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여행 오리엔테이션 (3)
※ 매거진 《차마고도 사이버여행》은 글의 가독성과 흥미를 위해 픽션 요소를 가미하고 있습니다. 매거진 《중국 여성의 성과 사랑》에서도 등장했던 가상의 인물, 소혜인이라는 여성 화자가 평소 티베트 땅을 간절히 그리워하다가 마침내 티베트 답사에 참가하여 활약한다는 가정 하에서 서술하겠습니다. 글벗 여러분의 많은 질책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
벌써 몇 번이나 들었는지 모르겠다.
백 번? 백 번까지는 아니고... 이 소리를 오십 번은 확실히 들은 것 같다.
둥첸의 소리 ☞ <Monks play the dungchen – sounds haunting yet musical>
둥첸(Dungchen)?
처음 듣는다. 악기 이름이란다. 생긴 건 알프스의 알프호른(Alphorn / Alpenhorn)과 아주 비슷. 검색해 보니까 알프호른은 나무로, 둥첸은 금속으로 만들었다네? 알프호른은 멀리 신호를 전달하거나 가축을 부를 때 사용하는 부드러운 소리를 내는 데 비해, 티베트불교 의식에서 사용한다는 둥첸은 깊고 웅장한 소리를 낸다는 차이가 있었다.
우리 소오생 가이더님은 참 괴짜다.
아무 설명도 없이 위의 둥첸 사진과 아래의 요~쌍한 그림을 휙 던져주셨다.
미션 ① : 이 그림은 제가 AI로 그린 거예요. 이걸 보면서 둥첸 소리를 스무 번 이상 듣고 오시길.
미션 ② : 이 그림을 보면서 케데헌 노래 중 <최초의 헌터> & <골든>도 스무 번 이상 듣고 오세요. 끝.
신령스러운 빛과 기운에 휩싸인 하늘과 바다... 그 망망대해에 무수한 산들이 떠있고 그 봉우리마다 부처님이 앉아 있다. 이게 무슨 그림일까? 왜 이 그림을 보면서 둥첸 소리를 듣고 오라는 거지? 알 수 없다.
두 번째 미션은 더 황당하다. 아니, 차마고도 사전 교육을 한다면서 난데없이 웬 케데헌? 도통 이 냥반을 이해할 수가 없다.
하지만 모든 게 즐겁고 모든 게 감사하다.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러시는 거 아니겠어? 어머, 이러다가 나도 혜린 쌤처럼 가이더 님을 교수님이 아니라 교주님으로 믿는 거 아냐? ㅋㅋㅋ 아멘!
까, 똑!
혜린 쌤 문자다. 조조 얘기하면 조조가 온다더니... ㅋㅋㅋ
혜린: 혜인 언니~ 언닌 몇 번 들으셨어여? 전 서른 번 들었어여~
근데 언니~ <최초의 헌터> 이 노래...
다른 노래만큼 주목받지는 못했지만, 전 들을수록 소름이 끼치는 거 같아여~
혜인: 오머머, 나도 그런데. 근데 이 그림 하고는 무슨 상관이 있는 걸까여?
혜린: 호호~ 언니는 별 걱정 다하셔요~
오생 쌤이 그냥 스무 번 이상 듣기만 하랬지,
그림이랑 노래랑 무슨 관계가 있는지 알아오라고 하지는 않았자나여~ ㅋㅋㅋ
으음... 그건 그렇네.
혜린 쌤은 확실히 오생 교주님의 독실한 신도 임에 틀림없다. ^^;;
케데헨 ☞ <최초의 헌터, Hunter's Mantra>
케데헨 ☞ <골든 Golden> 노래: 바다
앗!
이 그림도 golden,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잖아?
그럼... 이 산과 이 부처님들도 지금... Up, up, up... 하늘 향해 치솟고 있는 것일까?
문득 귓가에 둥첸의 장엄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뿌우우우웅~~~
둥첸의 소리 ☞ <Monks play the dungchen – sounds haunting yet musical>
(Zoom 온라인 강의실)
참 희한하다.
두 손 모아 공손하게 상체를 살짝 굽히면서,
따시뗄레~ 보드랍게 소리를 내면 어수선하게 헝클어졌던 마음이 차분해진다.
가이더 님의 강의가 시작되었다.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해주실까.
여러분.
