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규, <입동치레> 낭송
Preparation for Winter
입동은 단순한 절기가 아니라 존재의 감각이 바뀌는 순간입니다.
단풍의 퇴색과 찻잔의 김, 문고리의 차가움 속에서
우리는 서서히 한 해의 무게를 정리합니다.
몸이 기억을 덜어내고, 마음이 그 자리를 대신 채우는 과정이
바로 입동치레의 본질입니다.
이 시는 그 정화의 시간을 감각과 철학이 만나는 자리에서 붙잡고자 한 기록입니다.
낭송: 소오생
김태규 시인은 일흔 나이에 문단에 데뷔한 소오생의 중고등학교 동창입니다.
<당신만 덜 아팠으면>에서 소개해 드렸죠?
이번에 시집을 출간했더군요.
글벗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이 책 《니 이름이 뭐니?》는 제목이 없는 시집입니다. 작가는 시를 쓰되, 제목은 쓰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 시집의 진짜 작가는 ‘당신’이기 때문입니다. 각 시의 마지막엔 작가가 떠올린 작은 단서, [Key Word]가 있습니다. 그 한 단어를 실마리 삼아 당신의 감정과 상상으로 제목을 붙여보세요. 시를 읽고 이름을 지으면, 그 순간 당신은 ‘독자’가 아니라 ‘공저자’가 됩니다. 시의 여백이 당신의 이름으로 채워지는 순간, 비로소 이 시집은 완성됩니다. “니 이름이 뭐니?” - 이제 당신의 차례입니다.
시집에는 제목을 정하지 않은 시가 꽤 되는데, 이처럼 그 시편의 제목을 독자 여러분이 정해주면 고맙겠다는 시인의 부탁이 적혀 있다. 그러고 보니 이 시집에는 제목이 정해진 시도 있고 제목이 아직 정해지지 않은 시도 있다. 제목이 정해지지 않은 시는 그 시 상단에 원고지가 그려져 있어서 독자가 직접 제목을 써보게끔 되어 있다. 원고지, 얼마나 오랜만에 접해보는 것인가? 다행히 편 편의 시 말미에 작가의 말과 키워드가 있는데 그것은 시를 쓴 시인의 의도와 핵심어여서 독자가 제목을 정하게끔 되어 있다.
이런 시도는 김태규 시인이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시도한 것이다. 표지 안쪽 시인의 약력 밑에 이메일 주소가 있으므로 독자 여러분이 지은 제목을 시인에게 보내도 좋지 않을까? 제목을 지어보는 재미에 빠지다가 더 빠져들어 시를 짓는 재미까지 알게 되는 독자가 나오지 말란 법이 있는가. 독자의 가슴에 시의 불을 밝히고 싶다는 것이 원고지까지 제공한 시인의 전략일지도 모른다. (이승하 교수,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김태규 시집 《니 이름이 뭐니?》는 첫 장을 펼치자마자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한다. 새벽의 고요를 뚫고 나온 듯한 시편들이 하나둘 눈앞에 놓일 때, 우리는 누군가의 삶을 훔쳐보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벗의 속마음을 듣는 듯한 친근함을 느낀다. 이 시집은 화려한 수사보다 생활의 언어로 다가오고, 철학의 무게보다 소소한 체온으로 스며든다.
시 <我름답다>에서 “꽃/ 너를 보고/ 내가 꽃다워졌어/ 그게 我름답다는 뜻이더라”라고 말할 때, 시인은 타인을 비추는 거울 속에서 자신을 발견한다. 나를 꽃답게, 별답게, 심지어 똥답게 만들어 준 것은 결국 ‘너’였다. 모든 관계가 삶을 비추는 빛이 되고, 그 빛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를 알아간다.
삶의 계절은 언제나 우리와 어긋난다. <계절에 어긋난 마음> 속의 화자는 “봄이 오면 모두 피어나는데/ 나는 시들었고”라고 고백한다. 남들이 웃을 때 울컥하는 순간, 남들이 떠날 때 자꾸 뒤돌아보는 마음. 그것은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한 어긋남이며, 바로 그 엇박자가 우리를 더욱 인간답게 만든다.
김태규의 시에는 웃음이 있다. 그러나 그 웃음은 가벼운 농담이 아니라 삶을 통과하며 길러낸 유머다. <Too Late to Love>에서 “아끼다 똥 됐다”는 직설은 허탈한 웃음을 자아내지만, 그 안에 스며 있는 건 사랑을 고백하지 못한 한 인간의 뼈아픈 후회다. 또한 <삼겹살 불판>에서 질투를 불판에 빗댄 장면 역시 그렇다. “겉으론 익는 척하지만/ 속은 기름이 튀고/ 연기가 꽉 찬다” 웃음을 머금은 채 읽다가도, 결국 우리 자신을 비추는 거울 앞에 서게 된다.
사랑에 대한 그의 시선은 더욱 따뜻하다. <The Stages of Love>에서는 사랑의 언어가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보여준다. 경건하게 두 손 모아 고백하던 “사랑합니다”, 불타는 열정 속에서 터져 나온 “사랑해!”, 그리고 세월이 흐른 뒤 밥상을 마주하며 건네는 “국 식는다, 얼른 먹어” 시인은 바로 그 일상 속의 무심한 말이 가장 뜨겁고 오래 남는 사랑이라고 말한다.
이 시집은 또한 잃어버린 것들을 조용히 불러낸다. <The Day I Couldn’t Delete>에서 차마 지우지 못한 답글 하나가 하루를 무겁게 하고, <One Stop Too Far>에서는 내리면 끝날 것 같아 한 정거장을 더 가버린 마음이 이별의 얼굴로 남는다. 그리움은 늘 사소한 흔적 속에서 살아남고, 이별은 멀리서가 아니라 바로 곁에서 서서히 스며든다는 것을 시인은 알고 있다.
그러나 그의 시는 끝내 희망을 놓지 않는다. <천국의 계단>에서 그는 말한다. “천국은 높이 있는 성이 아니라/ 함께 걸어가는 길” 천국은 저 멀리 있는 약속이 아니라, 지금 내 곁에서 손을 내밀어 주는 사람의 따뜻한 손길이었다. <진짜는 끝에 있다>의 마지막 구절처럼, “말보다 늦고/ 떠남보다 오래/ 머무는 마음/ 그게 진짜더라” 시인은 끝내 남는 것이 무엇인지를 오래 걸어온 삶의 경험으로 보여준다.
시집 《니 이름이 뭐니?》는 새벽에 쏟아낸 고백이 모여 하나의 기도가 된 책이다. 웃음과 눈물, 후회와 위안, 그 모든 것이 뒤섞여 결국은 사랑으로 흘러간다. 이 시집은 독자에게 말한다. 삶은 때로 우스꽝스럽고, 때로는 눈물겹게 아름답다고. 그리고 진짜는 늘 끝에 남는다고. 가볍게 웃다가도 어느 순간 가슴이 먹먹해지는 시집, 일상의 언어로 우리를 위로하는 한 권의 책. 《니 이름이 뭐니?》는 당신의 마음 한쪽에 오래 머무르며, 언젠가 꺼내 읽을 또 하나의 ‘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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