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30. 깨달음의 아라한 열매를 거두리라

소동파, 산문 소품 감상

by 소오생

동아시아 역대 최고의 천재 문인 소동파蘇東坡(1037~1101)는 만년에 큰 고초를 치릅니다. 나이 쉰여덟에 정적들의 모함으로 아주아주 머나먼 남쪽 땅끝의 섬, 해남도海南島로 유배를 갑니다.


해남에 유배된 동파의 생활은 비참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당시 대부분 ‘야만인’들인 여족黎族들이 살았던 해남도는 습하고 무더운 열대 기후에, 먹을 것은커녕 정갈한 물도 구하기 힘든 오지 중의 오지였죠. 이따금 사형을 면한 중죄인들이나 유배를 갈 뿐 중원에서 관리를 지냈던 이를 여기로 유배 보낸 것은 동파가 처음이었다고 합니다. 더구나 현지 관리들이 조금이라도 호의를 베풀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중앙 정부에서 반드시 가혹한 보복을 했으므로, 그 어떤 도움을 얻을 수도 없었던 동파는 늘 기아 선상에서 허덕여야만 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동파는 어떠한 마음가짐이었을까요? 그의 몇몇 기록을 함께 살펴보시죠.

---------------

나도 이제 바다로 쫓겨났으니 사지死地에 조금 더 가까워진 셈이다. 마땅히 이 땅에서 깨달음의 아라한阿羅漢 열매를 거두어야 하리라.

<壽禪師放生> : 吾竄逐海上,去死地稍近,當於此證阿羅漢果。

---------------


해남도에서 유배생활을 시작할 때의 각오입니다. 본능적으로 죽음의 시간이 다가왔음을 느낀 그는 '깨달음의 아라한 열매'를 거두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가슴이 뭉클합니다. 다시 <믿음의 도와 지혜의 법(信道智法說)>이란 글을 읽어보실까요?



---------------

동파거사는 해남도海南島에 옮겨 살게 되었다. 우환이 겹친 나머지, 무인년戊寅年 9월 마지막 날, 여생의 길흉화복을 판단해 보고자 천경관天慶觀 북극진성北極眞聖을 찾아가 영험한 점괘를 얻고자 하였다. 점괘는 이러했다.

東坡居士遷於海南, 憂患之餘, 戊寅九月晦, 遊天慶觀, 謁北極真聖, 探靈簽, 以決餘生之禍福吉凶。 其辭曰:


믿음으로 도道에 부합하도록 하고,

지혜로 법法의 첫 번째로 삼는구나!

이 두 가지와 분리되지 않으면,

목숨은 연장될 수 없도다!

「道以信為合, 法以智為先。 二者不離析, 壽命不得延。」


읽어보니 모골이 송연해졌다. 무엇인가를 깨달은 것 같았다. ‘신도信道’와 ‘지법智法’의 두 가치관과 헤어질 수 없다는 뜻을 잊지 않기 위해, 글을 써서 깊숙이 보관하려 한다. 소식蘇軾은 공경한 마음으로 아래와 같이 써보았다.

覽之竦然, 若有所得, 書而藏之, 以無忘信道、 法智二者不相離之意。 軾恭書:


옛날의 진인眞人 중에 남에게 믿음을 주지 못한 자가 없으니, 자사子思가 “정성精誠으로 덕德을 밝히는 것이 참된 본성”이라고 말한 것이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다. 맹자는 말했다. “중도中道를 취하여 저울질을 하지 않으니 하나만을 붙잡는다.” 법이 지혜롭지 못하다면 천하의 법은 모두 '죽은 법死法'에 불과하다.