오늘은 '소리'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어때요? ^^*
소리? 가이더 님이 가장 좋아하는 테마잖아? 가이더 님은 '소리'에 관한 글을 정말 많이 쓰셨다. 브런치에 올린 것만 해도 10여 편이 넘는다. 나는 그 글들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새롭게 배운 것 같다.
1. <연지에 띄워보는 그리움의 소리 편지 (1)>부터 <연지에 띄워보는... 소리 편지 (완)>까지 6편
2. <11. 사색이란 소리를 듣는 것>
3. <12. 하늘의 피리 소리를 들어라> 등등
우리는 ‘소리’라는 단어를 너무나 흔히 사용하면서도, 그 본질과 특성에 대해 너무나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따지고 보면 ‘문자’에 비해 훨씬 더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니고 있는데도 말이죠.
인류가 지상에 나타난 것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이래 250만 년이나 되었다는데 문자가 등장한 것은 고작 6천여 년 전의 일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인쇄술의 발달로 출판문화 즉 문자문화가 본격화된 것은 겨우 5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문자의 미망에 빠져서 소리를 너무 소홀히 생각하는 경향이 있죠.
자, 간단하게 정리하고 넘어가죠. '소리'에는 어떤 특성이 있을까요?
우리나라 전통 악기로 '소리'를 재현해내고 있는 김민호 교수가 발표해 주시겠습니다.
민호 : 네, 사실 제가 발표할 내용도 전부 소오생 가이더 님의 글을 읽고 정리한 겁니다. ^^;; 소리에는 크게 세 가지 정도의 특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첫째, 내면성. 청각은 사물의 내부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감각이라고 합니다. 무엇이든지 내부를 알고 싶으면 그 속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를 들어보면 됩니다. 손으로 똑똑 두드려보면 그 속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수박을 살 때 손으로 두드려보는 것도 속이 익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죠. 인간의 몸도 마찬가지. 소리만 들어도 그 사람의 감정 상태나 컨디션을 금방 눈치챌 수 있습니다. 그쵸?
희원 : 수박 살 때 칼로 조금 잘라보면 더 확실하게 알 수 있지 않겠소? 난 그렇게 사는데?
민호 : 하하, 저도 동네에서 수박 살 때 그렇게 합니다. 우리 몸의 내부 상태가 궁금할 때도 X―Ray나 CT 같은 걸 찍어보면 더 정확하겠죠? 그러나 그렇게 들여다보는 그 순간, 그 내부는 이미 내부가 아니라 외부가 되어버리지 않겠어요? 그러므로 시각으로는 절대로 내면세계를 알 수 없다는 얘기가 되는 거죠.
희원 : 그런가? 알쏭달쏭하구먼. 쩝.
민호 : 두 번째는 결합성입니다. 시각은 사물을 토막 내어 분리시키고, 청각은 합체시키는 특성이 있답니다. 그리고 시각은 이성적理性的, 청각은 감성적 특성이 강합니다. 제가 강의할 때의 사례로 설명드리죠.
강의실 안의 분위기를 파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만약 소리를 못 듣는다 치고 오로지 시각에만 의지한다면, 눈을 전후좌우로 이리저리 한참 동안 움직여야겠죠? 모든 것을 한눈에 다 볼 수는 없으니까요. 그렇게 토막토막 시야에 분리되어 들어오는 여러 개의 이미지를 뇌에 전달한 다음, 이성理性의 힘으로 종합 분석해서 최종 결론을 내려야겠지요. 시각이란 그렇게 분리되어 있는 것, 이성의 힘이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청각은 다릅니다. 소리는 동시에, 그리고 순간적으로 모든 방향에서 한꺼번에 우리의 귀로 몰려들어옵니다. 그래서 저처럼 미숙한 선생도 청각 하나에만 의지해도 강의실 안의 분위기를 금방 파악할 수 있죠. 학생들에게서 들려오는 소리 하나하나에 화를 내기도 하고 흐뭇해하기도 하면서 말입니다.
소리를 통해 인간의 감정은 금방 한 덩어리가 됩니다. 콘서트장에 가보셨나요?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나 아이돌의 콘서트장에 가면 어둠 속에서 떼창을 하며 모두들 일체감에 사로잡히죠? concert는 원래 '협력하다, 힘을 합치다'라는 뜻. 그러니까 '소리를 통해 모두 하나로 결합한다'라는 뜻 아니겠어요? 그만큼 소리에는 '결합'의 능력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음악 콘서트? 딱 한 번 가 본 기억이 난다. 매일매일 혼자서 세상과 싸웠던 고등학교 시절... 서태지 전국 순회 콘서트장... 어둠 속에서 모두가 방방 뛰고 펑펑 울며 함께 소리 질렀던 그 열광의 밤이 어제인 듯 눈에 선하다.
