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여왕> 대본으로 배워보는 말하기 연습
정리해 둔 문장을 보고 연습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책 읽듯이’ 말하게 되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분들의 특징은, 무언가를 보고 읽기만 하면 갑자기 AI 말투로 변신한다는 거예요. 평소의 대화에서나 자연스럽게 대본 없이 자신의 의견을 발표할 때는 괜찮습니다. 다만 스크립트를 보고 읽으면 문제가 되는 거죠. 심지어 옆에 띄워 둔 장표를 보면서 말하는 경우에도 딱딱하게 말투가 굳어지는 분들도 참 많습니다.
책 읽듯 말하는 분들의 어투를 잘 들어 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한 문장에 들어 있는 모든 글자를 똑같이 강조하면서 읽는다는 거예요. 모든 글자를 힘있게 읽는 분도 있고, 약하게 읽는 분들도 있습니다. 간혹 ‘조사’를 강조해 읽는 분들도 있고요. 그러면 전체적으로 똑같은 흐름, 똑같은 강약으로 말하기 때문에 무슨 내용을 강조하고 싶은 건지 알 수가 없고, 듣는 사람이 한 번에 이해하기도 어렵습니다. 어색한 건 두말할 것 없고, 쉽게 지루해지기도 합니다. 저는 요즘 아파트나 건물 관리사무소에서 내보내는 안내 방송에서 그런 느낌을 자주 받는데요, 차라리 예전의 나이 지긋하시고 목소리 크셨던 관리소장님의 목소리가 그리울 때도 있습니다.
2024년 초 tvN에서 방영한 드라마 《눈물의 여왕》의 김지원 배우(홍해인) 캐릭터, 혹시 아시나요? 마음속 깊숙한 곳에는 여리고 상처받은 아이가 있지만, 겉으로는 굉장히 냉정하고 똑 부러지는 성격입니다. 차갑기까지 하죠. 말투만 들어도 캐릭터의 성격이 느껴집니다. 특히 그런 성격이 도드라지는 장면에서는, 대사의 모든 음절의 길이가 거의 같은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상대역인 김수현 배우(백현우)의 말투와 대조적입니다. 아래 대사를 볼게요.
[상황] 수렵 중 해인이 멧돼지의 공격을 받을 뻔한 것을 현우가 구해 주고, 이어서 발목을 다친 해인을 현우가 번쩍 안아 올리며 이야기하는 장면.
현우: 나 또 오버하는 건가?
해인: 평소 같은 상황이면 물론 그런데, 지금은 부상 상황이니까. 이 정도면 오버까진 아니고 적당한 거 같아.
현우: (짧은 코웃음) 그렇지?
현우, 해인을 두 팔로 안은 채로 성큼성큼 산을 내려온다.
자, 캐릭터의 성격과 상황, 대사를 보니 어떤 식으로 말할지 보지 않아도 예상이 되지요? 해인이 걱정되어 말도 없이 번쩍 안아 버린 현우는 이전에 해인이 했던 말이 떠올라 갑자기 좀 망설이며 물어봅니다. “나 또 오버하는 건가?”라고요. 여기서는 이미 안아 버린 행동에 대한 걱정으로 조금 망설이면서, 걱정스러운 말투와 표정으로 말을 합니다. “나 또, (쉬고) 오버하는 건가?”라고요. 말의 속도도 느린 편입니다.
그런 현우의 말을 듣고 약 3초간 멈칫하던 해인은 곧바로 대답합니다. 역시 평소 성격답게 말이 폭포처럼 쏟아져 나옵니다.
“평소 같은 상황이면 물론 그런데(여기까지 쉬지 않고 빠르게), 지금은 부상 상황이니까. (역시 빠르게 말한 뒤 0.5초 쉬고) 이 정도면 오버까진 아니고 적당한 것 같아.”
중간에 쉼표나 마침표를 제외한 모든 문장에서 거의 숨도 쉬지 않고 빠르게 말을 잇습니다. 모든 음절의 길이, 소리와 강세의 크기가 똑같습니다. 하지만 감정을 넣었기 때문에 로봇 같지 않고, 쉬는 부분에서 확실히 쉬어 주어 ‘고민하고 있는 해인의 마음’을 잘 드러내 주고 있지요.
이렇게 배우들도 역할의 성격에 맞게 말투와 어조, 강조할 부분 등을 다채롭게 변화시킵니다. 바꿔 말하면 이 드라마에서의 해인처럼 모든 음절을 똑같은 길이로 말할 경우, 딱딱하고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겁니다. 너무 늘어지게만 말하는 습관이 있다면, 그래서 좀 더 냉철하고 이성적인 느낌을 주고 싶다면 이런 말하기 팁을 활용하면 되는 겁니다. 하지만 알고 하는 것과 모르고 하는 것은 또 다르겠죠. 모든 음절을 똑같게만 말하고 감정을 담지 않는다면, 또 그 와중 강조할 부분을 전혀 강조하지 않는다면 그건 이성적 말하기를 넘어서 너무 딱딱한, 영혼 없는 말하기가 되고 말 겁니다.
반대로 우리의 발표 상황으로 다시 돌아와, 자연스러운 말하기를 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와 반대로 하면 되겠지요. 스크립트를 보면서도 진짜 말하듯이, 자연스럽게 스피치할 수 있는 방법을 살펴봅시다.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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