古之真人未有不以信人者, 子思則曰: 「自誠明謂之性」, 此之謂也。 孟子曰: 「執中無權, 由執一也。」 法而不智, 則天下之死法也。


도道는 남들이 몰라주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나 자신의 정신을 하나로 모으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법法은 그 법을 만들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생명력이 없어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믿음으로써 도에 부합하도록 하면 정신이 하나로 모이고, 지혜를 법의 최우선으로 삼으면 법에 생명력이 생긴다. 이리되면 속세를 떠나도 되리라! 하물며 목숨 연장에 연연해 무엇하랴!

道不患不知, 患不凝: 法不患不立, 患不活。 以信合道, 則道凝; 以智先法, 則法活。 道凝而法活, 雖度世可也, 況延壽乎?

---------------


참으로 감동적인 글입니다. 동파의 말년은 참 비참했죠. 공직은 모두 박탈되고 사랑하던 이들과 헤어져 머나먼 오지, 해남 땅에서 고난의 유배생활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여생이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했던 동파는 마음을 정성스럽게 하고 조심스레 점괘를 뽑아봅니다. 점괘를 뽑아본 동파는 모골이 송연해집니다. 도道와 법法을 분리시키지 않으면 목숨이 연장될 수 없다니! 이렇게 불길한 점괘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만약 우리가 동파처럼 어려운 곤경에 처해 이런 점괘를 뽑게 된다면 어떻게 행동할까요? 대부분 절망에 빠져 우울증에 걸리거나, 성직자 또는 무속인을 찾아가 뭔가 이름 모를 신비한 힘에 의존하려 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동파는 잠시 몸을 떨고는 자신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깊은 사색에 잠깁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원칙이 무엇인지 재확인한 후, 그 원칙을 지극한 정성으로 지켜나갈 것을 다짐합니다. 그러면서 동파는 말합니다. 남들이 몰라주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나 자신의 정신을 하나로 모으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하자고.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목숨 연장에 집착하지 않으리라고. 또 한 번 가슴이 뭉클해지는 장면입니다.


동아시아 지성인에게 있어서... 점이란 단순히 미래의 길흉화복을 알기 위해서 치는 것이 아닙니다. 불길한 점괘가 나오면 그를 면해보기 위해 굿판 따위를 벌이는 것은 미신에 불과하겠죠. 그들은 자신을 겸허하게 돌이켜보며 스스로의 문제점을 찾아내고, 새롭게 마음을 다지고 고쳐나가기 위해 점을 쳤던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다시 짧은 기록 한 편을 더 보시겠습니다.


---------------

원부元符 3년은 세차歲次가 경진년庚辰年이다. 그해 정월 초하루는 무진일戊辰日이요, 그날 진시辰時는 병진시丙辰時이다. (중략)


그러므로 이 시각부터는 꼭 황중黃中의 기운을 키워야 하리라. 이 시간이 지나면 앞으로 또 늘 풀죽을 쒀먹어야 하므로. 하루 종일 좌선한 채 묵언을 하고 황중을 키우는 수양을 하였다. 바다 바깥으로 귀양 나와 지내지 않았다면 어찌 이 같은 경사를 맛볼 수 있었으랴!

<記養黃中>: 元符三年, 歲次庚辰; 正月朔, 戊辰; 是日辰時, 則丙辰也。(中略) 吾當以斯時肇養黃中之氣,過此又欲以時取薤薑蜜作粥以啖。吾終日默坐,以守黃中,非謫居海外,安得此慶耶?

---------------


해남도로 귀양 온 지 4년째로 접어드는 해의 설날 아침. 명상호흡을 하며 자신이 처한 '시간'의 의미를 곰곰 생각해보고 있는 글입니다. 그의 결론은 황중黃中, 즉 내적 수양을 더욱 쌓아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다가올 새해에는 더욱 모진 굶주림의 삶이 기다리고 있음이 예측되었기 때문이었죠. 자신의 운명이 기막히게 슬퍼져야 할 그 순간에, 동파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살펴봐주시겠어요?


바다 바깥으로 귀양 나와 지내지 않았다면 어찌 이 같은 경사를 맛볼 수 있었으랴!