희원: 아, 김 교수~ 어째 소오생 교수 닮아가쇼? 서론이 너무 긴 거 아뇨? 진도 좀 빨리 나갑시다!
모두 킥킥 웃었다. 가이더 님한테 쫑코도 줄 수 있고... 친구분이 동행하게 되어 너무 좋다. ㅋㅋㅋ
음... 그렇긴 한데... 사실 '소리' 이야기는 너무 중요한 것 같다. 특히 우리들의 티베트 순례여행에서는.
혜린 : 김쌤 목 아프실 텐데, 나머지는 제가 발표할게여. ㅋㅋㅋ
소리의 세 번째 특성은 영성靈性(spirituality)이에여. 방 안에서 눈을 감고 스테레오 음악을 들어보세여. 나 자신이 우주의 중심이 된 듯한 신령스러운 느낌에 빠지게 된답니당. 그런 걸 '인간의 코스모스 감각(man's sense of the cosmos)'라고 한대여. 모든 종교는 소리의 그런 특성을 적극 활용하고 있져.
앗! 그 꿈!
사흘 내내 똑같은 내용으로 나타났던 그 꿈의 한 장면 한 장면이 선명히 떠올랐다. 그 무수한 별의 향연을 바라보고 있던 '그'와 내가, 마침내 우주의 중심이 되던 그 장면. 그리고 모든 별들이 굉음을 내지르며 떨어져 내리던 그 장면도, 혹시 그런 코스모스 감각과 관련이 있는 것 아닐까?
그런데... 꿈에서 소리를 듣지 않고 별을 보기만 했는데, 왜 그런 코스모스 감각을 느낀 걸까? 근데 왜 나중에는 갑자기 굉음이 들리는 것 같았지?
두 분 모두 다 잘 발표하셨습니다.
보충해서 한 마디 한다면... 소리는 사라지려고 하는 그 순간에만 존재합니다. 그렇겠죠? 즉 소리는 기억 보존에 어려움이 있다는 이야기. 훗날 문자가 등장하고 인쇄문화가 활성화되자 우리가 소리를 소홀히 여기게 된 이유도 그런 단점 때문일 것입니다. 문자는 기억의 보존에 용이하니까요.
사라지려고 하는 그 순간에만 존재한다... 그 말이 너무 인상적이다.
소리만 그런 것일까? 사랑도 그러한 것 아닐까?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그러한 것 아닐까? 아니, 모든 것의 본질은 다 그러한 것 아닐까?
하지만 문자는 소리처럼 내면성이나 결합성, 영성이 없습니다. 문자에만 의존하면 본질을 보기 어렵고, 사소한 것을 따지고 집착하여 자기중심적이 되죠. 당연히 영성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물론 문자로 이루어진 글에서도 감동을 받을 수 있죠. 하지만 감동을 받거나 영성을 느낄 수 있는 글에는 소리가 담겨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쉽게 말해서 음성 지원이 되는 글이죠. 예전에 학생들이 종종 그러더군요. 쌤 글을 읽으면 쌤 목소리가 들려여~ 그런 말을 들으면 저는 아주 기쁘답니다. 적어도 죽어있는 글이 아닌... 생명력이 넘치는 소리의 글쓰기를 했다는 증거 아니겠습니까?
아무튼 20세기에 들어와 전화/녹음기/TV/컴퓨터/영화/인터넷 등이 발명되면서 '소리'가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답니다. 과거에는 사라지려고 하는 그 순간에만 존재했지만, 지금은 언제든지 재생해서 들을 수 있게 되니까 소리의 장점이 재조명되고 있는 거죠.
음성 지원이 되는 소리의 글쓰기라... 알듯 말 듯...
가이더 님의 글에서 종종 봤던 이야기다.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봐야겠다.
자, 소리 이야기는 잠시 뒤에 다시 하도록 하고...
역사의 기록에 누락된 미지의 세계를 논외로 한다면... 약 2천여 년 이전의 지구에는 크게 두 개의 세계가 있었답니다. 중국 대륙을 중심으로 하는 '동방 세계'와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서방 세계'가 그것이죠. 그 두 세계는 히말라야라는 극한의 자연환경에 의해서 철저히 분리되어 있다가 실크로드가 개척되면서 점차 교통 하기 시작했죠.
