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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하늘과 땅이 만나더라도

한漢나라 악부시 <하늘이시여 上邪!> 감상

by 소오생

'불구하고' : 사랑의 영속성



<하늘이시여(上邪)>는 2,000여 년 전 중국 한漢나라 때의 악부시樂府詩다. 님을 향한 지극한 마음을 담은 여인의 사랑 노래다. 35글자의 짧은 노래이지만 이천 년 세월을 넘어 뭇사람들의 심금을 울린다.


▶ 악부시는 대부분 그 당시 <악부>라는 국가의 관청이 수집한 백성들의 유행가다. 그래서 문인들이 지은 시와는 달리, '구어체'로 서민들의 정서를 묘사한 리얼리티가 가장 큰 특색이다. 형식적으로는 정해진 틀이 따로 없는 '자유시'다. 자세한 것은 <20. 시집살이 고부 갈등, 누구의 잘못인가> 참고.

▶ 여기서 '邪'는 '간사할 사'가 아니라 '어기조사 야'로 사용된 것이므로, <上邪>는 <상사>가 아니라 <상야>로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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킴 카잘리(1941~1997)의 『Love is...』라는 신문 만평이 있었다. 1970년부터 미국에서 시작, 전 세계 주요 일간지에 매일 연재되었던 사랑의 메시지였다. (우리나라는 1984년부터 조선일보 연재)


귀여운 그림, 그리고 단 한 줄로 표현된 사랑에 관한 성찰. 때로는 유머러스하고 때로는 에로틱한 그 사랑에 대한 개념 정의에 독자들은 까르르 웃고 빙그레 미소 짓다가 가슴 먹먹한 감동에 눈물지었다. (작가는 1976년 남편 사망 16개월 후에 냉동보관한 정자로 인공수정, 유복자를 낳아서 많은 논란을 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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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이원론 분리의 패러다임은 무엇이든지 나누고 분석하고 개념 정의를 시도한다.

사랑도 마찬가지. 아가페, 에로스, 필리아, 스토리지... 나누고 분석하고 범위를 정하고 개념을 정의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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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는 아니다. 일원론 결합의 패러다임에서는 그 어떤 대상의 개념을 정의하려고 하지 않는다. 나누고 분석하고 따지려 하지도 않는다. 사랑도 마찬가지. 모든 사랑을 하나의 본질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늘 모호하고 상징적이고 함축적이다.


결합의 패러다임에서는 그 대신 그 특성을 이야기하려 한다.

사랑의 가장 큰 특성은 무엇일까?


영속성이다.

사랑은 "~ 때문에"가 아니라

"~임에도 불구하고" 영속성을 추구하는 것.





<하늘이시여(上邪)>는 그 어떤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사랑을 포기하지 않겠노라는 영속성을 노래한 작품이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동서고금 모든 이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이리라.


2005년 우리나라에서도 이 시의 첫 구절을 제목으로 삼은 드라마가 있었다. 상투적인 불륜 & 출생의 비밀을 소재로 다루었던 이 SBS '막장 드라마' 《하늘이시여》는, 숱한 비난 속에서도 85부작으로 10개월 동안이나 방영하는 가운데 최종적으로 무려 44.9%의 시청률을 기록하였다.


그 '성공' 요인은 무엇일까?

연기자들의 열연. 그리고 작가 임성한의 교묘한 언어의 테크닉 덕분도 있었을 것이고,

"하늘이시여, 부디 이 드라마를 용서 하옵소서/하지 마옵소서!" 욕하면서 보는 심리도 있었을 것이다.


그 시청자 심리의 일단에는 무엇이 자리 잡고 있을까? 혹시 사랑의 영속성을 갈망하며 자기도 모르게 자신이 현실에서 포기했던 그 모든 "불구하고"의 사랑을 응원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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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시여(上邪)> 번역과 원문



하늘이시여!

님을 알고 싶소

이 목숨 다하도록 영원히 끊임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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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평지 되고, 강물이 말라붙고

겨울에 꽈르릉 천둥이 치고, 여름에 눈보라 치고

하늘과 땅이 만나는 한이 있더라도


어찌 님과 헤어질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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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邪!

我欲與君相知,長命無絕衰。

山無陵,江水爲竭,冬雷震震,夏雨雪,天地合,

乃敢與君絕!





사진으로 만나보는 사랑의 영속성



그토록 중요한 생물학적 현상인 첫사랑을
어떻게 화학이나 물리학으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Albert Ein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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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인드리히 슈트라이트(체코) 러시아 남시베리아 키칭가. 1997.






하자! 사랑에 빠지자!
- 콜 포터 Cole Por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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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군둘라 슐체-엘도비(독). 독일 베를린 판코프의 공원. 자동촬영 설정 후 자신의 모습을 찍은 것. 1987.






혼자 있는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다.
함께 하는 두 사람이 세상을 만든다.
- 한스 마르골리우스 Hans Margolius


가족: 아이들뿐만 아니라 남자, 여자,
때로는 동물, 그리고 감기 따위로 구성된 단위
- 오그덴 내시 Ogden N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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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미노 슈트라우치(슬로바키아). 노숙자 부부. 예배 후 나눠주는 자선물품을 기다리는 중이다. 1997.

(우) 마일로 스튜어트 주니어(미). 초보 엄마 리즐리. 뉴욕 쿠퍼즈타운. 1998.







당신을 사랑하리.
내 사랑, 당신을 사랑하리.
중국과 아프리카가 만나고
강물이 산으로 오르며
연어가 거리에서 노래할 때까지
- W. H. Au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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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이 나가사키(미). 파도 속에서 두 손 맞잡기. 뉴저지 샌드훅 해변. M.I.L.K. 사진전 Love 부문 최우수작.

(우) 조지 파이어스(미). 노부부의 작별. 리투아니아 작은 마을에서. 1978.




※ 사진 출처 : 사진집 《Love》, 이레출판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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