들었으며, 더 나아가 이들을 팬덤으로 만들어냈다. 그가 무에서 유를 창조한 적이 없다는 비판은 매우 단편적인 주장이다. 애플의 제품들이 ‘최초’가 아니었던 건 맞지만 그는 이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을 해냈다. 잡스는 새로운 시장, 새로운 산업을 만들었다.
아직 머스크에게는 이런 업적이 없다. 저렴한 우주개발과 친환경 자동차를 원하는 수요는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그 누구도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할 때 머스크 특유의 무서운 추진력과 기발한 아이디어가 판도를 180도 바꿔 놓은 건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예 없었던 수요를 만들어냈다는 것, 그것도 심지어 프리미엄 가격으로 해냈다는 것에서 잡스에게 좀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물론, 2024년 현재를 기점으로 하는 이야기다. 1971년생인 머스크는 앞으로 더 많은 일을 할 돈, 시간, 에너지가 충분하다. (이젠 여기에 정치적 영향력까지 더해졌다) 진정한 휴머노이드 로봇과 무인차량 시대의 개막, 화성 개척, 본격적인 민간 중심 우주산업의 등장… 이 중 하나만 성공하면 머스크는 잡스를 능가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에디슨이나 포드도 능가하는, 아예 몇 차원 다른 레벨의 존재가 될 수 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