최영진의 《동양과 서양》이라는 책에 의하면, '동방 세계'의 자연환경은 인간이 극복할 수 없는 엄청난 규모의 자연환경에 의해 포위된 '닫힌 공간/세계'였고, '서방 세계'는 상대적으로 인간이 극복할 수 있는 자연환경이라서 사방으로 쭉쭉 뻗어나가며 진출할 수 있었다고 해서 '열린 공간/세계'라고 말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의 글을 참고하셔요? ^^;;
어머~ 나도 읽어본 글이잖아?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내용을 정리했었다. 얼른 그 당시의 독서 노트를 펼쳐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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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대에 존재했던 두 개의 세계
① 서방 세계 = 지중해 중심의 '열린 세계 Opened World' ☞ 시각적 (분리 패러다임)
② 동방 세계 = 중국 대륙 중심의 ‘닫힌 세계 Closed World’ ☞ 청각적 (결합 패러다임)
③ 동/서방의 경계 = 히말라야
(2) 닫힌 세계 : 외부와의 교통이 차단된 세계
① 서: 히말라야, 티베트고원, 타클라마칸 사막
② 북: 끝없는 혹한의 벌판 시베리아
③ 동: 세상에서 가장 깊고 크고 무서운 바다, 태평양
④ 남: 인도차이나 반도의 울창한 정글
고대 인간의 능력으로는 극복할 수 없었던 엄청난 규모의 대자연에 포위된 동방 세계
▶ 우리는 흔히 그 '닫힌 세계'를 '동양', '열린 세계'를 '서양'이라고 부른다. '동양'은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침략 야욕의 잔재가 남아있는 단어다.
▷ 이 단어에는 함정이 숨어있다. '양洋'은 '아주 큰 바다'라는 뜻. 그러니까 '동양東洋'은 '동쪽에 있는 아주 멀고 큰 바다 지역', 즉 '일본'을 지칭한다. (지금도 중국어로 東洋은 일본이란 뜻) 그런데 동방 세계는 대륙 중심 아닌가. 엄청나게 넓은 대륙을 지칭하는데 뜬금없이 웬 바다?
▶ '동양'은 18세기 서구 제국주의자들이 동아시아를 침략해 오면서 "East & West"라는 단어를 만들어 사용하자, 일제가 자기들 일본을 중심으로 '동방 세계' 전체를 '동양'이라고 번역한 것.
▷ '동양'이 아니라 '동방東方'이 올바른 단어다. (예: 동방견문록, 동방예의지국 등) 요새 우리나라 학계에서는 '동아시아'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열린 공간'에서는 시각 의존도가 높아지고, '닫힌 공간'에서는 청각 의존도가 높아지게 마련이죠. 그래서 바다처럼 열려있는 '평면 공간'에서는 시야가 탁 트여 있으니까 시각문화가 발달합니다. 반대로 산악에 의해 닫힌 '입체 공간'에서는 시각적인 장애를 받는 곳이 많으므로, 보다 청각적인 패러다임을 지니게 되는 거죠. 예컨대 극단적으로 닫힌 공간인 동굴에 사는 박쥐는 아예 청각에만 의지해서 활동하잖아요. 그쵸?
그런가?
박쥐 예를 들어 설명하니까 그런 것 같기도 하고... ^^;;
그런데 '닫힌 공간'인 동방 세계라고 해서 다 똑같은 자연환경을 지닌 건 아니겠죠?
그 동방 세계 자연환경의 특징을 이해하려면 세 개의 선과 세 개의 원을 그려보면 좋습니다.
첫 번째 선은... 유교 중심의 북방 문화를 탄생시킨 황하黃河.
두 번째 선은... 도교 중심의 남방 문화를 탄생시킨 장강長江.
이 두 강 유역에는 평야와 같은 평면 공간이 많다는 사실을 참고로 알아두시길!
그리고 세 번째 선은...
파미르고원과 히말라야를 넘어 동방 세계에 불교와 이슬람교를 전파한 실크로드죠!
이 세 가지 선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좀 더 구체적으로 다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오케이? ^.^
이번엔 원을 그려볼까요? ^^
선이 동방 세계 주류문화의 땅이라고 한다면, 원은 비주류의 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주변 민족. 옛날 중국 사람들이 동이東夷, 북적北狄, 서융西戎 등 '오랑캐'라고 얕잡아봤던 이들의 땅이죠.
