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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만 덜 아팠으면

김태규 詩 3首 낭송

by 소오생


김태규 시인은 소오생의 중·고등학교 동창입니다. 무려 6년을 같은 학교에서 지냈으니 친할 법도 한데, 동창회 모임에도 잘 나오지 않던 친구라서 솔직히 얼굴조차 희미하네요. ^^;;


그의 전공은 통계학. 대전 근처 H 대학 비즈니스통계학과에서 재직하다가 은퇴했답니다. 그 친구가 문득 동기 단톡방에 매일 시를 한 편씩 올리기 시작한 건, 아마도 지난봄 동백꽃이 떨어질 무렵이었을 거예요.


처음엔 심심풀이로 여겼습니다. 그런데요, 하루 이틀... 마침내 100여 일이 지나자 소오생은 문득 브런치 글벗님들과 그의 시 세계를 함께 나누고 싶어 졌지 뭡니까.


마침 《현대작가》 신인문학상을 수상하여 일흔의 나이로 정식 문단에 데뷔했다는 소식까지 들려왔네요. 환갑 나이에 진사 급제했다는 명나라 문인 귀유광歸有光보다도 더 늦은 나이에 등용문에 올랐다니, 이게 웬일이랍니까!


그런데, 솔직히, 소개하는 게 조금은 망설여졌답니다. 동기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을 수 없는데, 그러다 보면 국가 기밀인 소오생의 나이까지 들키게 되잖아요. ^^;; 입 다물고 있으면 어딜 가나 50대로 보는데 스스로 밝히다니, 어쩐지 쫌 억울한(?) 느낌이라서요. ㅋㅋㅋ


하지만 결국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네요. 일흔 노인네가 신인으로 인정받다니, 와우! 이건 나이를 들킬지언정 충분히 널리 알리고 뜨겁게 축하해 줄 일이잖아요. 그쵸? ^^ 탁하고 갈라진 목소리지만, 용기를 내어 김태규 시인의 시 세 수를 골라서 낭송해 봅니다.


두 분의 동창이 협찬으로 함께해 주었어요.

◆ 음악 : 지창율 사장이 다이아토닉 하모니카로 백뮤직을 깔아주었답니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장소 불문하고 즉흥 연주를 시작하면 어느새 아주머니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들어 “꺄악~” 소리를 질러주곤 했는데... ㅋ~ 요즘은 요양원을 찾아 위문 공연을 다니고 있다네요. ^^

◆ 그림 : 원주에서 활동하는 김우한 화백이... 봄산의 생명력, 달빛 속에 핀 꽃, 붉게 흩날린 동백, 들판의 고요함 등을 화폭에 담아 보내주었죠. 김태규 시인의 글과 나란히 놓이니, 늙어가는 벗들의 우애를 다지는 작은 시화전이 된 듯하여 흐뭇해집니다.


특별히 김광석의 노래로 이 작은 동문 시화전의 막을 올리고자 합니다. 광석이는 한 세대 뒤를 이어 같은 교정에서 공부했던 우리 후배랍니다. 비록 노래로 짧은 생을 불사르고 떠났지만 세월을 건너 언제나 모든 이의 가슴에 남아 있는 자랑스러운 후배죠. 선택한 곡은 <바람이 불어오는 곳>.


클릭 ☞ 아이유, <바람이 불어오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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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한, <통영 강구안>


통영은 우리 동기들이 자주 가는 곳이에요. 가고 또 가도, 언제나 학창 시절 수학여행을 떠나는 젊은이의 푸른 마음이 되더군요. 늦깎이 문학의 길을 떠나는 김태규 시인의 마음도 그렇게 설렐 것 같습니다.


그를 응원하는 우리 26회 동기 모든 벗들도 바람이 불어오는 그곳을 향해 함께 새로운 길을 떠나고자 합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잖아요. 그쵸? 브런치 글벗 여러분들도 응원해 주실 거죠? 감사합니다~~ ^--^


서론이 길었네요. ^^;;

자 그럼, 신인 김태규 시인의 작품 세계를 즐감해 보시죠.






아프지 말어



밭고랑 사이서

허리 한 번 펴다

숨이

땅속으로

주저앉았다


“나는 괜찮어,

당신만

덜 아팠으면…”


그 말

먼저

마른 흙이

받아 적었다


무릎은

제 무게도

미안해하고

허리는

세월처럼

마디게

접힌다


밤이면

지친 손부터

살며시

덮는다

세상에서

가장 느린 약이

손끝에서

녹는다


사랑은

내 통증보다

네 아픔이

더 먼저

아려오는

느린 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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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교육시킬 겸 연습으로 그려 보았다. 영 마음에 안 든다. 어떻게 하면 좀 더 말을 잘 듣게 할까...



[작가의 말]


밭고랑 사이서 허리를 펴다 멈춘 노부부의 대화를 들었습니다.

“나는 괜찮어, 당신만 안 아프면 돼.”

그 말 한마디가 제 마음 깊은 우물에 떨어져

오랫동안,

꽃잎 하나 건지듯 두레박질을 하게 했습니다.


몸보다 마음이 먼저 접히는 나이,

약발은 다 떨어져도

손끝엔

아직 따뜻함이 녹는 사랑.


꽃잎 같은 사랑을

그대의 문 앞에

조용히

놓고 갑니다.





백뮤직 : 지창율(드라마 <외출> OST, <바람>) 낭송: 소오생


연주(다이아토닉 하모니카) : 지창율(드라마 <외출> OST, 김영태 <바람>)


그 말 먼저 마른 흙이 받아 적었다. (하): 김우한 화백, <Mt. 치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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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르게 사랑하기



당신은

아침엔 은은한 커피를,

나는

슴슴한 국물부터 찾는다


당신은

창문을 활짝 열고 싶어 하고

나는

햇살에

천천히

익어가고 싶다


주말이면

나는 걷자 하고

당신은

말없이

소파에

기댄다


다른 리듬,

다른 온도로

같은 하루를

조용히

겹쳐 쓴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을

그냥

눈감고 지나치는 일,

당신의 느린 걸음에

내 마음이

발끝을

낮추는 일


사랑은

닮아가는 게 아니라

닮지 않은 채

서로를

덜 불편하게

품는 일이다


그래서 오늘 아침,

당신이 좋아하는

꽃무늬 대접에

콩나물국을

소담스레

담는다


간이 아니라

내 마음이

당신 입에

맞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당신이 모르게

나도

조금씩

당신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것


사랑은,

내가 아닌 너에게

내 하루를

맞추는 일이다





백뮤직 : 지창율(김현식, <한국사람>) 낭송: 소오생


연주(다이아토닉 하모니카) : 지창율(김현식, <한국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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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모르게 나도 조금씩 당신 쪽으로 기울고 있다... (상) 김우한, <옥수수밭> & <달맞이꽃>.






산사의 봄날



처마 끝 풍경이 흔들린다.

세상의 약도 멈추지 못한 통곡,

더 깊은 산사 쪽으로 성큼 옮기는

피멍 든 동백은

새 울음에 젖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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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 지다>, 김우한



붉은 화엄매 북소리에 잠 깨고

억겁 인연에 매달린 꽃잎들,

날개 단 기억 따라 흐르는 길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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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산春山>, 김우한



하루라도 젊은 오늘,

옷고름 풀어라, 치맛자락 날려라

봄볕이 웃고

흥겨운 춤사위 장단에

봄바람이 춤춘다,

산사 어느 어귀에 고단한 날 놓아볼까.



낭송: 소오생 대금 연주: 박수빈, <청성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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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회 동기

# 작은 시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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