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 제주도에 내려가는 저희 부부의 결정을 부러워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적지 않게는 "왜?"라는 물음을 던지기도 합니다. 저희 양가 부모님들처럼요. 예상과는 다르게 부모님이 생각보다 걱정을 많이 하시더군요. 지금 이렇게 편하게 잘 지내고 있는데 왜 고생을 하러 가냐고요. 그리고 본인들의 나이도 많은데, 자식들이 다 먼 곳으로 간다고 하니 많이 섭섭하셨겠지요. 그렇게 사랑하는 손자도 자주 못 보고요.
부모님은 저희가 교사를 그만둘까 봐 안절부절못하십니다. 어떻게든 정년까지 해서 편안한 노후를 보냈으면 하는 소망을 꺼내십니다. 본인들 친구 중 지금 가장 편하게 사는 사람들이 교사로 은퇴한 분들이라는 말을 하면서요. 제가 하려는 목공 일이 얼마나 힘든지 아냐고 겁도 주십니다. 부모님은 자식을 생각해서 하는 조언이라고 믿고 계실 겁니다. 자식만큼은 편하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 담긴 조언이겠지요.
부모님의 바람과는 다르게 저는 편안하게 살고 싶지 않습니다. 저 새끼 개고생을 안 해봐서 저딴 소리를 지껄인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 교대 나오고 교사질이나 해본 놈이 세상에 대해 뭘 알겠습니까. 그런데, 편하고 안정적으로 산다는 건 무슨 의미인가요?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편안함과 안정이라는 게 존재할 수 있을까요?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기는 한 것인가요?
편안하다는 말은 매우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의미입니다. 남들이 다 안정적이고 편하다고 하는 교사 생활에서 끔찍한 고통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남들이 정말 힘들다고 하는 일에서 즐거움과 보람을 느낄 수도 있고요. 편하다는 건 사회나 남이 부여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내가 느껴야만 되는 것입니다. 객관적으로 편하고 안정적인 것 따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불안한 사람이 있고 전혀 없어도 불안해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게다가 세상이 이렇게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언제까지 교사가 편안함과 안정의 대명사로 여겨질 수 있을까요?
부모 세대를 뛰어넘는 유구한 역사를 돌이켜보면 편안함이나 안정성 따위가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였던 적은 없었습니다. 인간은 목표는 생존이었습니다.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투쟁하고 도전하는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인간은 성숙해졌고 성장했습니다. 유례없이 평화로운 시대를 경험하는 우리 세대는 편안함과 안전함을 추구하며 점점 미성숙해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이 온실 속에서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삶을 파괴시킬만한 큰 위험을 져서는 안 되지만 그렇지 않은 위험과 도전을 피하는 건 자연의 이치에 벗어나는 부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편안함보다는 오히려 고통, 실패 그리고 좌절 따위에서 더 진실한 삶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으니까요.
저희가 어떻게 설명을 하더라도 사람들은 저희 부부를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저희가 내린 결정을 겉으로 볼 순 있지만 저희가 나누었던 생각과 느낌 그리고 구체적인 계획 따위를 보고 들을 순 없을 테니까요. 우리가 어떻게 이런 생각까지 이르게 됐는지, 그 길고 깊은 서사를 함께 경험하지 못했으니까요. 굳이 남들을 납득시킬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중요한 건 '우리' 이니까요. 그 결과가 어떻든 우리가 책임질 것이고요.
사람들은 다수의 의견에 따르는 것이 안전하다고 무의식적으로 느낍니다. 자연에서도 혼자보다는 남들과 같이 있어야 생존할 가능성이 커지는 게 맞잖아요. 이런 동조 편향에 이끌려 남들이 납득할 만한 선택을 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다행히 짧은 기간 동안은 그렇게 살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괜찮더군요. 오히려 제 삶이 더 깊어지고 다채로워지는 걸 경험했습니다. 이렇게 살아도 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남들에게는 미친 짓처럼 보이는 지금의 결정이 제게는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선택처럼 느껴집니다. 당연히 해도 괜찮은 평범한 결정인 것입니다. 잃을 것보단 얻을 게 분명히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웃긴 건 저희 아버지는 지금 제 나이쯤인 38살에 전기공사를 때려치우시고 사업을 시작하셨습니다.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지금까지 살아남으셨고 본인은 그 점을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하십니다. 다시 돌아가도 본인은 사업을 할 거라는 얘기를 하십니다. 이런 아버지가 저만큼은 편하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 게 앞뒤가 전혀 맞질 않습니다. 이래서 부모가 되는 일이 쉬운 게 아닌가 봅니다.
어쩌면 정말 좋은 부모가 된다는 건 자식을 사랑하는 만큼 호랑이 굴로 던져 넣을 수 있는 용기를 갖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