첫 번째 원은 티베트고원. 평균 고도 4,000m 이상의 땅. 닫힌 동방 세계에서도 가장 밀폐된 공간입니다. 따라서 동방 세계 중에서도 가장 소리 문화가 발달한 곳이라고 할 수 있겠죠?
두 번째 원은 몽골 일대의 대 초원 지역. 동방 세계에서는 가장 광활하게 열린 공간이죠. 이런 공간에서는 사방으로 쭉쭉 뻗어나가며 외부로 진출한다고 했죠? 다른 말로 하면 그만큼 공격적이 된다는 이야기. 이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던 흉노족과 몽골족이 유럽까지 진출하여 역사상 최대의 제국을 건설한 것도 어느 정도 연관이 있지 않을까요?
세 번째 원은 우리 한반도죠.
혜린 : 어? 잠깐만여~ 쌤~ 남만南蠻과 일본은 빠져 있네여?
오~~ 혜린 쌤! 아주 예리한데요? 그렇습니다. 제가 일부러 뺐답니다. 왜냐하면... 남만은 중원의 한족漢族 세력이 커지면서 점차 한족 역사와 문화의 일부로 포섭되었기 때문이구요~
일본은 대륙과 완전히 떨어져 독자적으로 해양 문화를 형성했죠. 지리적으로는 동방 세계에 포함시킬 수 있지만, 패러다임(생각의 틀)으로 본다면 오히려 서방 세계의 그것과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동양東洋, 동쪽 아주 먼바다에 사는 '왜구倭寇, 키 작은 해적 놈들'이라고 불렀답니다. 문명 세계를 위협하는 외부의 해적으로 취급했으니, 변방의 '오랑캐' 축에도 끼지 못했던 지역이었죠. 대충 이해가 되셨으면... 갈 길이 바쁘니까, 일단 통과~, 오케이? ^^*
아, 동방 세계는 단순히 지리적으로 동쪽을 말하는 게 아니라... 동아시아의 대륙부만을 뜻하는 거였구나... 고대 동방 세계에는 일본을 끼어주지 않았구나... 그러니 일본이 열받을 만도 했겠네. ㅋㅋㅋ
한반도는 지형지세로 볼 때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1) 국토의 70% 이상이 산악입니다.
(2) '통발(筌) 형'입니다. '통발'이 뭔지 아시죠? 낚시할 때 쓰는 도구. 즉 입구는 있는데 출구가 막혀있는 막다른 공간, 또 다른 형태의 밀폐 공간이죠.
이런 자연환경은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요?
김민호 교수님이 발표해 주시겠습니다.
우리나라가 통발형?
처음 듣는 얘기다. 근데 뭔가 그럴듯하다. 귀가 솔깃하다.
민호 : 네. 크게 두 가지인데요, 첫째는 보수성입니다. 일단 통발형의 한반도로 유입된 것들은 오랫동안 변함없이 유지한다는 얘기죠. 국토의 70%가 산악 지역이기 때문에 여기저기 골짜기에 분산 수용되어 변형되지 않고 오늘날까지 보존되어 내려왔다는 뜻이죠. 그래서 동아시아 삼국 중 유교와 불교, 도교의 원형을 가장 많이 보존하고 있습니다.
희원 : 아니, 아까 황하에서 유교가 탄생하고 장강에서 도교문화가 탄생했다면서? 중국이 오리지널 본산지인데 거기가 더 많이 보존하고 있을 거 아뇨? 불교도 중국이 먼저 받아들였다면서?
와, 우리 회장님 따봉~! 정말 좋은 질문이네요~ ^^*
물론 중국이 본산지죠. 하지만 황하와 장강 일대는 나름대로 충분히 넓은 땅덩어리여서 용광로처럼 그 땅에 존재하는 다양한 패러다임을 하나로 녹여냈던 거죠. 그걸 학문적으로는 삼도합일三道合一이라고 한답니다. 그러다 보니 유/불/선의 오리지널 모습이 문헌에만 남아있을 뿐, 현실에서는 거의 다 사라져 버린 거죠.
혜인 : 저도 그런 얘기 들었어요. 명절 때 조상님에게 제사 지내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구요. 근데 그래서 우리나라 여자들은 너무 힘들어요~ ㅠㅜ
혜린 : 불교도 중국 절에 가보면 뭔가 오리지널이 아니라 짬뽕 냄새가 나여~ 참선하고 그러는 것도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제일 유명하다면서여?
