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엄마의 엄마 노릇에 대해

비난의 대상이 되는 워킹맘

by Peace

남편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 밥을 짓기. 남편과 같은 시간에 출근하기. 아이의 학원 선생님과 연락하기. 아이가 배가 아프다며 해오는 전화를 받기. 남편과 같은 시간에 퇴근하기. 저녁을 준비하고 조금 늦게 휴식을 취하기.


우리 엄마는 늘 일을 했다. 그리고 나는 맞벌이 가정의 외동딸이었다. 그런 내가 반드시 외로웠어야만 한다는 법은 없지만, 돌아보니 유년시절의 나를 감싼 그것은 외로움이 분명했다. 어린 내 목에는 금목걸이(이것은 부모님이 나를 집에 두고 일하기는 하지만, 영 없는 집은 아니라는 표식이었다고 자조한다.)와 함께 현관문 열쇠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그러나 나는 하교 후 나를 반기는 적막에 지지 않고 나만의 방법을 찾았다. 바로 일과 중 틈틈이 부모님에게 전화를 거는 것. 어린 나의 취미는 집 거실 '전화 자리'에 앉아 엄마와 아빠, 둘 중 하나에게 전화를 거는 일이었다.

그들은 한 번의 불평 없이 전화를 받아 내 얘기를 들었다. 오늘 먹은 밥 이야기, 오늘 본 만화 이야기.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들은 내게 언제든 찾을 수 있는 친구였다.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일터에서 내 전화를 받은 엄마가 속삭였다. '우리 딸이 자꾸 엄마한테 전화를 하니까, 부장님이 일을 그만두고 집에서 딸이랑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게 어떻냐고 하더라고.' 일과 육아 중 하나도 포기할 수 없던 기혼 유자녀 여성에 대한, 아마도 기혼 유자녀였을 남성 관리자의 냉혹한 협박이자 폭언이었다. 거짓이었으면 좋겠는 실화다.


[여성 직장 동료가 일터에서 아이의 전화를 받는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위와 같은 제목의 사연을 게재하면, 사연 속 동료는 높은 확률로 악플에 시달릴 터다. 어째서일까? 그 글을 읽는 사람들이 그 동료 때문에 피해를 입어서? 매일 아이의 전화를 받는 여성은 업무적으로 소홀할 것이 분명해서? 아이를 낳는 것이 페미니즘에 반하는 행위라서?

아니, 제 몫을 챙기기 어려워 익숙한 약자를 공격하도록 몰아세운 사회 때문이다. 일과 가정 돌보기를 병행하기란 불가능한 업무량 때문이다. 가정을 돌보는 것이 여성만의 임무라는 성 역할에 대한 그릇된 믿음 때문이다. 정규직 대신 육아휴직 대체자 티오만 무책임하게 내놓음으로 굴절혐오를 생산하는 회사 때문이다.


출생률이 저점을 찍고 아이 한 명이 노인 네 명을 부양해야 하는 절망적인 인구절벽의 시대. 국가는 아이 낳기 좋은 환경 조성을 위해 정책을 고안하고, 국민이 일과 가정을 균형 있게 돌볼 수 있도록 돕는 제도적 혜택이 순차적으로 마련된다. 그런데 이런 흐름에, 일부 직장인은 어쩐지 제 몫을 뺏기는 기분이 든다. 지난달부터 2시간 일찍 퇴근한 그녀가 나와 같은 해에 승진하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한 사건이니까. 고로 다시 총구를 겨눈다. 지난 몇십 년 간 역시나 기혼 유자녀로서 실질적 혜택을 누리며, 임출육으로 발생하는 문제의 사각지대에 있어온 남성에게? 아니, 일하는 여성에게. 여성이 일터로 나온 지는 불과 몇십 년이 안되었으나 일과 가정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한다는 난센스 챌린지는 꾸준히 여성에게만 주어진다.


내가 성인이 되고 난 뒤에야 엄마는 늦게 출근하고 일찍 퇴근할 수 있었다. 씁쓸하지만 엄마가 누릴 수 있는 피고용인으로서의 권익이 확대된 것은 아니고, 부모님이 회사에서 퇴사한 후 자영업을 시작하면서 가능해진 유연한 일정이다.

그녀는 남게 된 시간에 비로소 자취하는 나를 위한 음식을 포장했다. 박스에 반찬통을 차곡차곡, 냉동식품과 밑반찬을 하나하나. 묵은 마음을 풀어낸 듯 어른 글씨로 내 이름이 적힌 박스를 열어보면 장어, 전복, 연어, 새우와 김치를 포함한 각종 밑반찬이 한가득이었다. 내 마음속 아이는 조금 늦은 원격 돌봄으로도 큰 위로를 받았다. 일하고 싶은 구직 여성이었던 나는 일하는 여성인 엄마를 이해할 수 있었다.


2018년 11월의 일기 中

내가 보내준 음식을 잘 먹고 있다 하자 엄마는 '비로소 엄마 노릇을 하는 것 같아 기쁘다'라고 말했었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저 맛있다고, 고맙다고만 말했다.


엄마가 분신술을 쓰며 서툴게 나를 돌보던 시절, 아빠는 그 역할을 엄마에게 일임한 채 나에게 용돈을 쥐어주는 재밌는 친구 역할만 해도 됐던 사람이다. 그런 복잡한 심경이 뒤엉킨 채 오늘도 아빠에게 '오늘도 파이팅'이라는 메시지를 보냈더니, 아빠는 '우리 딸도 파이팅'이라고 답하신다. 아빠는 이 모든 논의에서 벗어난 행복한 가장이었으나, 아빠의 사랑에도 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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