'경사慶事'라뇨! '기쁜 일'이라뇨! 어떻게 이런 순간에 이런 단어를 떠올릴 수 있을까요... 그의 정신세계에 감탄이 저절로 나옵니다. 죽음의 순간을 목전에 두고... 동파는 자신에게 주어진 바로 이 시간이 내면 수양 연마의 절호의 기회로 생각하고 이 시간의 삶을 오히려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성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죽음의 순간을 준비해야 하는가, 동파로부터 꼭 배워야 하겠습니다.





여러 날 고민 끝에 여러 글벗 님들에게 알려드립니다.


보름쯤 전, 아주대병원에서 '특발성 폐섬유증'이라는 희귀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서울아산병원에서도 확인받았고요. '특발성'이란 '원인을 모른다'는 뜻. 원인 모를 이유로 폐가 굳어져간다는 병으로, 현대 의학으로는 고칠 방법이 없다네요.


예후로는... 환자마다 상황이 다 다르답니다. 진행이 빠를 경우는 1년 이내, 완만할 경우에는 3~5년 정도. 이따금 10년을 넘길 수도 있다고 합니다. 현재로서는 항섬유제를 복용하면서 진행 시간을 조금씩 연장하는 방법밖에 없다는군요.


'파이브로'라는 항섬유제 약을 복용하고 있습니다. 이 약은 여러 부작용이 심해서 차라리 끊는 사람들도 많다네요.


저도 몸의 기력이 많이 떨어져서 힘들어하다가... 얼마 전부터 친구인 명동한의원 신정식 원장에게 침을 맞고 약을 먹어서 상태가 정말 많이 호전되었습니다. 어제오늘은 컨디션을 많이 회복하고 건강 관리에 유념하고 있습니다. 요새 같아선 10년은 문제없을 것 같네요. ^^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마음이 조화를 부린다는 그 말을 참 사랑합니다.


- 이 기회에 아라한의 깨달음 열매를 얻자.

- 다른 걸 두려워하지 말자. 정신을 하나로 모으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하자.

- 내적 수양을 닦는 황중黃中의 기회가 주어진 것은 '경사'다. 감사하자.


동파로부터 배운 그 삶의 지혜를 가슴에 새겨봅니다. '목숨'에 집착하여 연연하지 않겠습니다. 그냥 담담한 마음으로 정신을 집중하여 마음 수련과 몸 관리에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더구나 이런 체험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정말로 감사하고 또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


티베트 땅은 산소가 희박합니다. 평지의 1/2에 불과하죠.

그래도 티베트 사람들은 천천히, 간절하게, 꾸준히 행동하며 문제없이 잘 살고 있잖아요?

그곳에서 조금이나마 삶의 체험이 있어서 그런지, 별로 두렵지는 않습니다. 두려운 게 있다면 좀 더 글에 전념하지 못한다는 것뿐.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을 하지 않겠네. ^^ 그런 말도 있다죠?

일체유심조! 모든 것은 마음이 좌우한다는 그 말은 결코 허언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응원해 주시는 것은 감사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걱정하지는 말아 주셨으면요. ^^;;


자주 글로 만나 뵙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댓글을 달아드리지 못하더라도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는 말아 주세요. ^^


<차마고도 사이버여행>은 조금씩 천천히 끝까지 올리겠습니다. 다 끝나면 또 다른 연재도 시작할 거구요. 감사합니다. 화이팅! ^^*


2017년 11월 5일. 국립대만대학 학술발표회 석상에서. 소오생 올림



◎ 대문 사진

동파 최후의 유배지 대주당戴酒堂(해남 담주儋州 담이儋耳)에 걸린 현판, <기러기와 눈의 인연(鴻雪因緣)>.





# 소동파

# 깨달음의 아라한 열매

# 나 자신의 정신을 하나로 모아라

# 황중黃中의 기회가 주어진 것은 경사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