민호 : 아 네. 지방 방송은 잠시 꺼주시고요, 본 방송을 얼른 하고 끝내겠습니다. ^^;;; 아무튼 그러다 보니 한반도에는 다양한 문화 요소가 혼재混在 되어 갈등과 분쟁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좌우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종교, 지역, 성별, 세대 간의 갈등이 큰 것도 통발형 지형지세의 영향이 없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두 번째. 한반도의 자연환경은 70%가 산, 그리고 빠져나갈 데가 없는 막다른 공간입니다. 여기서 대단히 강렬한 소리 문화가 탄생한 거죠. 물론 소리 문화는 전 세계 어느 곳에나 다 존재합니다만... 대한민국처럼 감성이 풍부하고 생명력이 넘치는 소리의 땅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용병으로 온 외국 야구 선수나 가수들도 팬들의 반응이 너무 뜨거워서 깜짝 놀란다잖아요~ 팬들이 뭘로 반응하겠어요? 소리죠. 떼창!
희원 : 아, 그럼 BTS나 케데헌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것도 다 지형지세 때문이란 말이오? 어째 꼭 풍수쟁이 지관들이 하는 말 같소이다?
하하, 물론 그 이유 때문만이라고 할 수는 없겠죠. 저는 K-문화 특히 K-pop이 세계인에게 환영받는 가장 큰 이유는 그 속에 '동방 세계의 전통 패러다임'이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유가나 불가, 도가 사상을 막론하고 '동방 세계의 전통 패러다임'에는 '비주류'가 '주류主流'의 억압을 당당하게 극복해 내는 극복 서사가 담겨있거든요.
그런 서사가 소리의 멜로디와 만나 하나로 결합한 것이 인기의 비결이 아닐까요? K-pop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인종과 성별/나이에 관계없이 그만큼 가슴속에 억눌린 게 많았다는 이야기 아닐까요? 주류 중의 주류인 트럼프 같은 사람이 K-pop을 싫어하는 것도 그런 이유 아닐까요?
비주류의 극복 서사?
유가, 불가, 도가 사상과 같은 '동방 세계의 전통 패러다임'이... 비주류의 극복 서사라고?
메모해 놓고 좀 더 오래 음미해 봐야겠다.
희원 : 그럼 앞으로 중국이 동방 세계의 종주국답게 그런 오리지널 패러다임을 회복한다면 C-pop이나 C-문화가 우리 케데헌 인기를 빼앗아가는 것 아뇨?
오우~ 너무나 좋은 질문이군요. 어느 학교 나오셨어요? ㅋㅋㅋ
그러나 현재 상태로 미루어 보면... 그럴 리는 없을 것 같군요. 중국은 과거에도 지금도 패권 국가죠. 그 영토와 인구로 보았을 때, 적어도 동방 세계에서는 주류 문화의 위치에서 내려오려야 내려올 수가 없을 것 같네요. ^^;;
혜인 : 가이더 님, 그럼 티베트는요? 아까 티베트가 가장 밀폐된 공간이라고 하셨자나여? 그럼 티베트도 소리 문화가 발달했나여?
와, 좋은 질문이 연달아 터지는군요. 굿굿굿! ^^^
티베트와 한반도는 지형으로 볼 때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답니다. 먼저 산악이 많은 게 공통점이죠. 산이 많은 곳에서는 산을 죽어있는 무생물로 보지 않고 신령스러운 존재로 여깁니다. 그 산의 신령들과 소통하는 능력을 가진 존재를 '샤먼(shaman)'이라고 하죠.
산이 많은 곳에서는 산을 죽어있는 무생물로 보지 않고 신령스러운 존재로 여긴다? 예전엔 샤머니즘을 굉장히 저열한 미신으로만 여겼는데... 요새 와선 뭔가 느낌이 달라지고 있어. 앗, 가만! '샤먼'이 바로 무당이잖아? 케데헌의 도입부에 나오는 그 노래... 무당들이 부르는 노래잖아?
홀로 어둠을 밝히랴~ 우리 노래 부르리라~ 굳건한 이 소리로~ 이 세상을 고치리라~
혜인 : 최초의 무당들이 '홀로'가 아니라 '우리'로 함께 뭉쳐서... '소리'라는 도구로 이 세상을 치유하겠다... 그게 케데헌의 정신이라면, 그렇다면 티베트에도 그런 무당의 소리가 있나요?
물론입니다. 하지만 성격은 다르답니다.
