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에 살 때 유튜브를 한 적이 있습니다. 뉴질랜드 일상을 올리는 채널이었습니다. 영상 만드는 게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형편없는 구독자 수와 영상 퀄리티였지만 내일은 어떤 영상을 만들까 고민하고 설레며 잠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 일상을 예쁘게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은근히 자랑도 하면서 말이죠. 하지만 포기 전문가답게 세 달 정도 열심히 영상을 만들다 그만뒀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었습니다. 대학원 공부도 하고, 일도 하고, 영어 공부도 해야 하다 보니 도무지 시간이 나질 않더군요. 무엇보다 영상을 찍으면서 제 일상이 미묘하게 망가지는 걸 경험했습니다.
저는 음식을 만들고 식사하는 장면을 영상에 종종 넣었습니다. 영상을 찍다 보면 평상시에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과정들이 상당히 부자연스러워집니다. 카메라 구도를 설정하느라 음식 만드는 시간은 늦어지고, 세팅하느라 식사에 집중하기가 힘들어졌습니다. 아내는 음식을 먹어도 되냐고 허락을 맡아야 하는 상황도 생겼고요. 그런 불편함은 완성된 영상에는 담기지 않습니다. 편집된 영상에 아름다운 음악과 자막을 넣어주면 지저분한 부분은 감쪽같이 사라지니까요.
누군가 우연히 제 영상을 봤다면 뉴질랜드에서 즐기는 여유로움을 한껏 부러워했을지도 모릅니다. (지루한 영상을 참고 볼 수만 있다면요.) 멋진 영상과 사진, 이야기는 현실을 왜곡할 수 있다는 걸 모른 체 말입니다. 하루에도 몇 시간씩 보는 유튜브와 인스타 피드에는 우리가 마주하는 일상이 짜깁기 되고 편집되어 올라옵니다. 제가 만든 영상처럼 말이죠. 그 많은 사진과 영상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저는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만들어진' 남의 인생과 내 삶을 비교하며 한탄하곤 합니다.
저는 찰나의 행복한 순간을 영상이나 사진으로 담아내고 편집할 수 없다고 믿습니다. 제가 느끼는 사랑과 행복은 남들이 못 보는 아주 은밀하고 사적인 공간에서 조용히 일어납니다. 아내와 주고받는 사소한 농담과 장난, 남들은 공감할 수 없는 우리들만의 경험과 추억, 우리가 꿈꾸는 허무맹랑한 이야기, 구질구질하지만 가장 편안한 우리의 일상에서 저는 행복을 느낍니다.
아이러니하게 그런 순간을 담기 위해 핸드폰을 켜는 순간 우리의 몰입은 깨지고 맙니다. 더 멋진 장면을 만들고자 하는 생각이 자연스러운 상황과 감정을 왜곡시킵니다. 남들을 의식하는 순간 현재를 온전히 즐길 수 없게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눈을 마주하고 깊은 대화를 해야 할 순간에 셀카를 찍으며 우리의 일상을 망가뜨립니다. 우리의 가장 소중한 시간을 담으려는 시도 자체가 오히려 행복을 쫓아내는 것입니다.
모건 하우절은 '보이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좋아 보이는 것들도 그 안을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이지요. 저는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 얽매이지 않고 속지 않으려고 합니다. 남들이 자랑하는 멋진 인생이나 많은 돈 따위 이면에 삭제된 불편하고 부자연스러운 과정을 보기 위해 노력합니다. 남들이 모르는 우리 가족이 함께하는 사적인 시간과 제 내면의 가치에 더 많은 공을 들이려고 합니다.
인스타나 유튜브에 올릴만한 멋진 사진과 영상은 없지만 저는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을 쌓아가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더 노력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