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도르노의 예술을 중심으로
예술을 전체적인 맥락에서 살펴보았을 때에는 쾌와 불쾌가 공존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술이 개인이나 사회에 변화를 이끌기 위해서는 '쾌' 보다는 '불쾌'가 더욱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편하고 즐거운 상황이 주어졌을 때 이에 만족하고 안주하며 변화를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불편하고 꺼려하는 것들을 마주했을 때 상황을 개선하고자 할 것입니다. 그러나 작품에서 단순히 불쾌만을 강조하였을 때 관람자들이 문제 상황을 회피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변화 의지를 이끌 장치가 필요할 것입니다. 가령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살펴보면 시체 더미와 불타는 집이라는 불쾌한 상황 묘사에 더불어 아이를 끌어안으며 우는 어머니를 그림으로써 '모성애'라는 장치를 이용해 관람객들에게 변화에 대한 의지를 끌어냈습니다. 어떤 장치를 사용할지는 작가의 재량이며 관람객 개개인마다 받아들이는데 차이가 있을 것이므로 이 부분에 대해서 더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