한반도는 들어가기는 쉽지만 빠져나갈 길은 막힌 통발형의 '막다른 공간'이어서... 소리가 응축되어 있다가 그 어떤 출구가 생기면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현상을 보인다고 생각해요.
요새 K-pop이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건... 수천 년 동안 동방 세계의 비주류로서 억눌려 지내며 응축된 소리가, 극복의 모멘트를 맞이하여 터져 나오는 것 아닌가 싶어요. 그야말로 때가 된 거죠.
It's our moment! 드디어 때가 왔어. Up, up, up!
<골든>의 가사와 멜로디가 저절로 떠올랐다.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혜린 : 우와~ 쌤~ 정말 멋진 해석이셔요!
민호 : 저도요. K-pop이 전 세계인의 환영을 받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아요.
하하, 이건 어디까지나 제 개인 생각이니까 그냥 참고만 하시어요. ^^;;
아무튼... 한반도에 비해 티베트의 산악은 고도가 더욱 높고 험준해서... 들어가기도 어렵고 빠져나가기도 어려운 그야말로 '밀폐된 공간'이죠. 이런 밀폐 공간에서는 소리가 보다 본질에 가까운 '내면의 소리' 성향을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반도가 소리를 내는 쪽이라면, 티베트는 주로 소리를 듣는 경향이 강하다고 생각해요. 어떤 소리를 듣는 걸까요?
혜인 : 산이요!
와우~ 빙고~ 그렇습니다~ ^^
산이 들려주는 신령스러운 소리. 대자연의 그 어떤 주파수. 티베트 사람들은 그걸 듣고 그걸 모방한 소리를 내려고 하는 거죠. 티베트의 전통 샤머니즘을 뵌뽀교(苯敎; bönpo)라고 하는 데요~ '뵌'은 그 '대자연과 신령의 소리', '뽀'는 그것을 믿고 수행하는 사람, 즉 '뵌뽀'란 '대자연의 신령한 소리를 듣고 외우다' 또는 '그런 사람'이란 뜻이래요. 티베트 사람들이 얼마나 소리를 중시하는지 알 수 있겠죠?
혜인 : 그럼 “옴 마니 밤메훔!”이라는 말도 대자연의 소리인가요?
와우, 박수! 짝짝짝~~ 굿굿, 아주 좋습니다!
티베트불교는 뵌뽀교와 불교가 하나로 만난 거랍니다. “옴 마니 밤메훔! Om Mani Padme Hum”은 티베트인들이 늘 입에 올려놓고 외우는 ‘우주의 진언'이죠. '진언(眞言, Mantra)’이란 말을 아시나요?
혜린 : 주문呪文 같은 거 아녜여?
비슷하지만 조금 다르답니다. '진언'은 '진리의 소리'라는 뜻. 진언을 암송하여 우주의 소리를 체험하면서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거구요, '주문(다라니, Dhāraṇī)'은 병을 낫게 하고 악귀를 물리치는 기적이 행해지기를 바라는 언어죠. 그만큼 언어와 소리에 신령한 힘이 있다고 믿는 거예요. '진언'이 자기 내면의 소리를 듣고자 하는 자기 성찰의 언어라면, '주문'은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종교의 언어라고나 할까요?
아무튼 '옴 마니 밤메훔'은 '주문'이 아니라 '진언'이랍니다. 원래는 4c 경 인도 대승불교에서 기원한 말. "오! 연꽃 속의 보석이여!” 그런 뜻이라는군요. 그 뿌리는 1~2 C에 출현한《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줄여서 《법화경法華經》이란 경전까지 올라가지만 너무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그러니까 '옴 마니 밤메훔'은 대승불교에서 나왔지만... 티베트 뵌뽀교와 만나 영성을 얻었다고 볼 수 있죠. 예컨대 '옴 마니 밤메훔'의 ‘옴’은 [ a + u + m ]의 합성어래요. 각기 우주의 ‘발생과 유지와 소멸’을 상징한답니다. 바로 우주와 대자연이 발산하는 주파수의 상징인 셈이죠.
티베트인들은 '옴 마니 밤메훔'이라는 진언이 들어오기 전, 아주 먼 그 옛날부터 지금까지 그 주파수를 온몸으로 포착하고, 느끼고, 자신도 역시 하나로 동화되어 소리를 발산하는, 우주와 인간의 리드미컬한 교감에 모든 관심을 집중하여 왔던 거죠.
그들에게 우주와 대자연이 발산하는 신성한 메시지 ― ‘연꽃 속의 보석’, 그 실체는 바로 곧 ‘소리’였어요. 소리는 진리요, 생명이요, 영혼이며, 천지만물의 주재자인 신神, 그 자체였던 셈. 그래서 '옴 마니 밤메훔'이란 말은 오늘날에도 티베트 곳곳마다 부적처럼 붙어있답니다. 사진 몇 장 보실래요?
(상) 티베트땅 그 어떤 곳에도 적여 있는 옴마니 밤메훔. 이 사진에선 그 진언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하) 저 많은 마니퇴에 쓰인 저 많은 글자들이 모두 '옴마니 밤메훔'이라고 알려주는 티베트의 라마승.
이희원 : 소 교수. 근데 지난번에 숙제로 내줬던 이 그림은 대체 뭐요?
아, 이거요? 이건 제가 AI로 그린 티베트의 창세創世의 순간이랍니다. 바다에서 산이 솟아오르는 장면이죠. 이럴 때 둥첸의 소리가 배경음악으로 깔리면 딱이지 않겠어요? ^^;;
혜인 : 앗, 그럼 지금 티베트땅이 Up, up, up! 하늘로 솟구쳐 오르고 있는 장면이네요? 케데헌 덕택에 한반도가 전 세계적으로 떠오르고 있는 이 시점에 보니까... 한반도와 티베트가 뭔가 공통점이 있는 것 같아서 전율이 느껴져요.
혜린 : 쌤, 근데 티베트족에게 이런 창세 신화가 있다는 건 어떻게 아셨어여? 기록에 나오나여? 글구... 산봉우리 위에는 왜 부처님이 앉아 있어여?
오, 혜린 쌤~ 선비는 3일이면 괄목상대라더니...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라고 나날이 발전하시는군용? ㅋ
티베트 설화랍니다. 티베트는 바다에서 솟구쳐 오른 땅이라는 거죠. 또 스스로 원숭이의 후예라고 한답니다. 그런데 실제로 티베트는 약 5천만 년 전, 바다였던 땅이 하늘로 치솟아 오른 땅이죠. 지금도 매년 조금씩 융기하고 있다잖아요?
그런데 참 신기해요. 그런 과학적 fact를 티베트 사람들은 어떻게 알았을까요? 우주와 대자연의 주파수를 들으면서 명상에 잠기면 알게 되는 걸까요? 아무튼 그들은 거룩하고 신성하고 위대한 그 모든 것은 반드시 ‘소리’로 보존하여 후대에 전승傳承시켜 내려갔다고 합니다. 마치 원시 초민初民이 소중하게 불씨를 보존하고 전승해 내려갔던 것처럼 말이죠.
혜인 : 산봉우리 부처님은요?
아, 그건 제 개인 생각이에여. 《법화경法華經》 제25품 <관세음보살보문품>을 보면 바다에서 무수한 관세음보살들이 떠오르는 장면이 나온답니다. 잠재되어 있던 세계가 현실에 현현하는 거죠. 그것과 티베트의 창세 신화의 이미지가 겹쳐보였거든요.
잠재되어 있던 한반도의 응축된 소리가... It's our moment, 드디어 출구가 생기자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듯이... 이번 티베트 답사를 모멘트로 삼아, 우리 답사대원 여러분들의 잠재되어 있던 능력이 터져 나오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려본 거랍니다.
이제 여러분의 <골든>, 황금빛으로 빛나는, 영원히 깨지지 않는, 여러분의 찬란한 시간입니다.
자, 오늘은 좀 길었죠? 여기까지.
아... 가이더 님의 말씀에 괜히 눈물이 핑 돌았다. 언제나 혼자서 이 세상과 맞서 싸우다가 도망쳐 숨곤 했는데... 한 순간 한 순간이 숨이 막혀서 가슴이 턱턱 막혀 왔는데... 티베트를 만나면서, 나에게도 정말 황금빛의 찬란한 시간이 온다는 말일까?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가이더 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참! 다음 시간엔...
중국의 고유명사 표기법에 대해서 혜인 쌤이 발표 준비 좀 해주세요. 오케이?
혜인 : 네에??
자, 그럼 다 같이 인사하고 끝내겠습니다.
# 둥첸, 티베트의 소리
# 케데헌, 한반도의 소리
# <최초의 헌터>, <골든>
# 한반도와 통발(筌) 형
# K-pop이 환영 받는 이유
# 서방 세계, 열린 공간, 시각적
# 동방 세계, 닫힌 공간, 청각적
# 옴마니밤메훔, 진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